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오류동 1975' 김세돈 (2020.12.29)

푸레택 2020. 12. 29. 09:24

■ ​오류동 1975 / 김세돈

리어카에 낡은 장롱 하나 라디오 하나
솜이불 별별 살림살이 털털대는 리어커
늙은 아버지가 끌고 누나, 엄마가 밀고 있네
높은 축대가 막혀있는 어두운 방한칸짜리 집에
천천히 짐을 옮긴다 힘없이 터벅터벅
어린 나는 졸린 척 솜이불 위에서 잠이 들었네

달팽이가 느릿느릿 축대 위로 올라간다
가을 하늘 뭉게구름이 모양을 바꿔가며 흐른다
리어카에 낡은 장롱 하나 라디오 하나
솜이불 별별 살림살이 털털대는 리어카...

[감상과 해설]

오류동(梧柳洞)은 서울시 구로구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동쪽과 북쪽으로 개봉동, 서쪽으로 온수동 및 경인선 철도를 경계로 궁동과 이웃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역 앞 광장을 마을 쉼터로 조성하기 위해 성장 속도가 빠른 오동나무(梧)와 버드나무(柳)를 심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역 앞 경인로에서 남쪽 동부제철에 이르는 길에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었으나 경인로 확장 공사 때 가로수를 플라타너스로 교체하면서 현재는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역 광장 공원을 조성하며 심었다는 오동나무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상징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김세돈의 시 '오류동 1975'은 1975년 당시 오류동의 상황을 보여준다. 시 속에서 화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를 따라 오류동에 있는 ‘높은 축대가 막혀있는 어두운 방한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온다. 이삿짐이래야 ‘털털대는 리어카’ 하나에 다 실려 있다. 바로 ‘낡은 장롱 하나 라디오 하나 / 솜이불 별별 살림살이’뿐이다. 골목길은 아직 비포장이었으니 ‘늙은 아버지가 끌고 누나, 엄마가 밀고 있’는 리어카는 털털댔고, 어린 화자는 ‘졸린 척 솜이불 위에서 잠이 들었’단다. 드디어 도착한 집 안으로 식구들이 ‘천천히 짐을 옮긴다.’

화자네의 살림살이 규모로 보아 빈민임에 틀림없다. 그런 그의 가족이 리어카 하나에 살림살이를 싣고 이사한 동네 - 오류동은 바로 화자네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이다. 굳이 ‘높은 축대가 막혀있는 어두운’ 방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화려함 뒤로 몰려난 빈민들의 삶의 모습이 보인다. ‘달팽이가 느릿느릿 축대 위로 올라간다’는데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삶을 버텨내는 모습이리라.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달팽이 걸음으로라도 살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을 하늘 뭉게구름이 모양을 바꿔가며 흐’르고 있으니 이들의 내일에 결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화자의 기억 속 오류동 그리고 1975년은 바로 그런 모습이다.

김세돈 시인은 부천의 무명시인이자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 무명가수이다. 자신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렀던 시인 - 그에게 경기도 부천과 인접한 서울의 오류동은 가난한 동네, 리어카 하나로 모든 짐을 싣고 이사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혹자는 이것도 시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 앞뒤로 반복된 ‘리어카에 낡은 장롱 하나 라디오 하나 / 솜이불 별별 살림살이 털털대는 리어카...’ 두 행만으로도 훌륭한 시가 된다. 바로 제목처럼 1975년의 오류동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낡은 장롱, 라디오, 솜이불, 축대, 달팽이, 하늘, 뭉게구름... 들이 어우러져 1975년 오류동 가난한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가난한 시절의 기억... 시인은 높은 축대에 가려 어두운 방한칸짜리 집에 이사를 왔지만 그곳에서 달팽이처럼 쉬지 않고 걸었으리라. 그리곤 가을 하늘 뭉게구름처럼 내일을 꿈꾸었으리라.

[출처] 이병렬 시인의 '내가 읽은 詩'

/ 2020.12.2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