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찔레꽃 시모음] '찔레꽃' 신경림, '찔레꽃의 전설' 최영희, '찔레꽃 향기는' 안행덕, '찔레꽃' 이외수, '찔레꽃 내 고향' 유응교, '찔레꽃' 장사익 (2021.07.11)

푸레택 2021. 7. 11. 12:08

■ 찔레꽃 / 장사익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 찔레꽃 / 김영일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 찔레꽃 향기는 / 안행덕

외진 산길 아무데서나
하얗게 웃는 찔레꽃
알싸한 향기는 애틋해서
소리 없는 울음이네
하얗게 피는 꽃 찔레꽃은
애달픈 전설 가슴이 찡해서
서럽도록 좋아라
그리움에 야위어 가시만 남은 꽃대에
하얀 꽃잎은 잎마다 눈물 고여서
나를 울리네
애절한 그리움으로 향기 만들어
나 여기 있다오
지나가는 바람, 옷깃에 매달려
향기만 전하고
저만치 달아나 숨어서 우네

■ 찔레꽃의 전설 / 최영희

봄이면 산과 들에
하얗게 피어나는 찔레꽃
고려시대 몽고족에
공녀로 끌려간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다네
십 여년 만에 고향 찾은 찔레 소녀
흩어진 가족을 찾아
산이며 들이며 헤매다
죽고 말았다네
그 자리에 피어난 하얀 꽃
그리움은 가시가 되고
마음은 하얀 꽃잎, 눈물은 빨간 열매
그리고 애타던 음성은
향기가 되었네
내 고향 산천 곳곳에 피어나는
슬프도록 하얀 꽃
지금도 봄이면
가시덤불 속
우리의 언니 같은 찔레의 넋은
꽃으로 피네

■ 찔레꽃 / 이외수

마음으로만은
사랑할 수 없어
밤마다 편지를 썼었지
서랍을 열면
우울한 스무살 가슴앓이
사어(死語)들만 수북히 쌓여 있었지

입대하기 전날 아무도 몰래
편지를 모두 잘게 찢어
그대집 담벼락에 깊이 묻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으리
나는 바삐 걸었네

■ 찔레꽃 / 이현우

부활하는 넋인가 보다.
흙먼지 자욱한 포연(砲煙) 속에서
운명처럼 만났던 가시와 향기
멍울져 돌아앉은 산과 들마다
유월이면 네 모습 소복이었다.
낭자한 꽃싸움 풀숲에 묻고
홀연히 떠나버린 봄의 끝 자락
축배도 영화도 아랑곳 없이
오롯이 피어 오른 무명의 향불이여.
가난한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외로운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사는 길 너무 멀어라.
끓던 여름 타는 가을 다 보내고
재 되어 물이 되어 겨울 강에 닿으면
하얗게, 하얗게, 더욱 아프게
쌓여가는 어둠 속 눈이 오리니
계절마저 잊었나 갈은리(葛隱里) 하늘
활짝 열고 부활하는 넋인가

■ 찔레꽃 / 신경림

아카샤 꽃냄새가 진한 과수원 샛길을
처녀애들이 기운없이 걷고 있었다
먼지가 켜로 앉은 이파리 사이로
멀리 실공장이 보이고 행진곡이 들리고
기름과 오물로 더럽혀진 냇물에서
아이들이 병든 고기를 잡고 있었다
나는 한 그루 찔레꽃을 찾고 있었다
가라앉은 어둠 번지는 종소리
보리 팬 언덕 그 소녀를 찾고 있었다
보도는 불을 뿜고 가뭄은 목을 태워
마주치면 사람들은 눈길을 피했다
겨울은 아직 멀다지만 죽음은 다가오고
플라타나스도 미루나무도 누렇게 썩었다
늙은이들은 잘린 느티나무에 붙어앉아
깊고 지친 기침들을 하는데
오직 한 그루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냇가 허물어진 방죽 아래 숨어 서서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을 울고 있었다

■ 찔레꽃 / 이재봉

오월의 숲길을 거닐다
한 무더기 꽃을 보았네
멀리서 보니 아카시아 같고
가까이서 보니 들장미 같네
순백한 냄새에 취해 코를 댔더니
슬프도록 하얀 꽃송이가 툭 떨어지네
찔레꽃 그늘에 앉아 숨어 울던
옛 누이의 눈물처럼

■ 찔레꽃 내 고향 / 유응교

멀고 먼 나라로
고향을 떠나
살아 보신 적이 있나요

가난하게 살아도 고향이 좋고
지위가 낮아도 내 부모가 좋고
남루한 옷을 입어도 내 형제가 좋아요.
고향을 떠나 살아본 사람만이
제 심정을 아실 거 에요.

그러나
그리운 고향에 찾아 왔건만
부모 형제 이미 떠나시고
형제는 찾아 볼 수도 없이
고향집이 잡초에 묻혀 있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겠어요.

고향산천 골짜기마다 개울가마다
제가 소복을 입고 외롭게
울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아셨죠
부모 형제 애타게 그리며
목놓아 부르는 제 외침이
애잔한 향기로
바람결에 산천을 헤매는 까닭을
이제야 아셨죠

고향은
외로운 마음의 안식처라고 하지만
흙먼지 속에 엎드려 울고 있는
저를 안아 주세요
전 지금 너무 외로워요.
부디 고향에 오시거든

/ 2021.07.11 편집 택


https://youtu.be/dz_VM5UZVIM

■ 찔레꽃 / 장사익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 / 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 노래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우의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https://youtu.be/QMFJB9ns_Z0

1941년 5월, 태평레코드사에서는 이 '찔레꽃'을 내고 OK 레코드사에서는 고운봉의 '선창'을 발표했는데 별로 반응이 신통치 못했던 것이, 해방과 더불어 양사(兩社)의 이 두 노래가 약속이나 한 듯 각광(脚光)을 받아 히트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떠나 멀리 타향에서 핍박과 서러움에 눈물짓던 실향민들에게 찔레꽃 피는 고향을 노래한 백난아의 '찔레꽃'은 더 없는 향수를 자극하여 공감을 느끼게 하여 너도 나도 이 노래를 열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영일이 작사하고, 김교성이 작곡한 곡으로, 한국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인 찔레꽃을 소재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렸다. 처음 백난아가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으나, 이후 광복과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가사가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어 ‘국민가요’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작사-작곡한 김영일-김교성과 백난아가 북간도 순회 공연을 다녀온 뒤, 일제 치하에서 고생하다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동포들의 애환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작곡가 김교성과 백난아가 만주 공연을 다녀온 뒤, 만주 독립군들이 고향을 바라보는 심정을 담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사 중 3절에는 ‘북간도’라는 배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북방의 이국에서 ‘남쪽나라 내 고향’과 ‘못 잊을 동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사연이 소박하게 담겨 있는데다, 푸근하고 따뜻한 백난아의 창법과 잘 어우려져 한국적 정서와 망향의 아픔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전문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 방송 20돌을 맞아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를 조사해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재〉에 이어 전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2007년 백난아의 고향인 제주도에 찔레꽃 노래 공원과 노래비가 세워졌다. 몇 해 전, 한국방송윤리위원회의 오인(誤認)으로 월북작가의 작품으로 낙인 찍힌 바 있었으나 작사자 김영일씨의 항변으로 오인(誤認) 사실이 밝혀져 금지곡(禁止曲)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https://youtu.be/bFODkIOBOBc

[대사] 이른바 대동아전쟁의 풍운이 휘몰아치던 날,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슬픈 별 아래 살아야 했다. 절망의 황혼, 우린 허수아비였다. 슬픈 앵무새였다. 광란의 전쟁 앞에 바쳐진 슬픈 제물이었다

정거장마다 목이 메여 미친듯 남의 군가를 부르며 남의 전쟁터로 끌려가던 젊은이들의 충혈한 눈동자가 그 절망의 황혼을 보고 있었다.

산에 올라 소나무 껍질을 벗기는 근로보국대의 하룻날, 어린 소년들은 점심을 굶었고 고갯마루를 오르는 목탄차는 일제의 마지막 숨결인양 허덕였지. 까까머리에 국민복 을씨년스런 몸빼차림으로 한톨의 배급쌀을 타려고 왼종일 이른바 나라비를 섰고, 처녀들은 정신대에 뽑혀 갈까봐 시집을 서둘렀지.

못견디게 가혹한 그 계절에도 찔레꽃은 피었는데, 산천은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우린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는데...

[출처] 《유튜브》 가요백과(歌謠百科), 백난아 ‘찔레꽃’


https://youtu.be/2I-G5TKsp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