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답사] 안동 권정생생가, 권정생동화나라..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2021.07.21)

푸레택 2021. 7. 21. 13:54

△ 권정생 생가

권정생생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권정생은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빈곤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와 가게의 점원 등을 하였다. 결핵에 걸려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 등을 앓으며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며 걸식을 하다가,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 교회 뒤 빌뱅이 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그곳에서 작품을 쓰며 살다가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에 마을 사람들은 그저 가난에 찌들어 사는 시골 노인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오는데 놀랐고 그렇게 책을 많이 낸 분인 줄 알고 놀랐으며 그 책의 인세로 선생의 재산이 10억이 넘는데 놀랐다고 한다. 무소유로 살다간 선생은 유언도 미리 써놓았다고 하는데 그 유언은 다음과 같다. “재산은 000목사님과 000신부님께 부탁합니다. 재산은 모두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과 중동, 티벳,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그 곳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평생 아이들을 생각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권정생 선생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이다.


■ 권정생동화나라

 

권정생(본명 경수, 1937~2007)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해방 직후 1946년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가난으로 인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점원 일을 하거나 전국을 돌며 걸식을 하다가, 1967년에 경북 안동의 조탑동 마을의 교회 종지기로 정착하게 되었다.

 

1969년 월간 『기독교 교육』에 동화 「강아지 똥」이 당선되었고, 1971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동화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가 입선,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다. 그 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글로 어린이는 물론 부모님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그는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된 주제로 하여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힘이 없고 약한 주인공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에게 기여하는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적인 삶을 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처마 밑의 강아지 똥을 보고 썼다는 『강아지똥』과 절름발이 소녀의 꿋꿋한 이야기를 담은 『몽실언니』는 무시당하고 상처받으며 소외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한국인 노동자의 아들로 일본에서 겪었던 식민지 시대의 체험과 이방인의 체험이 스며있다.

 

주요 작품집으로 『강아지똥』(1974), 『꽃님과 아기양들』(1975), 『사과나무밭 달님』(1978), 『까치 울던 날』(1979), 『하느님의 눈물』(1984), 『몽실언니』(1984),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1985), 『점득이네』(1990),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1994), 『밥데기 죽데기』(1999), 『슬픈 나막신』(2002) 등이 있다.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1988)과 소설집 『한티재 하늘 1-2』(1998), 그리고 최근에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으로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달하고 있는 『엄마 까투리』(2005)가 있다.

 

[출처] 경북 안동시 관광지도

△ 2021년 7월 31일 《안동》을 답사한 후 기행문을 쓸 계획임


■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감상]

1.

많은 사람들을 울린 동화 '강아지똥', '몽실 언니',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엄마 까투리' 등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 선생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입니다. 제목만 보면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은 시이지만, 찬찬히 읽으면 정말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시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읽으면 읽을수록, 권정생 선생께서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지 않고 서로 화합하며 평화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권정생 선생께서 지으신 동화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시를 지을 만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강아지똥만 하더라도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던 존재처럼 보이던 강아지똥이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우는 양분이 되는 감동적인 자기 희생을 하는 내용을 그렸고, 몽실 언니 역시 매우 힘겨운 하층민들의 생활을 그려냈지만 그럼에도 악착같은 생명력을 가진 민초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습니다.

어찌 보면 나이를 먹고 나니 권정생 선생 같은 분이 지으신 이야기가 진짜 나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 대부분이 어두운 현실을 그려냈지만 그와 동시에 약간이나마 보이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니 말입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에는 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어렵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런 이상향에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는 생각 역시 하곤 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애국자'라는 개념이 '국가'라는 개념에 사람들을 나누어 파편적으로 종속시키는 개념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세계인 모두가 휴머니즘 하에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상상을 하며 오늘 이 시를 읽어봅니다.

글=꿈꾸는 작가 (블로그 글)

2.

2018년 11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한 이후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군에 입대하는 사람은 비양심적이냐는 질타에 국방부에서는 ‘종교적 병역거부’라 불렀다가 인권위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군 입대가 ‘국방의 의무’라는 것과 관련하여 국민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을 애국자라 칭송하기까지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헌법 제19조에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양심’이란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을 뜻하니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역시 헌법이 보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두들 알고 있듯이 납세, 교육, 근로 그리고 국방은 국민의 4대 의무이고, 현행 병역법 제88조 1항에서는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조항을 지난 2004년 8월과 10월, 2011년 8월 그리고 2018년 6월 네 차례에 걸쳐 모두 합헌이라 결정한 바가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2018년 한 해에만 남북의 양 정상이 세 번 만났고 한반도는 바야흐로 평화 분위기로 들어서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헌법에 명시한 대한민국의 부속도서로 같은 민족이자 통일의 상대인 동시에 군사적으로는 적이며, 아직은 남북이 대치하며 ‘휴전(休戰)’이란 전쟁상태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정생의 시처럼 이 되어야 한다. 물론 시 속 ‘애국자’는 일반적 의미의 ‘나라사랑’이 아니라 바로 전쟁, 군대, 국방의무, 입대자…를 뜻한다. 시인은 ‘애국자’를 그런 뜻을 담아 일컫기에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고 단언한다. 즉 전쟁, 군대, 국방의무, 입대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란 말이다. 운문이 아니라 산문으로 된 시는 문장부호도 없이 시인의 생각을 단숨에 뱉어낸다.

​전쟁이 없다면 핵무기도 없을 것이요, 그렇게 되어 국방이 없다면 군 입대도 당연히 없지 않겠는가. 그 다음 벌어질 일들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어머니들도 아들을 군에 보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젊은이들은 꽃, 연인, 자연, 무지개를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애국자’가 안 되면 즉, 군대에 가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요, 그렇게 되면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는 말이다.

​정말 국방의 의무가 없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꼭 의무라서가 아니라 국방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시인은 단순하지 않다. 시인은 바로 사랑 그리고 아름답고 따사로운 세상을 그린다. 어쩌면 역설이리라. 시인은 병역 거부와 관련하여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입대하라고 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첫 문장은 ‘세상이 평화롭다면 이 세상 그 어느 나라도 군에 입대하는 애국자는 없을 것이다’로 해석된다.

​내가 보수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나,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하여 나는 ‘병역을 거부하지 말고 그냥 양심적으로 한국을 떠나라’고 극단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역시 시인은 다르다. 역설을 통해 더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하고 있지 않은가. 맞다. 사랑이 넘치는, 아름답고 따사로운 세상 - 그런 세상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우리나라를 지켜야 한다.

글=이병렬 시인


■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권정생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들판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
그렇게 어머니는 영원히 가셨다
먼 곳 이승에다
아들 딸 모두 흩어두고 가셨다
버들고리짝에
하얀 은비녀 든 무명주머니도 그냥 두시고
기워서 접어두신 버선도 신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혼자 훌훌 가셨다

어머니 가실 때
은하수 강물은 얼지 않았을까
차가워서 어떻게
어머니는 강물을 건너셨을까
어머니 가신 거기엔 눈이 내리지 않는 걸까
찬바람도 씽씽 불지 않는 걸까
어머니는 강 건너 어디쯤에 사실까
거기서도 봄이면 진달래꽃 필까
앞산 가득 뒤산 가득
빨갛게 빨갛게 진달래꽃 필까

어머니 사시는 집은 초가집일까
흙담으로 지은 삼 간 짜리 초가집일까
봄이면 추녀 끝에 제비가 집 지을까
봉당엔 삽살이도 앉았을까
둥우리엔 암탉이 병아리도 깔까

어머니는 누구랑 살까
이승에 있을 때
먼 나라로 먼저 갔다고
언제고 언제고 눈물지으시던
둘째 아들 목생이 형이랑 같이 살까
아침이면 무슨 밥 잡수실까
거기서는 보리밥에 산나물 잡수실까
거기서도 밥이 모자라
어머니는 아주 조금밖에 못 잡수실까

어머니네 집 앞으로 골목길도 있을까
대추나무 서있는 우물이 있을까
바가지로 만든 새끼끈 달린
두레박으로 물을 길으실까
물동이도 고만큼 예쁜 것으로 길으실까
왕골껍질로 만든 또아리를 받치실까
어머니는 거기서도 팔이 여위셨을까
물동이 내리실 때 부들부들 떨지 않으실까

디딜방아는 누구랑 찧으실까
목생이 형이 찧고
어머니는 확 앞에 앉아서 쓸어넣으실까
수수가루 빻아
오늘 저녁엔 수수팥단지 만드실까
이남박에 꼭꼭 떡 담으시고
모락모락 김나는 수수떡 담아 놓으시고
저 아래 먼 먼 이승에 두고 온 일준이랑
또분이랑 생각하실까
수수팥단지 잡수시다 목이 메어 우실까
호롱불빛을 비껴나
어머니는 돌아앉아 눈물 닦으실까

참나무 떡갈나무 잎이 피면
꾀꼬리가 자랑자랑 숲속에서 울까
어머니는 꾀꼬리 소리 들으며
산나물 뜯으실까
췻동아리 뜯으시고
바디취나물 뜯으시고
뚝갈이, 미역취 뜯으시며
거기서도 어머니는 타령을 부르실까
꾀꼬리 우는 소리보다 더 구슬픈
타령을 길게 길게 부르실까

어머니 사시는 거기엔
전쟁이 없을까
무서운 포탄이 없을까
총칼을 든 군대들이 없을까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임금도 없을까
무서워서 하루도 한 시도
마음 못 놓는 날이 정말 없는 것일까
그래서 헤어지는 슬픔도 없는 것일까
정말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여름 뙤약볕이 쬐면
고추밭에 고추가 빨갛게 익을까
어머니는 목화밭 김도 매고
서속밭 김도 매며 바쁘실까
거기서도 어머니는 쉬지 않고
쉬지 않고 일만 하실까
어머니 얼굴은 거기서도 까맣게 그으르셨을까
주름살이 깊게 깊게 패이셨을까

어머니는 열무랑 나박배추 가꾸실까
고추 따서 다래끼에 담고
열무랑 나박배추 솎아 담고
어머니는 언덕길로 걸어서 집으로 가실까
고무신 아끼시느라 벗어 들고 걸어가실까
다래끼 무거우면 한 번 추슬렀다가
- 휴유우 하시며, 잠깐 섰다가 또 걸으실까

소낙비 내린 다음 날
말똥버섯 돋아나면 따다가 잡수실까
쪽으로 짜개시고 끓는 물에 데쳐
국을 끓여 잡수실까
말똥버섯 국 끓여 놓고 앉아
- 일준아...
- 또분아...
그렇게 또 생각하실까

밤이면 달도 뜰까
둥글게 훤하게 달도 뜰까
앞마당 귀리집으로 엮은 거적을 깔아 놓고
어머니는 삼바람 이으시며 밤을 지샐까
누구랑 앉아서 삼 삼으실까
거기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도
진갑이네 어머니 같은 착한 이웃이 있을까
감자떡 나눠 잡수시며 걱정들을 나누며
함께 앉아 삼 삼으시며 밤을 지샐까

하얀 달빛에 실바람이 일고
초가지붕 위엔 박꽃도 필까
누나 얼굴 같은 하얀 박꽃이 필까
조롱조롱 애기박이 열리고
그렇게 또 가을이 찾아오는 걸까
바가지가 둥글둥글 굵어지는 가을이 오는 걸까
어머니는 사기요강에 오줌 받아
박넝쿨 구덩이에 부어 넣으실까
바가지 딴딴하게 영글라고
오줌 받아 부으실까
바가지 타서 말리시며
어머니는 시집간 귀분이 생각하실까
친정나들이 오면 제일 이쁜 것 주고 싶어
거기서도 어머니는 딸 생각하실까
거기서도 추석은 있을까
설날이 있을까
어머니는 추석에도 외로우시겠지
어머니는 설날도 외로우시겠지
아직도 아들딸 이승에 두고 가셔
어머니는 문구멍까지 귀 기울이시며
눈물지으실까

어머니는 거기서도
바람머리 앓으실까
이앓이도 하실까
머리도 수건 두르시고
아픈 것도 애써 참으실까
겨울밤 어머니 방엔 군불 많이 지피실까
솜이불 두꺼운 걸로 덮고 주무실까
방바닥엔 삭자리 깔았을까
짚자리 가지런히 깔았을까
윗목에 물레실 자으시다가
어머니는 밤늦게 잠자리 드시는 걸까

어머니 사시는 나라에도
그리움이 있을까
애달픔이 있을까
개똥벌레 날아가는 밤
귀뚜라미 우는 밤도 있을까
정지 부뚜막에 생쥐가 찍찍 울며 다닐까
뒷산에 부엉이가 와서 울까

장날이면 장보러 가실까
말린 고추 팔러 가실까
울양대 차좁쌀도 고만큼씩
올망졸망 가지고 가실까
동구 밖까지 삽살이가 따라오면
어머니는 주먹을 들어 으르시고
발로 탕탕 구르시고
그래도 안 되면
- 삽살아, 집에 가 있거라
- 집 잘 보고 있으면 착하지
삽살이는 알아듣고 못 이긴 척
서운하게 돌아서 텁썩텁썩 갈까

장에는 어떤 장수들이 있을까
개구리참외도 팔까
콧등에 하얀 테 두른
알룩고무신도 팔까
타래엿도 팔고 갱엿도 팔까
소금 장수도 저런 고등어 장수도 있을까
때깔이 예쁜 주발 장수도
항아리랑 단지랑 놓고 파는
옹기장수 할아버지도 있을까

어머니는 뚝배기 하나 사고
소금 조금 사고
개구리참외도 사실까
참외 사시면서도 이승에 두고 온
아들딸 생각 또 하시겠지
돌아오는 길에 소낙비도 내릴까
소낙비 내리면 무지개도 뜰까
청산 위에 색동빛 예쁜 무지개처럼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도
청산처럼 아름다운 산이 있고
중들 강물처럼 맑은 강물이 흐를까
거기 그렇게 예쁜 무지개 뜨면
어머니도 어린애처럼 즐거우실까
소낙비 맞고 옷이 젖어도
어머니는 무지개 쳐다보면 또 쳐다보며
비탈길을 동동걸음 걸어오실까

개구리참외는
목생이 형이랑 둘이서만 먹을까
거기서도 어머니는 찔름 들어간
못생긴 참외를 잡수시고
예쁘고 만난 건 아들 주실까
참외꼭지만 남기고 알뜰히 잡수실까

어머니는 자주자주 하늘 보실까
어머니는 자주자주 달 쳐다보실까
거기엔 정말 전쟁이 없었으면
빼앗아만 가는 임금도 없었으면
전쟁에 쫓겨 쫓겨 가지 않았으면
모구가 자유롭고 사랑이었으면
톳제비나 물레귀신 말고는
무서운 것들이 없었으면
거기에도 봄이면 진달래꽃 폈으면
꾀고리가 울었으면
골목길에 엄마닭이 병아리 데리고 다니고
감나무에 족두리 같은 꽃이 폈으면
창포꽃이 피고
그네 뛰는 단오날이 있었으면

응숙이네 머슴, 장수 아저씨랑
군마 할아버지 같은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살았으면
송아지도 있고 망아지도 있었으면
실개울엔 가재도 살고 우렁이도 살고
버들가지도 흔들리고 물총새도 날고
흰구름 동동 뜨고 제비가 날고
뻐꾸기가 자꾸자꾸 울었으면
아아, 거기엔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으르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고
목을 조르고 주리를 틀지 않았으면
소한테 코뚜레도 없고 멍에도 없고
쥐덫도 없고 작살도 없었으면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르고
어머니는 거기서 많이 쉬셨으면
주름살도 펴지시고
어지러워 쓰러지지 말으셨으면
손목에 살이 좀 오르시고
허리도 안 아프셨으면
그리고 이담에 함께 만나
함께 만나 오래 오래 살았으면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ㅡ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1988)

 

[감상]

언젠가 수십 광년의 거리인 태양계 밖에서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넘어 지구별에서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끼리 따로 한 살림 오붓하게 차려 살고 있진 않을까란 공상을 한 적이 있었다. 권정생 선생과 그 어머니의 이승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시를 읽으면서 내 공상도 활기를 띄어 내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랬다. 아직 그 나라로 건너가시는 중일지도 모르겠고 전입신고를 채 마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늬로 오래오래 사시다가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권정생 선생의 섬세한 애정이 구구절절 배어있어 이오덕 선생 말씀마따나 '무조건 감동적'이다. 선생 자신도 9년 전 5월 17일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른’ 그곳으로 떠나가서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그러면서 오래오래 잘 살고 계실 것이다. 김용락 시인이 당시 임종을 지킨 뒤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기억한다. “돌아가시기 직전 선생님은 산소호흡기의 고무호스가 꽂힌 입을 움직여 무언가 맹렬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입모양은 ‘어메’였습니다. 그 ‘어메’ 소리를 2~3분간 안간힘을 쓰면서 지르시더니 더 이상 입모양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뒤 조탑리 이웃들은 세 번씩이나 깜짝 놀랐다고 한다. 혼자 골골하게 사는 외로운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유명 동화작가라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걸 보고 놀랐고, 지병으로 고생하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여운 노인인 줄 알았는데 연간 수 천 만원씩의 인세수입이 있는 분이란 사실을 알고 다시 놀랐으며, 그렇게 모인 10억 원이 넘는 재산과 앞으로 생길 인세수입 모두를 굶주리는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으신 걸 보고 또 놀랐다는 것이다. 선생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인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 이 시대의 성자셨다.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선생의 유언 중 일부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스물다섯 살쯤에 스물 두세 살의 처녀와 벌벌 떨지 않고 예쁜 사랑을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나라’에서 오래오래 사시다가 행여 이 세상으로 다시 오신다면 꼭 그러시길 바란다. 내 어머니도 내 아버지보다 조금만 더 마음씨 착한 남자 만나서 하고 싶은 그림 그리며 속 하나도 안 썩이는 딸 아들 하나씩 다시 낳아 진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권순진


https://youtu.be/vC-KmukEdwY

https://youtu.be/_6oVXO-VWqQ

https://youtu.be/751oVC0sY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