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파주에게' 공광규, '철조망에 걸린 편지' 이길원 (2021.05.10)

푸레택 2021. 5. 10. 15:19

 

 

■ 파주에게 / 공광규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임진강변 군대 간 아들 면회하고 오던 길이 생각나는군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를 비웃듯 철책 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던
그러더니 나를 놀리듯 철책 선을 훌쩍 넘어오던 새떼들이

새떼들은 파주에서 일산도 와보고 개성도 가보겠지
거기만 가겠어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일본과 지나반도까지 가겠지
거기만 가겠어
황해도 평안도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도 가겠지

그러면서 비웃겠지 놀리겠지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국토에 수십 년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는 바보들
얼마나 아픈지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 보라지

이러면서 새떼들은 세계만방에 소문내겠지
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고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철책선 주변 들판에 철새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알겠군
자유를 보여주려는 단군할아버지의 기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

■ 철조망에 걸린 편지 / 이길원

어머니,
거친 봉분을 만들어 준 전우들이
제 무덤에 철모를 얹고 떠나던 날
피를 먹은 바람만 흐느끼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총성은 멎었으나
숱한 전우들과 버려지듯 묻힌 무덤가엔
가시 면류관
총소리에 놀라 멎은 기차가 녹이 슬고
스러질 때까지 걷힐 줄 모르는 길고 긴 철조망
겹겹이 둘러싸인 덕분에
자유로워진 노루며 사슴들이
내 빈약한 무덤가에 한가로이 몰려오지만
어머니,
이 땅의 허리를 그렇게 묶어버리자
혈맥이라도 막힌 듯 온몸이 싸늘해진 조국은
굳어버린 제 심장을 녹일 수 없답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피를 그렇게 마시고도
더워질 줄 모르는 이 땅의 막힌 혈관을
이제는 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식어버린 제 뼈위에 뜨거운 흙 한줌 덮어줄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무덤가에 다투어 피는 들꽃보다
더 따뜻한 손길을

■ 望鄕(망향) / 印少里(인소리)

오십년 끊긴 안부가
바람으로 서 있다
목이 멘 이산의 아픔
불러보는 사람아
송악산 솔밭 사이로
고향 하늘 보인다

망향의 아픈 구비
얼마를 울었을까
핏금친 산하에서
歸鄕(귀향)을 꿈꾸나니
그 언제 사랑하는 사람과
고향 땅을 밟을까

반 백년 침묵 속에
한 맺힌 임진강아
神(신)의 손도 비켜간
傷痕(상흔)을 찍어내어
피묻은 謀反(모반)의 땅에
둥근 해를 띄워라

(임진각 주변에 세워진 碑)

● 고향(故鄕) / 정지용(鄭芝溶)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2021.05.10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