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감동글] 속 터진 만두 (2021.01.19)

푸레택 2021. 1. 19. 17:45

 

 

■ 속 터진 만두

60년대 겨울, 인왕산(人王山) 자락엔 세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곳엔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빈촌 어귀에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 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 둔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이집 만두가게 주인은 '순덕 아지매'다.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제법 싸늘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한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아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꼬부랑 골목길을 오르는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났다. 그들 남매였다. 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 적 없다. 이제부터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예닐곱 살쯤 되는 남동생이 답했다.
"누나야, 내가 잘못 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달랠까 하다가 무안해 할 것 같아 그냥 가게로 내려왔다.

이튿날, 보따리를 든 남매가 골목을 내려와 만두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누나가 동전 한 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거렸다.
"어제 아주머니가 안 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를 가지고 갔구먼요."

어느 날 저녁 나절, 보따리를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치길래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불렀다.
"얘들아, 속이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먹자꾸나."

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습니다만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래요." 하고는 남동생 손을 끌고 올라가더니
"얻어먹는 버릇 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거야" 한다.
어린 동생을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내려와 순덕 아지매 귀에 닿았다.

어느 날, 보따리를 들고 내려가는 남매에게 물었다.
"그 보따리는 뭐니? 어디 가는 거야?"
누나 되는 여자 아이는 땅만 보고 걸으며
"할머니 심부름 가는 거예요."라고 메마른 한마디 뿐이다.

궁금해진 순덕 아지매는 이리저리 물어봐서 그 남매의 집 사정을 알아냈다. 얼마 전에 서촌(西村)에서 거의 봉사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세 식구가 이리로 이사와 어렵게 산다는 것이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을 낳다가 이승을 하직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 종로통 포목점에서 바느질거리를 맡기면 어린 남매가 타박타박 걸어서 종로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이다.

응달진 인왕산 자락 빈촌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동생이 만두 하나를 훔친 이후로 남매는 여전히 만두가게 앞을 오가지만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지나간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남매에게 "너희 엄마 이름이 봉임이지? 신봉임 맞지?" 하고 묻자,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아이고, 봉임이 아들딸을 이렇게 만나다니 천지 신명님 고맙습니다."
남매를 껴안은 아지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 없는 친구였단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 살아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 집에 쌀도 퍼담아 주고 콩도 한 자루씩 갖다 주었었다."

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나절 올라갈 때는 꼭 만두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 순덕 아지매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순덕 아지매는 관청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로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 개는 아예 만두피를 찢어 놓았다. 이렇게 인왕산 달동네 만두솥에 속 터진 만두가 익어갈 때 만두솥은 눈물을 흘렸다.

30여 년 후 어느 날, 만두가게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고 중년신사가 내렸다.
신사는 가게 안에 꾸부리고 만두를 빗는 노파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할머니..." 하고 말끝을 잇지 못한다.
신사는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바라다본다.
"제가 신봉임 아들입니다. 기억 나실는지..."

할머니는 신사를 보며,
"봉임이..."하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다.
그는 서울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유학까지 다녀와 병원 원장이 된 봉임이 아들*이었다.
*(최낙원 강남제일병원 원장)

[출처] 미상 - '보내준 글' 옮겨 적음

/ 2021.01.1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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