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들꽃산책] 홍릉숲, 여름꽃을 찾아서.. 황금비 내리는 모감주나무 (2021.06.26)

푸레택 2021. 6. 26. 20:29

△ 모감주나무
△ 능소화
△ 물푸레나무
△ 백합(百合)
△ 털부처꽃
△ 냉초

■ 신록 우거진 홍릉숲길을 거닐며

녹음이 짙어가는 신록(新綠)의 계절, 이슬비일까 보슬비일까 비가 물을 뿌리듯 조금씩 내린다.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동대문구 회기로에 위치한 홍릉숲을 찾아 나무와 풀꽃을 보며 유유자적 소요(逍遙)하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오는 길에 홍릉숲 바로 앞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과 영휘원을 잠시 둘러보았다.

△ 세종대왕기념관
△ 세종대왕기념관
△ 세종대왕기념관

마곡나루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6호선 공덕역에서 신내 방향 전철을 갈아탔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고려대역에 도착했다. 경희대 방향으로 5분 남짓 걸어가면 홍릉숲이 나온다. 봄에 두 차례 다녀갔으니 이번이 올해 세번째 방문이다. 홍릉숲 담장에는 능소화 꽃이 붉게 피어 초여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 능소화
△ 모감주나무

산림과학원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약초원으로 향했다. 약초원에 들어서자 머리에 왕관을 쓴듯 나뭇가지 가득 화려한 황금빛 꽃을 피운 모감주나무가 눈에 번쩍 들어온다. 초여름날 자신의 온 몸을 황금빛으로 덮어버린 모감주나무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초가을 주렁주렁 매달린 모감주나무의 세모꼴의 열매를 보면 그 독특함에 다시 한번 놀랄 것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모감주나무를 늘 내곁에 두고 싶다.

△ 모감주나무
△ 모감주나무의 열매와 씨앗 (사진출처: 구글)

모감주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고향으로 무환자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이다. 모감주나무의 열매는 꽈리 모양으로 생겼다. 열매 주머니 속에 반질거리는 까맣고 단단한 씨앗이 있다. 오래전엔 이 씨앗으로 염주를 만들었는데 워낙 귀한 탓에 모감주나무의 씨앗으로 만든 고급 염주는 높은 스님들 차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모감주나무는 염주나무라는 별명이 있다. 나무박사 박상진 교수는 불교에서 보살이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묘각(妙覺)'이라 하는데 여기에 구슬을 의미하는 주(珠)가 붙어 '묘각주나무'로 부르다가 모감주나무란 이름이 생긴 것으로 풀이한다.

△ 모감주나무

영어권에서는 모감주나무를 ‘황금비 내리는 나무’(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 모감주나무의 노란색 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금빛 꽃송이로 자신의 온몸을 뒤덮고, 꽃이 질 때는 황금비 쏟아지는 나무. 이렇듯 감성을 자극하는 나무를 보고 아무런 감흥도 감탄도 없다면 그는 도통(道通)한 사람이거나 생태적 감수성이 정말 무딘 사람이 아닐까.

△ 모감주나무

불현듯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시가 생각난다. 선생은 봄에 무더기로 피어난 벚꽃을 보고 왜 이리도 내 마음은 찢어지는지라고 느낌을 표현했는데 도통하신 만해 선생께서 황금비 내리는 모감주나무를 보셨다면 무어라 말씀하셨을까?

見櫻花有感(견앵화유감)
벚꽃을 보고 느낌이 일어

​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
(작동설여화 금춘화여설)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
(설화공비진 여하심욕렬)

지난 겨울 내린 눈이 꽃과 같더니
이 봄엔 꽃이 되려 눈과 같구나
눈도 꽃도 참 아님을 뻔히 알면서
왜 이리도 내 마음은 찢어지는지

△ 털부처꽃
△ 털부처꽃과 노랑어리연꽃

약초원 조그마한 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이 잔잔하게 피어있다. 싱그러운 초여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꽃만큼이나 아름답다. 연못가에는 어느 동호회 모임에서 나온 탐사팀들이 루페로 털부처꽃을 들여다보며 연구와 토의에 열중이다. 노부부가 도란도란 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꽃과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도 정겹다.

△ 동자꽃
△ 백합(百合)
△ 활량나물
△ 딱총나무

지난 봄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 그토록 아름답게 피어났던 봄꽃들. 금낭화도 백작약도 동의나물, 들현호색, 피나물, 윤판나물, 삼지구엽초 모든 봄꽃들은 다 지고 없다.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어 냉초와 범꼬리, 백합, 동자꽃, 활량나물, 큰까치수염, 어수리, 일월비비추 같은 여름꽃들이 피어있다.

△ 어수리
△ 일월비비추
△ 노각나무

오늘 뜻밖의 수확은 노각나무의 발견이다. 과학원 본관 앞쪽에 노각나무 한 그루가 소박하고 은은한 느낌이 드는 하얀 꽃을 높다란 가지 끝에 매달고 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비단결 같은 매끈한 수피(樹皮)가 나의 온 마음을 사로잡는다. 피부 미목(美木), 어찌 이리 나무껍질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 모과나무

모과나무와 백송, 배롱나무의 수피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감나무와 소나무 수피가 멋지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작나무 수피처럼 아름다운 모습 본 적 없다고 말한다. 서어나무와 쪽동백나무, 사람주나무를 본 사람이라면 그 멋진 수피를 잊지 못할 것이다.

△ 노각나무

나무박사 박상진 교수에 따르면 노각나무는 수피가 갓 돋아난 사슴뿔과 같아 나무 이름을 처음에는 녹각(鹿角)나무라고 불렀다가 노각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또 다른 이름인 금수목(錦繡木)도 비단을 수놓은 것 같다는 뜻이다. 아예 비단나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어쨌든 이 나무껍질의 아름다움은 나무나라 제일의 ‘피부 미목(美木)’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노각나무 껍질로 가장 품질 좋은 목기(木器)를 만들었다고 한다.

△ 노각나무 줄기, 꽃, 단풍 (사진출처: 구글)

노각나무는 차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으로 학명이 Stewartia koreana’로 Korea가 들어 있다. 우리 한국에만 자생하는 순수한 특산나무, 토종나무라는 뜻이다. 노각나무는 꽃이 청초하고 아름다우며 껍질이 비단결 같이 고운 정말 일품(一品) 나무다. 꽃과 줄기와 단풍이 모두 아름답고 멋진 노각나무가 우리 주변 정원수나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으면 좋겠다.

△ 2050탄소중립나무심기
△ 가수 남진

조경의 숲까지 산책을 한 후 밀레니엄동산으로 내려오니 가수 남진과 탤런트 김성환 등 낮익은 이름이 새겨진 팻말이 보인다. 알고보니 산림청에서 가수 남진씨 등 25명을 산림청 홍보대사로 위촉한 후 지난 4월 28일에 이곳에서 2050 탄소중립실현을 위한 나무심기 행사를 한 후 나무에 매달은 팻말이다.

△ 가수 김광진
△ 산림의 공익 가치
△ 물푸레나무

홍릉숲은 1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제1세대 수목원이자 산림연구의 산실이다.(1922년에 임업시험장으로 창립) 우리가 흔히 홍릉숲 또는 홍릉수목원이라고 부르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국립산림과학원(國立山林科學院, National Institute of Forest Science)이다.

△ 물푸레나무

국립산림과학원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산림청의 소속기관으로 산림환경·임산공학·산림자원·임업생산기술분야의 시험·연구·조사 및 시험림·육종림의 관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일반인에게는 주말에만 개방하는데 평일에도 사전예약으로 탐방이 가능하며 숲해설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 소나무와 너도밤나무

안내게시판에는 이곳은 국내외 다양한 식물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하고 있으며, 문배나무 기준표준목과 같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수종을 비롯하여 총 2,035종의 식물이 보존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 명성황후 능터

또한 이곳은 명성황후의 능터와 어정이 있는 유서깊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명성왕후의 능인 홍릉은 고종이 사망한 1919년에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으로 옮겨졌다. 어정(御井)은 고종이 명성황후의 능을 찾아와서 목을 축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홍릉터 아래쪽 조용한 숲길에 자리잡고 있다.

△ 어정
△ 중국굴피나무

밀레니엄동산 노송 굴피나무 아래에 곱게 늙으신 할머니 두 분이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고 찬송가를 부른다. 나태주 시인은 행복을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이라 했는데, 인생 황혼길엔 두 분 할머니처럼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가 있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누군가와 숲길을 걸으며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것이 노년의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에 등을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이한직 시인의 「낙타」
왜 이 시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일까

△ 중국굴피나무
△ 모감주나무

오늘 초여름 정취 가득한 홍릉숲을 소요하며 문득 드는 생각.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 세심한 마음 주심 감사. 그들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소통하는 마음 주심도 감사. 모감주나무의 황금빛 꽃송이에 가슴 뛰고 노각나무의 매끈한 나무껍질에 가슴설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온갖 거짓과 악의가 범람하는 세속 말[言] 속에 매몰되지 않고 이렇게 숲길 거닐며 관조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은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우리 꿈나무 아이들이 가끔씩이라도 나무와 풀꽃, 새들과 이야기하며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로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푸릇한 청춘들이 생태적 감수성이 충만하여 산에서 들에서 숲에서 소소한 즐거움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 모감주나무
△ 냉초
△ 털부처꽃

[사진] 홍릉숲에서 촬영 (2021.06.26)

/ 2021.06.26(토) 글=김영택


https://youtu.be/cNgKnh_DRK4

https://youtu.be/Y5b17c4Tltc

https://youtu.be/4RojlDwD07I

https://youtu.be/A6CAy_FVUo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