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발선인장 / 조용수
아파트 베란다 구석 화분에서
선인장이 겨울을 났다
물 한번 주지 않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둑한 저녁 무렵 청소를 하는데
평소 나지 않던 냄새가 난다
어깨가 축 처져 있으면서도
줄기 끝에 꽃이 폈다
꽃을 피우려고 줄기의 허리는 잘록해졌고
뿌리는 얼마 남지 않은 흙을 꽉 쥐고 있다
나를 보더니 고개를 들어 웃는다
물 한 바가지 듬뿍 주었다
[감상과 해설]
‘게발선인장’은 줄기의 모양이 게의 발과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꽃은 줄기 마디의 끝에서 피는데, 붉은색, 오렌지색이 많으나 흰색, 분홍색, 붉은 자주색 등 다양하다. 흔히 가정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는데, 전자파 제거가 뛰어나며 야간에 산소발생량이 많아 실내 공기정화 식물로 키우기도 한다. 흔히 선인장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기에 게으른 사람들이 키우기에 좋다고들 한다. ‘게발선인장’도 마찬가지이다. 온도에는 민감하고 습도가 높은 편이 좋으나 여름에는 월 2회, 겨울에는 월 1회만 물을 주어도 잘 자란다.
조용수의 시 '게발선인장'은 겨우내 선인장에 물을 주지 않은 상황을 그리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 구석 화분에서 / 선인장이 겨울을 났다’고 한다. 겨우내 ‘물 한번 주지 않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어둑한 저녁 무렵 청소를 하는데 / 평소 나지 않던 냄새’를 맡는다. 바로 게발선인장 꽃향기이다. 진하지 않은 향기를 맡은 것을 보니 시인의 후각이 꽤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시인의 눈에 비친 게발선인장은 ‘어깨가 축 처져 있’다. 그러면서도 ‘줄기 끝에 꽃이 폈’단다.
주인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물 한 번 안줬는데 게발선인장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 ‘꽃을 피우려고 줄기의 허리는 잘록해졌고 / 뿌리는 얼마 남지 않은 흙을 꽉 쥐고 있’었을 게다. 생명줄 놓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을 터이고 그러면서도 꽃을 피웠다. 게다가 간만에 얼굴을 마주한 주인에게 원망은커녕 ‘고개를 들어 웃’기까지 한다. 시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물은 물론이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게발선인장. 겨우내 배고픔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선인장을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곧바로 ‘물 한 바가지 듬뿍 주었다’지 않는가.
시의 내용이래야 특별할 것이 없다. 겨우내 물 한 번 주지 않았음에도 게발선인장이 자신의 몸 속 영양분으로 꽃을 피워 가지가 홀쭉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깨가 축 처져 있’다던가, ‘허리는 잘록해졌’다 혹은 ‘흙을 꽉 쥐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웃는다’는 의인법 외에는 특별히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낸 그림이 오히려 잔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잔잔함이 마지막 행, 주인의 행동 ‘물 한 바가지 듬뿍 주었다’에서 갈무리된다.
주인의 무관심 속에서도 생명을 잉태하는 끈끈한 생명력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게발선인장의 생태에 대한 시인의 공감이다.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같이 아파할 줄 아는 시인 – 시를 읽는 내 마음까지 참 따뜻하다.
[출처] 이병렬 시인의 '내가 읽은 詩'
/ 2020.12.2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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