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강물' 오세영, '백담사', '나 없는 세상', '논두렁에 서서' 이성선 (2021.06.07)

푸레택 2021. 6. 7. 17:57

 

 

■ 강물 / 오세영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沼)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 나 없는 세상 / 이성선

​나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저 물 속에는
산 그림자 여전히 홀로 뜰 것이다

■ 논두렁에 서서 / 이성선

갈아 놓은 논고랑에 고인 물을 본다
마음이 행복해진다
나뭇가지가 꾸부정하게 비치고
햇살이 번지고
날아가는 새 그림자가 잠기고
나의 얼굴이 들어 있다
늘 홀로이던 내가
그들과 함께 있다
누가 높지도 낮지도 않다
모두가 아름답다
그 안에 나는 거꾸로 서 있다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이
본래의 내 모습인 것처럼
아프지 않다
산도 곁에 거꾸로 누워 있다
늘 떨며 우왕좌왕하던 내가
저 세상에 건너가 서 있거나 한 듯
무심하고 아주 선명하다

백담사 / 이성선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 2021.06.07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