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형수 이 중사의 이야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한 고아원이 있었다. 원생들은 만 18세가 되면 원을 떠나게 되어 있다. 이 모 군이 18세로 고아원을 떠나게 되었다. 갈 곳이 없는 이 군은 우선 군에 입대하기로 했다. 갈 곳과 직장은 그다음의 문제로 미루었던 것이다.
군에 머물면서 차라리 직업군인이 되면 어떨까 싶어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중사까지 진급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저주스러운 운명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울적함은 쌓여만 갔다. 휴가 때가 된다. 갈 곳이 없어 고아원으로 가면 반겨주기는 하나 사랑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군에서 사귄 친구들도 때가 되면 모두 자기 부모 형제가 있는 가정으로 가버린다. 자기의 처지를 아는 여자가 있어 사랑과 결혼을 할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에 대한 원망스러운 반항심은 쌓여갔다.
어느 날 이 중사는 신병들에게 실탄사격 훈련을 시키다가 수류탄 두 개를 훔쳐 군복에 넣었다. 소총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소지하고 탈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안동 시내로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고 취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동안에 늦은 오후가 되었다.
그때 문화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끝낸 사람들이 밀려 나오는 것을 본 이 중사는 자신도 모르게 ‘너희들은 모두 즐겁게 살고 나만 버림받으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홧김에 수류탄 꼭지를 빼서 군종 속에 던졌다. 여러 사람이 다치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되었다. 이 중사는 체포 구속되고 군의 상위층 책임자들까지 군복을 벗어야 하는 결과로 번졌다.
이 중사는 남한산성 밑에 있는 육군교도소로 이송되었다. 군사 재판에서는 사형이 언도되었다. 이 중사는 삶의 모든 희망을 포기했다. 홀로 살아남아 인생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단념해 버렸다.
교도소에서 이 중사를 맞이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담당 군목이었던 군목은 이 중사와의 면접을 요청했고 군목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중사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혼자 조용히 있다가 죽기를 원했다. 죽음을 스스로 감수하기로 했다.
군목은 이 중사를 위해 기도도 하고 신앙으로 이끌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했다. 그때 군목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 이 중사를 저렇게 만들었는가. 사랑의 단절이었다. 이 중사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다면 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런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중사에게는 사랑이 없었다. 그러면 이 중사를 사랑해주지 못한 죄는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또 내 책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중사가 사형을 받는 것도 우리 모두의 죗값을 대신하는 것이다. 책임은 이 중사를 사랑하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군목은 어렵게 이 중사와의 면담을 가졌다. 그리고 이 중사의 손을 붙들고 용서를 빌었다. "지금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니까 네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어야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 중사도 함께 울었다. "저도 사랑을 받았든지, 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이런 죄인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울었다. 서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중사는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군목은 이 중사에게 “과거에도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너를 사랑하며 앞으로도 네 영혼을 사랑해줄 분에게로 가자.”고 말했다. 이 중사는 그분이 누구냐고 물었다. 군목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가르쳤다. 이 중사는 “목사님, 저를 그분에게로 인도해주세요. 저는 갈 곳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다음부터 이 중사는 기도를 함께 드렸고 성경을 읽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기를 용서해주실 것임을 믿었다. 하루는 이 중사가 목사님에게 물었다. 자기가 죽을 때 신체의 여러 부분들을 기증하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허락이 된다면 내 몸 전체라도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자기도 한 번만이라도 누군가를 사랑해보고 싶다는 애원이었다.
목사는 앞뒤 사정을 알아보고 이 중사에게 알려 주었다. 이 중사는 총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장기는 사용할 수 없고 눈은 원하는 환자에게 이양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중사는 꼭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사형 집행이 진행되는 이른 아침이었다. 앰뷸런스가 형장에 도착하고 이 중사가 열린 문으로 내려섰다. 목사님 곁으로 다가가 안과 군의관님이 오셨느냐고 물었다. 군의관이 앞으로 나아와 이 중사의 손을 잡았다. 이 중사는 군의관의 두 손을 붙잡고 “군의관님, 저는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 눈을 받는 사람은 육신의 눈도 뜨고 마음의 눈도 떠서 제가 못하고 가는 사랑을 대신하여 여러 사람에게 베풀어달라고 부탁해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목사가 시간이 다 되었는데 남기고 싶은 유언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 중사는 “없습니다. 제가 목사님과 함께 부르던 찬송의 3절에서 마지막 절로 넘어갈 때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절차대로 이 중사는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아직도 내 인생이 오래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이 중사는 죽음의 문 앞에 섰을 때 그것을 깨달았다. 사랑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아직 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 최고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출처] 김형석, 「백년을 살아보니」, pp.165~169
/ 2021.01.1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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