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에 한 사람 / 마더 테레사 ??
나는 결코 대중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한 번에 단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나는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의 물과 같다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 정직한 소년 ??
1990년대, 미국의 사업가 케네스 벨링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빈민가를 지나던 중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벨링의 비서는 빈민가 사람이 주운 지갑을 돌려줄 리 없다며 포기하자고 했지만, 벨링은 지갑을 주운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습니다. 비서는 “지갑에 명함이 있으니, 돌려줄 마음이 있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겁니다.”라며 그만 가자고 종용했지만 벨링은 침착한 모습으로 계속 기다렸습니다. 날이 어두워졌을 무렵 전화가 왔습니다. 지갑을 주운 사람은 남루한 차림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이 돌려준 지갑에는 한 푼의 돈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지갑을 돌려준 소년이 주저하면서 말했습니다.
“혹시 돈을 좀 주실 수 있나요?”
비서가 그럴 줄 알았다며 소년을 비웃었지만 벨링은 웃으며 소년에게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1달러만 주시면 돼요.”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찾았지만, 전화를 걸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돈을 빌려줄 사람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니까 빌린 돈을 갚으려고요.”
소년의 말에 벨링은 의아해 하며 물었습니다. “내 지갑에 돈이 있었는데 왜 그 돈을 쓰지 않았니?”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건 제 돈이 아니잖아요. 남의 돈을 허락도 없이 쓰면 안 되잖아요.” 소년의 맑은 눈을 본 비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습니다.
소년의 말과 행동에 감동한 벨링은 이후 빈민가에서 학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와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 할머니의 고무신 ??
30여 년 전 제가 대학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대학의 과동기들과 함께 자주 이용했던 국밥집이 있었는데, 그 국밥집은 열 명도 앉기 힘든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국밥집의 음식은 맛도 좋고 저렴한 가격에 양도 푸짐해서 점심 시간에는 기다려서 식사해야 할 정도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국밥집 선반 위에는 식당 할머니가 깨끗이 닦아 놓는 고무신 한 켤레가 항상 반듯이 놓여 있었습니다. 고무신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궁금하여 한 학생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고무신을 선반 위에 소중히 보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몇 년 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지.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는데 그만 슬리퍼 끈이 끊어졌다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멍하니 서 있었는데, 얼마쯤 지났을까 어느 학생이 고무신을 대뜸 내 발 앞에 놓고는 휙 사라지는 거야.”
“아마도 내 모습을 보고 신발 가게에 가서 고무신을 사온 게지. 어찌나 고맙던지. 그래서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선반 위에 올려놓고 쳐다본다네.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려고...”
[출처] ‘따뜻한 하루’ - 옮겨온 글
?? 아름다운 사람들 ??
나는 30대 초반의 회사원이다. 며칠 전 급한 볼일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출발 전부터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차안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며 마시려고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서 카페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커피 전문점에는 발달장애인 청년 한 명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카페라테를 들고 나오다가 출입문에 살짝 부딪혔다. 순간 종이컵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혔는지 커피가 반쯤 흘러 나왔다.
나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서 화를 내며 말했다. “뚜껑 하나 제대로 못 닫아 커피를 쏟게 하느냐?” 종이컵 뚜껑을 잘못 닫은 그 청년 직원은 어눌한 발음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커피 나왔다는 신호의 진동벨이 앞 좌석에서 울렸다. 앞 좌석의 아주머니가 커피를 받아서 내게 내밀며 말했다. “저, 카페라테예요. 저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늘 남겨요. 그거 제가 마실 게요. 우리 바꿔 마셔요.”
나는 그 아주머니가 손에 쥐여준 그 분 몫의 카페라테를 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 여운이 오래 갔다.
어느 날, 사무실 인근의 커피집에 들렀더니 낯선 청년이 새로 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가만 보니 행동이 느리고 말이 어눌했다. 발달장애인이었다. 순간 그 청년을 채용해 준 커피점이 몹시 고마웠다.
그건 단순히 취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눈부신 날개를 달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시선을 빼앗은 또 한 사람, 40대 아주머니 한 분이 구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 아주머니는 오직한 사람만을 보고 있었다. 아주 애틋하고 절절한 눈빛으로... 청년의 어머니라는 걸 직감했다.
발달장애인인 아들의 첫 직장에서 그 아들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땠을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미안하고 감사하고 참으로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눈물을 참고 있는 듯했다.
순간 나는 그 아주머니를 안심시켜 주고싶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말했다.
“저 여기 단골인데요. 아무 걱정 마세요.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다 착하고 성실해요. 아드님도 잘 할 거예요.”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걸 보고 나도 울컥했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서로 어깨를 내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 인(人)의 글자처럼...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몫인 온전한 카페라테를 내게 준 아주머니. 코로나로 인해 몇 개월간 집에 못 들어가고 보고 싶은 어린 딸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도 울지 않는 간호사. 화재 현장에서 부상을 입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가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소방관.
장사가 잘 안되는 동네 입구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살 때엔 제일 볼품 없는 것만 골라 넣는 퇴근길의 영이 아버지. 마스크를 몇 개씩 여분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마스크를 안 쓴 사람에게 말없이 내어주는 할머니. 이렇듯 참으로 많은 보통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출처] ‘좋은 글’에서 옮김
?? 빚진 사람이 없어진 마을 ??
관광 수입으로 살아가는 어느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전염병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여행객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민박집에 방을 잡았고, 20만 원의 숙박료를 지불했다.
숙박료를 받은 민박집 주인은 정육점으로 달려가 그동안 외상으로 밀려있던 고기값 20만 원을 갚았다. 정육집 주인은 세탁소로 달려가서 그동안 밀려있던 세탁비 20만 원을 갚았다. 세탁소 주인은 맥주집으로 달려가서 그동안 외상으로 마신 맥주값 20만 원을 갚았다.
맥주집 주인은 민박집으로 달려가서 빌려 쓴 차용금 20만 원을 갚았다. 돈이 순식간에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 다시 민박집 주인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여행객들이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숙박집 주인에게서 20만 원을 되돌려 받고는 떠나버렸다.
어찌 된 일일까? 그 마을엔 돈을 번 사람도 없고 쓴 사람도 없었다. 그게 다일까? 아니다. 그 일로 인해 그 마을에 빚진 사람도 다 없어졌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
?? 민손의 효(孝) 이야기 ??
춘추시대 말엽, 노나라에 공자가 아끼는 제자 중에 ‘민손(閔損)’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민손은 자가 자건(子騫)으로 공자보다 15세가 적었습니다. 비록 귀족 출신이 아니었고 환경도 빈궁하였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어진 성품이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민손은 어린 나이에 생모가 일찍 죽고 아버지가 재혼하여 계모가 들어와서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계모는 자신이 낳지 않은 본처 소생의 민손을 미워하며 심하게 학대하였습니다.
계모는 한겨울에도 민손에게는 홑바지를 입히고, 친자식에게는 목화솜 바지를 입혔습니다. 다만 민손의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는 자식들을 차별하지 않은 듯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으므로 아버지는 민손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느 날, 민손이 아버지와 마차를 타고 이웃 마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동설한이라서 날이 너무 추워서 말의 고삐를 잡은 민손이 고삐를 자주 놓쳤습니다. 이를 본 아버지가 뭔가를 느꼈는지 민손의 옷을 만져보니 목화솜 대신 갈대잎을 넣은 홑바지였습니다.
비로소 민손의 아버지는 눈치를 채게 되었습니다. 배가 다른 소생의 자식이라고 민손이 계모로부터 차별을 받고 살아온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는 가던 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와 계모에게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행동에 당황한 민손은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만류하였습니다.
“아버님! 어머니와 함께 살면 나만 고생하면 됩니다. 만약 어머니가 나가신다면 아버지와 두 동생까지 다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새 어머니를 들여오신다면 전처 자식들인 저와 두 동생을 또 미워할 게 뻔합니다. 부디 화를 거두시고 두 동생을 위해서라도 함께 살게 해 주십시오.”
“지금은 저 혼자 춥지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면 세 명의 아들이 춥게 됩니다.”
마침 부엌에서 차를 내 오다가 문 밖에서 부자(父子)의 대화를 엿들은 계모는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던 전처 소생의 아들이 간곡하게 만류하는 말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계모는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뉘우치는 계모의 모습에 결국 아버지는 화를 풀고 어머니를 용서했습니다.
“민손의 말이 지극히 옳구려! 당신을 내쫓아야 마땅하겠지만 어린 민손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의 말이 옳은 것 같소. 앞으로 두 동생처럼 민손에게도 똑같이 사랑하고 돌봐 주시구려!”
그 일이 있은 후 계모는 민손을 자기가 낳은 자식보다 더 사랑하고 아꼈고, 온 가족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출처] 삼강행실도, ‘받은 글’ 옮김
ㅡ 사진 제공: 안정근 사진작가(화엄사의 홍매실)
/ 2021.03.1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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