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출처] 시집 《소주병》
■ 애장터 / 공광규
입을 꾹 다문 아버지는
죽은 동생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앞산 돌밭에 가 당신의 가슴을 아주 눌러놓고 오고
실성한 어머니는 며칠 밤낮을
구욱구욱 울며 마을 논밭을 맨발로 쏘다녔다
비가 오는 날마다
누군가 밖에서 구욱구욱 젖을 구걸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누구유!” 하며 방문을 열어젖혔는데
그때마다 산비둘기 몇 마리가
뭐라고 뭐라고
젖은 마당에 상형문자를 찍어놓고 돌밭으로 날아갔다
어머니가 그걸 읽고 돌밭으로 가면
도라지꽃이 물방울을 매달고 서럽게 피어 있었다
■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 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 마른 귀지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 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 다니는 하루 수백 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청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
[출처] 시집 《담장을 허물다》
■ 얼굴 반찬 /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출처] 시집 《말똥 한 덩이》
[해설과 감상]
‘오순도순’이란 낱말이 한 시대의 유행어도 아닌데 요즘엔 이 낱말을 통 듣지 못한다. 오순도순 식구끼리 모여서 밥 한번 같이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닌 세상이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끼리의 그저 밥 한 끼인데 무슨 동창회처럼 날을 잡고 받아서야 가능한 회식이 되어버렸다. 가족이 둘러앉아 다정하게 혹은 퉁명스럽게라도 말을 건네고 생선 가운데 토막 언저리에서 젓가락 부딪는 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먹는 일이 보기 드문 현상이 된 것이다.
각자 생활의 사이클이 같지 않으니 제각각 알아서 해결하는 식사가 보편화되어있다. 각자가 외로운 하숙집에 기거하는 동거인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한끼 줍쇼’하며 불쑥 찾아오는 식객이 썩 내키지 않는 것이다. 어쩌다 모여 식사할 경우에도 TV가 아내의 얼굴을 가리고 연예인의 영양가 없는 수다가 자식과의 대화를 가로막곤 한다. 이런 형편이니 그 옛날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는 일’은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정경이 되어버렸다.
10년 전 한 기관의 ‘친족범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4촌 이내를 친족으로 여겼다. 젊은 응답자일수록 그 범위가 좁혀졌다. 지금 조사하면 아마 친족의 범위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예전보다 4촌의 수가 훨씬 적어졌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4촌들의 이름들을 다 모른다고 답한 사람이 절반은 된다고 한다, 촌수 계산 못하는 것을 오히려 당연시하고 겨우 4촌을 알아도 6촌은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내 경우에만 해도 부모들이 살아계실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 후로는 4촌도 집안에 혼사나 있어야 겨우 얼굴 보고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우리의 민법에서는 친인척의 범위를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혼인으로 맺은), 그리고 배우자까지로 정해두고 있다. 각종 경제 법령에 적용하는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여 친족범위를 축소 조정해야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하물며 친인척은 고사하고 가족들 간에 벌어지는 빈번한 사건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약하게 치닫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극도의 개인주의 사회임을 실감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가족은 다행히 건강하고, 힘겹지만 신통하게 지켜져 가고 있다. 하지만 서로 얼굴 쳐다보며 그 얼굴을 반찬삼아 눈빛으로 정을 나누고 풀잎 반찬을 먹든 옛 시절이 마냥 그립다. (글: 권순진 시인)
/ 2021.06.02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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