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순우리말 같은 한자어의 속뜻
‘선생이 여덟살 때 산에 하늘이 맞닿은 것을 보고 하늘이 어떠한가 만져보자고, 위태로움을 무릅 쓰고 期於(기어)이 산 꼭대기에 올라보니 거기서도 하늘이 썩 멀 뿐더러….’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을 추모하던 육당 최남선의 이 글에서 순 우리말 같은데 한자로 쓰여진 ‘기어이’를 만날 수 있다. ‘결국에 가서는’이란 뜻의 한자어이다.
‘도대체’도 순 우리말 같지만 한자 조합이다. 도(都)는 도시 혹은 전부를, 대체(大體)는 큰 몸, 큰 줄거리를 뜻한다. ‘전체의 큰 줄거리’라는 것이다. “도대체 걔 뭐냐?”라는 질문에서 ‘도대체’는 포괄할만한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라는 주문을 이끌어내는 부사이다. 대관절(大關節)도 도대체와 같은 구조, 같은 의미이다.
용비어천가 26장에 나오는 ‘於此於彼(어차어피) 寧殊後日(영수후일)’에서 어차어피는 ‘어차피’이다. ‘이러든 저러든’이라는 뜻으로 영어의 ‘anyway’에 해당한다.
별안간(瞥眼間)도 알고보면 한자어인데 순식간(瞬息間) 보다 좀 더 빠른 느낌이다. 순식간은 한 번의 눈깜빡(瞬)에다 들숨날숨 한 호흡(息)을 더한 시간인데 비해, 별안간은 눈으로 ‘흘깃’ 보는 속도이다.
한자어도 우리말임은 물론이다. 순우리말 같은 느낌의 한자어에는 물론(勿論)도 있다. 또, 심지어(甚至於), 졸지(猝地)에, 미안(未安), 작정(作定), 호랑(虎狼)이, 간신(艱辛)히 등도 그렇다.
‘염병(染病)하네’와 ‘창피(猖披)해’도 알고보면 한자어이다. 염병은 전염병의 준말이다. 창피는 초나라 굴원의 ‘이소’(離騷:소란한 데를 떠남)라는 시에 나온다. 何桀紂之猖披兮(하걸주지창피혜)라는 구절은 ‘나라를 망해먹은 걸, 주왕은 궁궐을 급히 빠져 나가면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허둥대는가’라는 뜻이다. 농단(壟斷)의 끝은 창피이다.
[출처] 헤랄드경제(2017. 03. 14)
/ 편집 택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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