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병월급으로 돌아보는 나의 군복무 /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저 군대생활 할 적인 1976~7년 즈음에는 일병 상병 월급이 2천~3천원 정도였는데 요사이에는 병장 60만, 상병 54만, 일병 49만 여원씩을 받는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작대기 하나’ 이등병도 45만여 원을 받는다고 하지요. 70년대 후반으로 가는 즈음에 2~3 천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때도 별로 가치가 없어서 그 사병월급을 타가지고 병영매점에 가서 ‘초전박살 생과자’를 두어 개 사먹고 과자 두어 봉지를 사면 그것으로 끝이었는데.. 이제는 사병 월급이 그렇게 인상되었다고 하니 요새 50~60만원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용도가 매우 많고 규모도 매우 큰돈(!)이라는 생각인데 제가 가난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래서 제 나이 또래 사람들도 “군대 한 번 더 가?”하는 우스갯소리들을 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60만원 사병 월급에 관심이 가고 미혹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실은 ‘군대 다시 가고 싶은-’ 마음들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들은 아니지요. 우리나라에 대부분 군필자들은 자신이 군복무를 하던 방향 쪽으로는 ‘소변도 안 본다.’라고들 합니다. 그 만큼 생각하기도 싫고 상관하기도 싫은 ‘악몽의 기간’으로 여기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군대에서, 군대이기 때문에 일어난 특이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기도 하기에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는 평생을 갑니다. 그래서 집사람이나 아이들로 부터도 “어유- 또 군대 이야기..”하는 면박소리도 저 역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람은 그리운 이야기들을 자주 하게 된다.”고도 했지만 ‘군대이야기’란 그렇듯 자주 하기는 하지만 ‘그리워서-’는 아닌 것 같은데 글쎄.. 사람의 깊은 속내는 자기 자신도 헤아리지 못하는 때가 많으니 과연 누가 알겠느냐마는.. 그저 제가 가장 잘 아는 저 자신의 경우를 들어 본다면 ‘그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너무 힘들고 고생을 하여서..? 글쎄 얼추 비슷하게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역시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왜냐하면 군대생활을 어렵고 힘들고 고단하게 하는 이들이 물론 많지만 반면에 한량한 모습으로 국방부 시계나 바라보면서- 수하 병들에게 큰소리를 연일 치면서 무슨 세도가나 되는 양 자기 밑의 병들을 괴롭고 고달프게 하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응.. 그래, 너 사회에서 한 번 만나기만 해봐라..”하고 빠드득- 이를 갈게도 되지만 막상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렇게 ‘사회에서 만나도-’ 그저 반갑게 악수하고 술 한 잔 함께 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곤 하는 것이지 그렇듯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진흙탕’모양으로 뒹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단순관계’에서 찾습니다. 무슨 집안끼리의 대립도 아니고 재산문제가 얽혀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욕설과 기합과 단순폭력의 정도가 그 문제 내용의 전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군대에서 ‘당했다’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그 당시에는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쉬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피식’ 웃게 되는 것인데 그러는 중에도 자기 칭찬을 잊지 않지요. 곧 스스로에게 “그때 총 들고 사고를 치거나 탈영하지 않은 것 그래.. 참 잘한 일이지..”하는 것으로 입니다.
정말 군대생활이란 매우 위험하기도 한 것 아닙니까..? 우선은 ‘개인화기’로 소총들을 나누어 주는데 여차하면 성질대로 난사할 위험이 큰 것이며.. 또 대검들도 한 자루씩 주는데 그 역시 여차하면 큰 흉기로 돌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물론 사고도 여러 차례 발생되면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젊은 청년들의 이성과 기개의 모본 확인을 거기에서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잘 참아내며 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병무제도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생활화-’ 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곧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평등함, 남자만이 할 수 있다는 긍지로서의 자존감 그리고 그것을 잘 해냈다고 하는 성취감을 얻게 되는 데에서 그렇다고 하는데.. 아마도 맞는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군복무라.. 하긴 참 색다른 경험이지요. 저의 경우는 1976년 10월 18일 서울 왕십리 역에서 입영기차를 타고 빵— 한참을 달려서 다다른 ‘논산훈련소’.. 거기에서 연병장에 세워 놓고는 팬티까지 홀랑 벗겨서 군복으로 갈아입혀놓고는 마음과 생각이 하나 되게 한다는 발맞추기 제식훈련.. 사랑하는 가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총 쏘기 연습으로 ‘김일성 눈알 파내기’ 사격을 하였는데 그저 교관들과 조교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 표현들이기는 하여도 실감나기는 하여서 서로 ‘많이 파내려고-’ 집중사격을 가하곤 했는데 그때 28연대 소속 내무반장 손하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그래서 거기서 M1소총, 칼빈소총 그리고 M16까지 다 쏘아보고는.. 어느날.. 훈련병들의 자랑 ‘흰-런닝셔츠’를 받아 입고는 트럭을 타고 퇴소하면서 여전히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서는 “야- 너희들 언제 제대 하냐-!!” 면서 마치 제대라도 하던 것처럼 소리치던 1268~9군번들도 지금은 모두 할아버지들이 되었을 텐데.. 그래.. 나는 1270 군번이요.. 다들 안녕들 하쇼.. 하고 인사라도 전하고 싶군요.. 그때 바로 옆 연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쉬는 시간이면 매번 불려나와서 ‘노래일발 장진’을 하곤 하였던 전영록 훈련병도 잘 지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턱을 괴며 그때를 떠 올려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가서는 ‘이천 원짜리 월급사병’이 되었는데 지금은 뭐..이등병 월급도 45만원이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구두 신겨주고 목욕시켜주고 심지어는 ‘지켜주기도-’하는 군대에서 그 돈 다 어디에 쓰노..?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이 지금 훈련 받고 있는 젊은이들의 아버지뻘도 더 넘긴 사람이며 그들이 말하는 ‘라떼시대’사람이 되었으니 어떤 때는 비감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다시 입대하여 ‘뺑뺑이’를 다시 돌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불현 듯 일어나기도 하는데- 쯧, 그래.. 오라는 이도 없고.. 누가 데려다 주어야 말이지.. 그저 허허 웃지요..
글=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출처] 산골어부 블로그 2021-01-06
/ 2021.07.29 편집 푸레택
https://blog.daum.net/mulpure/15855363
https://blog.daum.net/mulpure/15854468
https://blog.daum.net/mulpure/15854415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감상] '여름' 임영준, '여름방학' 나태주, '사랑' 안도현 (2021.07.30) (0) | 2021.07.30 |
---|---|
[명시감상] '이름 부르는 일' 박남준 (2021.07.30) (0) | 2021.07.30 |
[명시감상] '강아지풀', '가을 저녁에', '갈대', '산으로', '소백산에서' 성민희 (2021.07.27) (0) | 2021.07.27 |
[수필읽기] 김점선 그림, 최인호의 수필집 '꽃밭'.. 정훈희 조관우의 '꽃밭에서' (2021.07.27) (0) | 2021.07.27 |
[명시감상] '소나기' 정세훈, '집' 이삭빛 (2021.07.22) (0) | 2021.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