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과학칼럼] '모기는 왜 배 터지게 피를 빨까' 조홍섭 (2020.12.05)

푸레택 2020. 12. 5. 16:17



■ 모기는 왜 배 터지게 피를 빨까 / 조홍섭

모기에게 피를 빠는 일은 목숨을 거는 행위이다. 먹지 않으면 자손을 낳을 수 없고 너무 오래 끌다가는 숙주의 손바닥이나 꼬리에 맞아 압사할 수 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잔뜩 흡혈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배가 붉게 물들도록 포식한 모기가 혈액방울을 꽁무니에 매단 모습은 ‘배가 터지도록 먹는’ 그런 전략의 결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런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피를 빨며 혈액을 배설하는 행위는 욕심이 아니라 온도를 조절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곤충학자들은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얼룩날개모기가 흡혈 도중 꽁무니로 신선한 혈액이 들어 있는 액체를 배출하는 현상을 적외선 촬영을 이용해 분석했다. 그랬더니 온혈동물의 피를 빨면서 급상승하던 체온은 꽁무니에 붉은 액체방울을 매달면서 2도가량 떨어졌다. 대조적으로 설탕물을 섭취하도록 한 모기한테서는 이런 체온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마신 피를 배설할 만큼 체온조절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변온동물인 모기가 항온동물의 ‘뜨거운’ 피를 마시는 것은 치명적 고온 스트레스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 모기 숙주의 체온은 최고 40도에 이른다. 이런 고온상태에서는 곤충의 생리기능이 일부 마비될 수 있다. 특히 흡혈곤충은 열로 먹이를 찾기 때문에, 높은 체온을 유지하면 먹이로 착각한 다른 흡혈곤충의 공격을 부를 위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곤충들이 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꿀벌은 꽃에서 얻은 꿀을 토해 그 증발열로 뇌의 과열을 방지한다. 진딧물은 항문으로 즙을 분비함으로써, 나방은 주둥이 관에 들어 있는 액체를 배출함으로써 각각 배와 머리의 온도를 낮춘다. 곤충은 꿀, 수액, 수분, 오줌, 혈액 등을 배출한 뒤 거기서 발생하는 열전도와 증발을 통해 체온을 2~8도 낮춘다.

모든 흡혈곤충은 숙주와의 접촉시간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꾸물거릴 경우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혈액을 배출하면 배를 채우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빨리 먹기와 과열 회피라는 두 충돌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타협을 해야 한다. 연구진은 오줌만이 아니라 혈액도 함께 배출함으로써 액체방울의 크기를 빨리 키워 증발이 일어나는 표면적을 넓히고, 아마도 액체방울의 표면 특성을 변화시켜 꽁무니에 매달려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추정했다.

흔히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를 다른 모기와 구분하는 요령으로 앉을 때 꽁무니를 공중으로 추켜올리는 행동을 꼽는다. 그런데 이런 행동도 혈액을 배출하는 것과 관련해 설명이 가능하다. 꽁무니를 위로 들어 올려야 혈액방울을 숙주의 피부에서 멀리 떨어진 공기 속에 드러내 냉각을 촉진하고 혈액이 피부에 닿아 꽁무니에서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또 혈액 배출이 배를 채운 모기가 비행을 위해 체중을 줄이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흥미로운 건, 얼룩날개모기의 이런 행동이 모기 몸속의 말라리아 병원충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관찰이다. 모기는 다른 동물을 숙주로 삼지만, 모기 스스로가 기생충의 숙주이기도 한 것이다.

모기의 배 속에서 발생한 말라리아 병원충이 모기의 침샘으로 향하는 단계에서 30도 이상의 고온은 치명적이다. 따라서 애써 먹은 피를 배출하는 행동의 깊은 뿌리 속에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병원충의 명령이 자리 잡고 있다. 모기가 너무 욕심이 많아 배가 터지도록 먹고 그 자리에서 배설한다고 생각했다면, 모기와 그 속의 기생충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2013)

/ 2020.12.0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