■ 이름 부르는 일 / 박남준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네
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밀려오네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보네
문밖은 이내 적막강산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
[감상]
이름을 불러보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단서를 살짝 흘려놓았다. 얼굴을 떠올리니 초저녁 분꽃 향내가 밀려온다지 않는가. 분꽃은 나팔꽃같이 생겼는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이 핀다. 폴란드 전설에는 남장여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없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칼을 꽂았는데 거기서 분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아무리 남자처럼 꾸며놓았어도 마음 속에 깃든 여인의 수줍음과 서러움은 감출 수 없었다. 천상 여자라는 그 꽃. 분꽃은 화장 분(粉)과 통하니 분꽃 향내에는 어쩔 수 없이 초저녁에 문을 열고 들어온 아름다운 여인의 사연이 스며들어 있다. 여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갈 때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등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눈물을 숨기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서 남던 적막강산. 물론 시인의 그 사람은, 분꽃 향내 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형이나 아우를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꽃향기가 밀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떠올린 사람은 역사 속의 어떤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프리카의 아이일지도 모른다. 시인의 그 사람과 독자가 떠올린 그 사람은 아주 다른 사람일 것이다. 읽는 이는 제각기 입가에 맴도는 이름을 찾아내, 그에게서 분꽃 향내를 맡고 있으리라. 그렇다 한들 어떠리. 어떤 사람이라도, 이름 부르는 일의 황홀과 아픔을 저마다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글=이상국 시인
/ 2021.07.30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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