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자작나무', '선우사',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2021.06.25)

푸레택 2021. 6. 25. 09:37

■ 자작나무 (白樺) /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平安道) 땅이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ㅡ 『조광』 4권 3호 (1938)

■ 선우사(膳友辭) /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먹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감상]

●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⑧ 백석의 「선우사」와 가재미(上)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ㅡ「선우사」 중에서

백석은 정주(定州) 사람이다. 시인 백석의 고향 평북 정주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우리 근현대사의 많은 인사들이 정주 출신이다. 이광수, 김억, 김소월, 선우휘 등은 비교적 잘 알려진 정주 출신 문인들이다. 문인뿐만이 아니다. 해방 후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 통일교 교주 문선명, 소설가 이인성의 아버지인 역사학자 이기백, 국어학자 이기문(이기백의 동생),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문학평론가 백낙청의 백부)가 모두 정주 출신이다. 특히 백석과 백낙청은 본관이 같은 수원이기 때문에 이들은 친인척 일가 관계일 개연성이 높다. 백석은 이 유서 깊은 땅 정주에서 「정주성(定州城)」으로 데뷔한다.

시인 백석의 데뷔작이 「정주성」이라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당시 식민지 조선 문단은 모더니즘이 풍미하던 시대였고, 저마다 서구화되지 못해 안달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절에 일본 유학을 해 영문학을 전공하고 제임스 조이스도 소개한 이력이 있는 백석은 세계의 중심이 서구에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고, 태연히 자기 동네 이야기를 한 셈이다. 백석의 이 자신감은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가장 비근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백석은 어떻게 알았을까?

백석에게는 무엇보다도 김억-김소월로 내림되는 정주의 명문 오산학교의 전통이 있다. 김소월의 스승 김억은 제자 김소월을 발굴했고, 백석은 같은 학교 선배인 김소월을 몹시 선망했다고 한다. 선배란 무엇인가. 좋은 선배란 약자 후배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강자인 것이 아니라 후배가 진정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역할모델인 것이다. 백석은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가 아니고 소월을 낳은 정주 땅에서 자란 시인이다.

김억, 김소월이 바로 민요시인이었고, 특히 김소월은 기층민중의 생활언어로 일가를 이룬 시인이었다. 「정주성」으로 데뷔한 백석은 데뷔 후에도 평북 방언을 모르고서는 많은 부분이 해독 불가능한 시를 썼다. 이 자신감은 가장 비근한 것을 가장 비범한 것으로 일궈내는 저 선배 시인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찮은 반찬과 친구가 되어 있다는 「선우사(膳友辭)」라는 작품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시이다.

● 김주언의 음식인문학 ⑨ 백석의 「선우사」와 가재미(下)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선우사」 중에서

시의 제목 「선우사(膳友辭)」에서 ‘선(膳)’이란 ‘반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우’란 ‘반찬 친구’, 즉 반찬과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나’의 반찬 친구는 많지 않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반찬과 친구가 되어 “흰밥과 가재미와 나”를 묶어 ‘우리’라고 칭하고 있지만, 실상 반찬은 가자미(‘가재미’는 북한말이다)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단출하고 쓸쓸한 친구 사이가 아닐 수 없다.

가자미는 어떤 생선이기에 백석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것일까. 시인은 「가재미·나귀」라는 산문에서도 “동해(東海)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고 적고 있는데, 시인의 고향 북쪽에 한정해 보자면 가자미는 함경도의 대표적인 젓갈류인 가자미 식해의 주재료이기도 하고, 함흥 냉면의 고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생선 종류의 하나로서의 이런 특질이 이 시에서의 가자미의 본질은 아니다. 이 시에서 가자미의 본질은 무엇보다 가자미는 광어나 우럭 같은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가난한 이의 밥상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비근하고 하찮은 생선이 「선우사」의 주인공인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가자미라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비근한 생선이 가장 비범한 가능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백석에게는 거창하고 휘황한 것에 휘둘리는 일체의 허위의식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백석의 가능성일진대, 이 가능성은 기량이나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인간 자질의 문제라는 점에 우리는 방점을 찍자. 당신은 어떤 친구와 같이 밥을 먹는가. 혹 반찬뿐만 아니라 사람도 ‘하찮은 것’을 따로 분류해 놓고 단 한 끼도 이런 부류와는 밥을 같이 먹지 않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백석의 「선우사」를 권하고 싶다. 하찮은 것을 벗하는 백석, 즐기는 평양냉면 메밀면의 맛을 ‘슴슴하다’고 적는 백석,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백석의 모습이다. 하찮은 것은 없다.

■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명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굿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잠'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

ㅡ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 문학그림전에 나온 최석운 화가의 '흰 바람벽이 있어'

한 편의 잔잔한 영화와도 같다.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시간, 적막한 방에 홀로 앉은 남자는 남루하고 비참한 현실을, 늙으신 어머니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사무치는 슬픔과 그리움에 젖는다.

백석(白石·1912∼1995)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는 1939∼1945년 만주를 떠돌던 시인의 절절한 심정이 배어 있다. 식민지 시대에 별처럼 등장한 꽃미남 '모던 보이'는 지금 길상사로 변신한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 여사(자야)와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헤어진 뒤 만주로 떠났다. 이상향과 사랑의 시원을 찾아서 떠난 자발적 유랑의 길이었으나 하루하루 일상은 힘들고 고달팠다. 그것은 동시에 그의 가장 아름답고 빼어난 시들이 쓰인 시절이 되었다.

그리고 백석은 어느 날부터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맑은 서정적 시어에 굽이굽이 이야기가 녹아 있어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를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만 600여 편을 헤아릴 만큼 한국 문학사에서 빼어난 시적 성취를 인정받고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백석의 시가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제 통인옥션갤러리에서 개막한 문학그림전이다. 백석 시와 화가 10명의 작품이 대등하게 교감하는 전시에서 화가 최석운 씨는 70년 전 시인의 쓰라린 고독을 오늘의 현실로 무리 없이 불러왔다.

시는 어렵고 지친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바라보는데, 그렇다고 절망에서 끝나지 않는다. 운명의 짐을 하늘이 부여한 몫으로 선선히 받아들이되 꿋꿋함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조용히 길어 올린다. 마지막 대목은 이런 구절로 이어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절망의 견고한 벽 앞에서도 삶을 '포기'가 아닌 그 반대의 '긍정'과도 같은 그 무엇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남루했던 백 년 전에 태어난 한 남자가 지금, 무엇이든 넘쳐나서 큰일인 이 시절의 벽에 대고서 마음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치유를 건네주는 듯하다.

흰 바람벽이 여기에 있다.

글= 고미석 (2012.09.08)

/ 2021.06.2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