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1987년 신촌' 기명숙 (2020.12.29)

푸레택 2020. 12. 29. 21:49

 

 

■ 1987년 신촌 / 기명숙

들국화와 애인을 동시에 사랑했지
비밀한 양다리 전략은 서울 변방을 기웃거릴 내 귀중한 양식

아현동 굴레방다리 사랑을 씹다 버린 콘돔이 널브러져 있고
사람들 울컥울컥 토해내는 아현역 노란 멍울 프리지아 꽃집
새벽녘 매연가스는 헛배앓이에 특효약이었다 궁핍은 이주민과 샴쌍둥이

내 손아귀는 애인을 잃고 애인에게 도망치고 신촌 가파른 뒷골목,
그 붉은 립스틱 언니들 홍등 속으로 애인을 빼앗아 갔네

마포 공덕 쪽이든 신촌 방향이든 가야 하는데 토껴야 하는데
설익은 내 청춘은 최루催淚를 흘릴 뿐
애인은 입술 포갠 뒤 화염병 같은 케이크에 초를 꽂았지

행— 진—
행— 진—
갈기를 늘어뜨리고 들국화는 절정을 향해 포효하는데 나는

뒷걸음치고 뒤통수는 주먹만큼 작아지고 신촌 로터리 옆구리에선
누런 들국화가 펑펑 지고 있었다

[감상과 해설]

영화 '1987년'으로 그 해에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려졌지만, 당시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해가 아닐 수 없다. 전두환의 호헌과 재야 민주세력 그리고 대학생들이 외쳤던 직선제 개헌 요구는 첨예하게 대립했고 그 와중에 영화에 잘 묘사가 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고교 국어교사였던 나는 네 시 반이면 퇴근하여 시내로 나가 시위에 합류했고, 이듬해에는 대학 후배이자 민주화를 외치며 분신한 박래전 군의 장례행열에 동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전두환 군부세력에 맞선 민주 시민, 특히 넥타이부대들의 함성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명숙의 시 '1987년 신촌'은 제목 그대로 1987년의 신촌 상황을 시적으로 잘 묘사한다.

첫 행 ‘들국화와 애인을 동시에 사랑했지’에서 ‘들국화’는 중의적이다. 가을꽃 들국화이기도 하지만, 전인권을 중심으로 한 보컬그룹 이름이기도 하고 노란 연기를 뿜었던 최루탄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쩌면 시적 상황 묘사를 위한 상상력일 수도 있겠지만 시인으로서는 한창 젊었던 때이니 이때 연애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울 더구나 대학가인 신촌에서는 애인과 사랑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리에 퍼지는 최루탄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이를 시인은 ‘비밀한 양다리 전략’이라 칭하는데 그것이 호남 출신인 시인에게는 ‘서울 변방을 기웃거릴 내 귀중한 양식’이 되었던 모양이다.

1987년의 신촌 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하여 이 시가 민주화를 외친다거나 어떤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는 도구로 쓰이지는 않는다. 시인은 시적 화자의 시선을 통해 1987년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어쩌면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당시 신촌 주변 묘사가 돋보인다. ‘아현동 굴레방다리 사랑을 씹다 버린 콘돔이 널브러져 있고 / 사람들 울컥울컥 토해내는 아현역 노란 멍울 프리지아 꽃집’이 그러하다.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한 생존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몸부림도 보인다.

젊은이들이 연애하며 피임을 했을 터이니 콘돔이 쓰였으리라. 그러나 여기서는 성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쓰레기를 그렇게 묘사했을 뿐이다. 게다가 ‘씹다 버린 콘돔’과 ‘노란 멍울 프리지아 꽃집’은 기막힌 대비이다. 콘돔으로 상징되는 쓰레기와 프리지아 꽃의 대비 - 어쩌면 풋사랑 혹은 자유연애를 나타내면서 그 위에 덮인 최루탄 가스를 대비하여 그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다음 행도 마찬가지이다. ‘새벽녘 매연가스는 헛배앓이에 특효약’이라 했는데 그만큼 최루탄 가스는 빈번했다. 그러나 신촌은 번화가가 아니다. 신촌, 아현역의 ‘궁핍은 이주민과 샴쌍둥이’란 표현처럼 길가에 늘어선 화려한 상가들 뒤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정치적 상황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낭만적인 사랑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의식이 있는 대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갔고, 그런 일이 빈번했다. 때문에 시위대 대열에 있던 시적 화자는 최루탄이 터질 때 ‘내 손아귀는 애인을 잃고’ 최루탄을 피해 ‘애인에게 도망치고 신촌 가파른 뒷골목’으로 뛰었을 것이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를 빼앗아 간 것은 최루탄만이 아니라 ‘그 붉은 립스틱 언니들 홍등’이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 신촌역과 아현역 인근에 사창가가 있었다.

​시위대이건 구경꾼이건 최루탄이 터지면 날리는 최루 가스를 피해 ‘마포 공덕 쪽이든 신촌 방향이든 가야’ 했다. 시쳇말로 ‘토껴야’ 했다. 그러나 ‘설익은’, 미처 피하지 못한 시적 화자의 ‘청춘은 최루催淚를 흘릴 뿐’이었다. 화자와 애인 역시 시위대에 있었던 모양이다. 애인은 화자와 ‘입술 포갠 뒤’에는 화자를 놓아두고 시위대열 앞에 서서 ‘화염병 같은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는데 그냥 회염병을 던지며 싸웠다는 말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함성. ‘행— 진— / 행— 진—’ 1985년에 나온 들국화의 노래 '행진'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많이 불리던 노래였다. 1993년에 윤도현 밴드가 다시 불러 또 히트한 노래 -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가 있지만, 1987년 시위대는 그 노래보다 더 우렁차게 ‘행— 진—’을 외쳤다. 그러나 행진하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이 ‘갈기를 늘어뜨리고’ 날아오고 노란 최루가스는 ‘절정을 향해 포효’했다. 그때 애인의 손을 놓친 화자는 최루탄을 피해 도망을 쳤어야 했으리라. 이 부분 표현이 절묘하다. ‘갈기를 늘어뜨리고 들국화는 절정을 향해 포효하는데 나는’이라 했다. 분명 ‘나는’은 내용상 연을 달리한 다음 행에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붙어 있다. 결국 최루탄이 쏟아지는데 나는 행진을 외치는 시위대 속으로 다시 합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화자는 어찌했을까. 최루탄을 피해 ‘뒷걸음’쳤다. 그러니 최루탄 속에서도 ‘행진’을 외치는 시위대의 젊은 대학생들에게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이를 ‘뒤통수는 주먹만큼 작아지고’라 표현하고 있다. 시위대에 있다가 최루탄을 피해 뒷걸음치는 사람을 누가 욕하겠는가.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며 그나마 눈치를 봐야 했던 화자는 그만큼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시행배열의 맛이 한 번 더 이루어진다. ‘뒷걸음치고 뒤통수는 주먹만큼 작아지고 신촌 로터리 옆구리에선’이라 했는데 ‘신촌 로터리 옆구리에선’은 내용상 두 행에 걸쳐진다. 즉 ‘신촌 로터리 옆구리에선’ 나는 ‘뒷걸음치고 뒤통수는 주먹만큼 작아지고’ 했던 것이고 바로 그와 동시에 ‘신촌 로터리 옆구리에선 / 누런 들국화가 펑펑 지고 있었다’가 된다. 펑펑 지고 있던 들국화 - 바로 시 ‘1987년 신촌’이 그랬다는 말이다. 즉 시의 제목 ‘1987년 신촌’에 이어질 부분이 바로 마지막 행 ‘누런 들국화가 펑펑 지고 있었다’이다. 제목과 마지막 행 중간에 위치한 모든 연과 행은 그 구체적 상황 묘사가 된다.

시가 정치‧사회적 사건을 소재로 했을 때 우리는 그 시가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어떤 신념을 표현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시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저항시는 저항할 대상이 사라지면 저항시로서의 생명이 끝난다. 그렇기에 1987년 당시 호헌이라든가 직선제 개헌이란 신념과는 별개로 1987년 신촌의 상황을 잔잔하게 묘사하고 있는 기명숙의 시가 참 멋지다. 1987년을 경험한 대부분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며 ‘맞아, 그때 그랬어’라 하리라. 여기에 시행 배열의 묘미까지 담고 있어, 문학박사 모자 쓰고 어쭙잖게 문예미학적 가치판단까지 곁들이는 나는 무릎을 치게 된다.

1987년 신촌의 상황을 잔잔하게 담아내고 있는 기명숙의 시 '1987년 신촌'은 그래서 참 좋다. 내가 기억하는 기명숙 시인의 그 예쁜 얼굴과 눈망울에서 어찌 최루탄 냄새가 풍기는 이런 시가 나왔는지…… 그러나 이 시는 저항시가 아니다.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저항이라든가 아니면 정치적 신념보다 더 강하면서도 당시 상황을 잔잔하게 표현한다. 그 힘이 오히려 어느 저항시보다 강렬하다. 그래서 이 시가 참 좋다.

[출처] 이병렬의 '내가 읽은 詩'

/ 2020.12.2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