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의 정기를 간직한 물 맑은 고장 예천(醴泉)을 찾아서
△ 일시: 2021.07.17.(토) 07:00~21:30
△ 여행지: 경상북도 예천군 회룡포
△ 참가자: 김○빈, 류○철, 이○재, 김○택 (고교 친구 4명)
여행코스: 분당오리역 4번 출구(07:00)~영주 국립산림치유원~효자면 예천곤충생태원~백석저수지~용문면 소백산 용문사~청포집(묵밥정식)~예천읍 맛고을 문화의 거리~재래시장~보성고 동창 지보면 현○수 집~명승지 용궁면 회룡포와 내성천~천등산 휴게소~분당정자역(21:30)
오늘은 경상북도 북서쪽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정기를 간직한 물 맑은 고장 예천(醴泉)을 찾아 나섰다. 9호선 마곡나루역에서 5시 33분에 출발하는 첫 급행열차를 타고 선정릉역에서 분당선으로 환승한 후 오리역에 내리니 시계가 7시를 가리킨다.
토요일이라 이른 시간에 출발했는데도 영주(榮州)에 도착하니 10시 반이 넘었다. 영주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쉬움을 안은 채 ‘예천곤충생태원’으로 향했다. 제천(堤川)에 살고있는 지철 친구가 이곳에 미리 와서 기다린다. 몇 년 만의 만남인가,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했던가, 반갑기 그지 없다.
예천(醴泉)의 예(醴)는 단술을, 천(泉)은 샘물을 뜻하는 말이다. 예천의 인구는 1960년에 15만 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5만5천 명이라고 한다. 예천군의 북부에는 소백산맥이 뻗어있고, 동부에는 태백산맥의 지맥이 있다. 낙동강이 군 남부에 있는 지보면과 의성군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곡류하고, 그 지류인 내성천이 군 중앙부를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예천군 관광안내지도를 살펴보니 예천 관광 8경이 소개되고 있다.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가 제1경이고, 낙동강 1,300리 마지막 남은 주막인 삼강주막이 제2경,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이 제3경이다. 명승 초간정과 원림, 문화유산의 보고 천년고찰 용문사, 예천곤충생태원, 천연기념물 예천 천향리 석송령, 명승 선몽대가 8경을 이룬다. 우리는 예천 관광 8경 중에서 회룡포와 용문사 그리고 예천생태곤충원을 둘러보았다.
예천의 체험거리 축제로는 예천세계 활축제와 삼강나루 나루터축제, 예천용궁 순대축제, 예천 곤충축제, 예천장터 농산물대축제가 있다고 한다. 예천 농특산물로는 쌀과 한우, 사과, 참외, 고추, 식초, 꿀, 참·들기름이 있다. 예천 맛 4대 천왕은 용궁순대와 오징어불고기, 태평추, 한우육회비빔밥이다.
예천은 양궁의 메카로 예천읍 청복리에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이 있다. 일반인들도 무료 양궁 체험을 할 수 국내 최대의 활 체험 복합문화 공간이다. 이곳에서 유니버시아드 양궁 경기를 개최하였고 해마다 각종 전국 단위 양궁 경기가 치러진다고 한다. 신궁의 원조 김진호 선수가 이곳 예천 출신이다.
1. 동심의 세계, 곤충나라 ‘예천곤충생태원’
가장 먼저 찾은 예천곤충생태원은 예천군의 북부 효자면에 위치해 있으며, 환경부 지정 생물 다양성 관리 기관으로 다양한 곤충표본과 살아있는 곤충을 전시하고 있었다. 사람과 자연환경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체험학습과 놀이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인지 부모님 손을 잡은 유아들과 초등학생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출발하여 곤충체험원과 동굴곤충나라, 나비관찰원를 둘러본 후 수변생태원의 수서곤충과 수생식물을 관찰하였다. 이어서 곤충멀티체험관과 곤충생태체험관을 둘러보며 곤충에 관한 다양한 지식도 얻고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직접 만지며 곤충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래에 곤충학자가 되고 싶은지 한 꿈나무 어린이가 사슴벌레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이것은 왕사슴벌레, 이것은 넓적사슴벌레에요” 하며 소리치는 모습이 관람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2.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고즈넉한 천년고찰 ‘용문사(龍門寺)’
한 곳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없어 곧 용문면에 위치한 소백산(小白山) 용문사(龍門寺)로 향했다. 용문사 가는 길에는 울울창창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杜雲)선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며,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 천년고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두운의 이름을 듣고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雲霧)가 자욱해 지척을 분간치 못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龍門寺)라 불렀다고 한다.
두운선사와 고려 태조와의 만남 이후 용문사는 고려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크게 성장했는데, 명종 때는 절의 왼쪽 봉우리에 세자(世子)의 태(胎)를 안치한 것을 기념하여 ‘창기사’(昌期寺)로 개명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왕실의 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한 뒤 ‘성불사'(成佛寺)로 바꾸었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난 뒤 ‘소백산 용문사’로 다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 시대에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하였고 여러 차례 외침을 당할 때마다 ‘일만승제 삼만승제(一萬勝祭三萬勝祭)’를 올려 국난 극복을 위해 기도했으며, 규정원으로 승병을 훈련하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엔 승군의 짚신을 짜서 보급하던 곳으로 호국불교의 장이기도 하다.
숭유척불(崇儒斥佛) 정책을 폈던 조선 시대에도 용문사는 왕실로부터 대접을 받아 1457(세조3)년에는 왕이 잡역을 감해주라는 명을 내렸는데 그 교지가 보물 제729호로 지정되어 전해오고 있다. 1478년(성종9)에는 소헌왕비의 태를, 1783년(정조7)에는 문효세자의 태를 안장했을 정도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다음백과 참고)
용문사는 대장전과 윤장대(국보 제328호), 용문사교지(보물 729호),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를 포함한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절이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윤장대’(輪藏臺)였다. 팔각기둥 모양으로 만든 나무 기둥 안에 대장경전을 넣고 돌리며 예불을 보는 불교 의식품으로,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내부에 불경(佛經)을 보관해 둔 윤장대의 역할은 부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퍼지게 하는 것과 경전이 꽂혀 있는 윤장대를 돌리기만 해도 경전 만 권을 읽은 것과 같아 번뇌(煩惱)가 소멸되고 공덕(功德)을 쌓을 수 있다고 하며 글을 몰라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윤장대는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데 이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읽는 효과 외에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으로 많은 불도들이 찾았다고 한다. 윤장대는 문 양쪽으로 하나씩 두 대가 놓여 있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윤장대에는 ‘돌리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용문사는 한때 ‘영남제일강원’으로 불릴 만큼 세가 큰 사찰로 많은 학승들이 용문사에 와서 공부를 하였다고 하나 세월이 지나면서 외져있는 위치성과 화재로 인해 사찰의 세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고즈넉한 용문사를 뒤로 하고 예천읍으로 향했다. 맛고을 문화의 거리에 있는 '전국의 달리는 본가' 청포집에서 청포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소문난 맛집인지 유명인사들이 찾아와 식사 후 남긴 글이 벽에 가지런히 붙어 있다. “예천에서는 청포집이 금메달”이라고 쓴 양궁 김수녕의 글이 눈에 띈다. 탤런트 사미자와 성우 송도순의 글도 보인다. 청포묵밥이 깔끔하고 맛이 있다. 점심을 한 후 ‘맛고을 문화의 거리’를 걸었다.
벤치에 적혀있는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충분한 음식이지 훌륭한 말이 아니다.”(뮐러) 공감이 가는 명언이다. 언제인가 들은 명언이 생각난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이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 인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 재래시장을 둘러본 후 현○수 동창이 살고 있는 지보리로 향했다.
3.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를 찾아서
지보리에 있는 보성고 61회 현○수 동창의 집을 찾아 정담(情談)을 나누었다. 집 마당에는 그의 백부(伯父)이신 2공화국 시절 내무·국방장관을 역임한 현석호(玄錫虎)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예천군 출신의 첫 장관이라고 한다. 정담을 나눈 후 예천군 남쪽에 위치한 용궁면에 있는 회룡포로 향했다.
회룡포(回龍浦)는 명승 고적 16호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물도리마을로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내성천(乃城川)이 큰 산에 가로막혀 마을을 350도 휘감고 나가는 형상으로 유유히 흐르는 냇물과 넓은 백사장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특히 반짝이는 하얀모래의 백사장을 감싸안고 돌아가는 옥빛 물결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회룡포는 영월의 청령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瞰入谷流河川)이다. 지형적 아름다움으로 탐방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호젓한 마을 둘레길을 거닐며 지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회룡포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은 폭이 80m, 수면에서 15m 정도의 높이로 비가 많이 와 넘치면 실제로 ‘육지 속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 마을이 있는 곳, 의성포(義城浦)라고 하였으나 사람들의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돌아서 흐르는 회룡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낙동강 상류로 물의 흐름이 느리고 수량이 적은 전형적 사행천이다. 회룡마을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가니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나타난다. 바닷가도 아니고 첩첩산중 하천에 형성된 아름다운 백사장 모래톱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내성천엔 회룡포로 건너갈 수 있는 뿅뿅다리가 두 개 있다. 회룡마을 주차장 쪽 다리가 제1뿅뿅다리다. 하천에 쇠기둥을 박고 그 위에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구멍 뚫린 철판을 연결해 만든 다리로, 사람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 철판 구멍 사이로 물이 퐁퐁 솟아올라 예전부터 ‘퐁퐁다리’라 불렀는데 퐁퐁이 외부로 뿅뿅으로 잘못 전해져 굳어져 버렸다고 한다.
뿅뿅다리는 폭이 좁아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폭이 80cm, 길이는 500m라고 한다. 그런데 물이 생각보다 깨끗하지 못하고 혼탁하다. 늘 이런 물이 흐르는지 오늘 낮에 잠시 내린 비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자료를 살펴보니 영주댐이 생긴 이후 하천에 수량도 줄고 모래톱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백사장에는 텐트를 친 몇몇 가족들이 여름을 즐기고 있다.
뿅뿅다리를 건너니 마을 입구에 2009년 KBS 1박 2일의 촬영지였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반듯반듯한 논에 심어져 있는 벼가 파릇파릇하다. 자전거를 대여하여 라이딩을 즐기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도 보인다.
회룡포마을은 아홉 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로 앞으로는 강이 돌아가고, 뒤로는 야트막한 언덕이 놓인 깨끗하고 조용하며 아름다운 곳이다. 드라마 ‘가을의 동화’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 촬영지가 이곳이다.
오늘 찾은 예천의 회룡포와 안동의 하회마을과 영주의 무섬마을이 경북의 3대 물돌이 마을로 불린다. 회룡포와 삼강을 잇는 강변길은 행정안전부의 ‘우리 마을 녹색길 명품 베스트 10’으로 선정된 자연친화적 녹색길이라고 한다. 주차장 앞에서 복숭아를 파는 한 상인이 “봄에 유채꽃을 필 때 오시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귀띔을 한다.
회룡포 주차장 앞 복숭아집에서 잠시 쉬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마침 대구 이야기가 나왔는데 철이가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선 서상돈(徐相燉) 독립운동가가 나의 외증조부”라며 고등학교 역사 시간의 일화를 들려준다. 대구의 계산성당(桂山聖堂)도 서상돈 선생의 기부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서상돈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고 독립협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다.
몇 년 전 대구근대화거리에 있는 삼일운동길과 청라언덕을 비롯하여 약령시, 김광석그리기길 그리고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계산성당을 다녀온 기억을 떠올렸다. 서상돈 독립운동가가 친구의 외증조부라는 사실을 알고나니 역사 속 인물이 교과서에서만 머물지 않고 비로소 현실 속에 실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서상돈 선생은 대구 출생으로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 가문이 되었고, 천주교 대구교구가 설립되자 이의 발전에 힘쓰면서 성직자 돕기와 수녀 보호에 솔선수범하였다고 한다. 외세의 국권 침탈에 맞서 국권 수호에 앞장 선 독립협회의 재무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계산성당에는 서상돈(아우구스티노)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실 오늘 힐링여행을 한 예천은 난생 처음 찾은 곳이다. 예천군의 남동쪽에 위치한 안동은 36사단에 군입대하여 6주간 전반기 훈련을 받은 곳이고, 오늘 가보려 했던 국립산림치유원이 있는 영주는 대학생 시절과 젊은 교사 시절 희방사역에서 소백산 연화봉과 국망봉을 오르며 생태 탐사를 몇 차례 했던 곳이다.
예천 회룡포로 가는 길에 ‘군위 ○Km’라는 도로표지판이 자주 보여 반가웠다. 나의 본적은 군위군 효령면 화계리, 외가는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다. 부계면에는 작은 이모님이, 팔공산 아래 대율 한밤마을에는 큰 이모님이 사셔서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가끔씩 찾아가곤 했었다. 예천 여행길에 군위 도로표지판을 보며 홀로 잠시 옛 추억에 잠겼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빼어난 회룡포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비룡산(飛龍山, 190m) 회룡포 전망대를 오르지 못했다. 용이 휘감아 도는 모습이라 하여 회룡포, 용이 웅비하는 형상의 산이라 하여 비룡산이라고 한다. 이곳 비룡산에는 아미타불좌상의 쉼터와 함께 장안사(長安寺)라는 사찰이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왕실이 국토의 명산에 장안사란 이름을 내려 세운 세 곳의 사찰 중 하나다. 나머지 두 곳은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와 부산 기장군 불광산 장안사라고 한다.
이곳 비룡산 장안사는 고려시대 문학자이자 사상가로 ‘동국이상국집’을 남긴 이규보(李奎報)가 이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였고 불교에 심취, 귀의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이규보가 이곳에 머물면서 남겼다는 시 ‘장안사에서’를 감상해 본다.
장안사(長安寺)에서 / 이규보(李奎報)의 시
산(山)에 이르니 번뇌(煩惱)가 쉬어지는구나
하물며 고승 지도림(支道林)을 만났음이랴
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에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한잔 차(茶)로 서로 웃으니
고인(古人)의 마음일세
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병(病)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菊花)는 꿈속에서 작아드네
비룡산 입구에는 이 마을 출신 만년 은거 문인 김영락의 '용주팔경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용궁면(佣宮面)은 1914년 예천군(醴泉郡)에 통합되기 전까지 용궁군(龍宮郡)이였으며 고려 때는 용주(龍州)로 불렸다. 시비(詩碑)는 1997년 8월에 회룡포 면민(面民)들이 건립했다고 한다.
오늘 회룡포를 찾아 그곳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가득 담아왔다. 회룡포 마을 둘레길도 걸어보고 전망대를 오르고 또 낙동강 1,300리 마지막 남은 주막 ‘삼강주막’도 찾아가고 싶었으나 아쉬운 마음을 안고 회룡포를 떠나왔다. 금당실 전통마을과 석송령, 선몽대, 삼강주막 그리고 초간정 및 원림, 예천진호국제양궁장도 다음을 기약했다.
어느 시인이 회룡포를 여행하고 쓴 글이 내 마음과 같아 그대로 옮겨 적으며 글을 맺는다. “내성천의 물굽이를 바라보며 세계적인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내성천과 회룡포. 굳이 가우디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이 만들어낸 예술품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글 사진=김영택 (2021.07.17)
회룡포 비룡산 입구에 세워져 있는 김영락의 ‘용주팔경’을 감상해 보자. 구계(龜溪) 김영락(金榮洛, 1831~1906)은 13세 때 부친상을 당하였으며, 훗날 결혼한 형이 어린 조카들을 두고 죽자 조카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도 근신하여 화를 내는 일이 없었고 집안이 가난함에도 분수를 지켰으며, 만년에는 구계초려(龜溪艸廬)를 짓고 독서와 수양공부에 힘썼다고 한다. 노인직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를 받았다고 한다.
편지글 중 스승 이병불(李秉拂)에게 보낸 「상만성이공(上晩省李公)」에서는 전원에서 노닥거리는 것은 심성을 수양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며 자책하는 내용이 들어있고, 잡저 「유훈(遺訓)」에서는 성정을 펴기에는 시(詩)가 으뜸이지만 지나치면 뜻을 잃게 된다고 경계하였다고 전해온다.
■ 용주팔경(龍州八景) / 구계 김영락(金榮洛)
抱琴明月(포금명월) 포금산의 밝은 달
抱琴山上月團團 丹桂初香白露寒
포금산상월단단 단계초향백로한
此夜正堪彈一曲 戱招仙鶴下雲端
차야정감탄일곡 희초선학하운단
포금산에 뜬 달은 둥글기도 둥근데
계수나무 가을 향기 힌이슬 차갑고나
이밤사 퉁겨 내는 열두줄 맑은 소리
선학은 너울 너울 구름 끝에 춤을 추네
武夷淸風(무이청풍) 무이의 맑은 바람
武夷山下問村翁 何事漁樵老此中
무이산하문촌옹 하사어초노차중
鷄犬不驚桑柘好 萬邦塵雨一淸風
계견불경상자호 만방진우일청풍
무이촌에 묻혀 사는 할아범께 묻노니
고기 잡고 나무하며 이렇듯 늙어 가오
뽕나무 그늘 아래 개와 닭이 함께 놀고
온갖 세상 풍진 맑은 바람씻지 않소
錦江漁火(금강어화) 금강의 고기 잡는 불빛
日落風恬秋水淸 蜒燈處處滅還明
일락풍념추수청 연등처처멸환명
五更移艇西岩去 宿鷺驚飛時一聲
오경이정서암거 숙로경비시일성
해는 지고 바람 자니 가을 금강 옥같은데
고기잡이 초롱불빛 여기저기 번득인다
오경에 배를 돌려 서암으로 돌아오니
잠자던 적백로 끼욱 끼욱 놀라 나네
臥牛落照(와우낙조) 와우산의 낙조
紫翠橫空夕鳥飛 牛山千古又斜暉
자취횡공석조비 우산천고우사휘
扶桑若木皆常理 笑殺齊人淚滿衣
부상약목개상리 소살제인루만의
저녁 노을 붉게 타고 새들 바삐 나니
와우산엔 변함 없이 석양이 지는구나
해 뜨고 지는 것은 변함 없는 진리거늘
가소롭다 사람들아 슬퍼한들 어이하리
飛龍歸雲(비룡귀운) 비룡산 걸친 구름
山似飛龍雲似烟 相從日夕在南天
산사비룡운사연 상종일석재남천
降詳下雨多陰德 豐我榟鄕百千年
강상하우다음덕 풍아재향백천년
뫼 굽이는 용이요 구름은 연기인데
서로 좋아 어우러져 남천에 머물더니
하느님 음덕으로 복된 비 내려주네
우리 고장 천년만년 풍년을 누리리라.
天竺疎鐘 (천축소종) 천축산 저녁 종소리
數峰天竺揷蒼空 往往疎鐘落晩風
수봉천축삽창공 왕왕소종낙만풍
認是慈悲諸佛意 一聲警世到吾東
인시자비제불의 일성경세도오동
천축산 봉우리들 창공에 솟았는데
이따금 범종소리 저녁바람 타고 오니
필시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이리라
우리동방 깨우치는 은은한 울림이여
遏雲樵歌(알운초가) 알원산의 나뭇꾼 노래
白雲갈處有樵人 一曲長歌萬壑春
백운갈처유초인 일곡장가만학춘
○俗但言靑截彼 不知肉吹妙傳神
○속단언청절피 부지육취묘전신
흰구름 깊은 골에 나무하는 저 초동들
한가락 긴 노래에 산골에 봄은 온다
소박한 민속 가락 입으로만 이어 오니
창법 없이 전해오는 신묘한 그 노래여
喧坪稻畵(훤평도화) 훤이 들의 벼꽃
大野茫茫接遠天 稻花點綴正堪憐
대야망망접원천 도화점철정감련
遺黎不識傷時恨 猶向西風樂有年
유여불식상시한 유향서풍낙유년
넓디 넓은 훤이 들판 먼 하늘 닿았는데
벼꽃 핀 비단물결 정말로 아름답다
검은 머리 저 백성들 피땀 고생 다 잊고서
서풍에 땀 씻으며 풍년을 구가하네
/ 2021.07.19(월) 편집 택
△ 「예천여행」은 이건재 친구가 기획·안내하였고, 운전은 김중빈과 류지철 친구가 맡아주었다. 나는 여행 기행문을 쓰며 친구들의 고마움에 보답한다.
■ 예천 천향리 석송령(石松靈)
영주가 고향인 친구가 이 블로그를 보고 글을 보내왔다. “영주에서 예천으로 넘어갈 때 석송령 할배한테 인사를 드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석송령을 찾아가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영주 국립산림치유원 쪽에서 예천으로 바로 넘어갔기에 천향리 석송령을 못보았다. 예천 관광 8경에 소개된 석송령에 관한 글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예천관광8경 중 제7경. 예천 천향리 석송령은 부귀, 장수, 상록을 상징하는 700년 된 반송으로 수고가 11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4.2m, 그늘 면적이 1,000㎡에 이르는 큰 소나무다. 1927년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영험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 3,937㎡(약 1,191평)를 상속해 주었다. 이에 석송령은 재산을 가진 ‘부자 나무’라 불리며 매년 세금을 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내며, 나무가 소유한 토지 임대료 수익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석송령은 천연기념물 제294호다. (출처: 예천관광안내지도)
■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
영천이 고향인 또 한 친구가 이 블로그를 보고 글을 보내왔다. “10년 약간 더 전 금실당 용문중 교장 사택에서 하루 유했네요. 아침에 금당실 집들을 둘러보았는데, 담으로 둘러싸여 족히 500평 어느 집. 그 안에 채전도 있고 반서울로 도로도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 금당실전통마을을 못 가보았는데 예천 관광 8경에 소개된 관한 글을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에 관한 글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예천광광8경 중 제3경. 예천군 용문면에 위치.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금당실 마을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으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십승지 중 하나다. 이곳은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금곡서원, 추원재 및 사당, 반송재 고택, 사괴당 고택 등 문화재가 산재해 있고 99칸 저택터가 남아 있으며, 마을 안길은 아름다운 돌담길로 되어 있고 천연기념물 469호인 송림은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예천관광안내지도)
■ 초간정과 원림
초간정(草澗亭)은 명승 제51호로 예천관광8경 중 제4경이며, 예천군 용문면에 위치한다. 조선 선조 15년(1582)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權文海) 선생이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현손(고손)이 1739년 원래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으로, 암반 위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초간정은 송림과 어우러져 선비들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출처: 예천관광안내지도)
/ 2021.07.20 추록(追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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