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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개는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조홍섭 (2020.12.05)

푸레택 2020. 12. 5. 16:10



■ 개는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 조홍섭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개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갑갑한 애완견이 보채서였을 것이다. 그런 개들은 예쁜 옷을 입기도 하고 가끔은 작은 신발을 신기도 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개는 왜 발이 시리지 않을까. 개의 발은 털이나 지방층으로 덮여 있지도 않은데다 얼음처럼 찬 땅과 늘 접촉하고 있는데 말이다. 신발 신은 개는 예외적이고 대부분 맨발로 돌아다니지만 개가 동상에 걸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추운 곳에서 견디기로는 개보다 황제펭귄이 윗길이다. 영하 50도의 얼음판 위에서 몇 달을 먹지도 않고 버티며, 게다가 발 위에서 알까지 부화시키는 놀라운 동물이다. 그 펭귄과 개의 발에 무슨 공통점이라도 있을까.

일본의 수의과학자가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놀랍게도 개의 발은 황제펭귄의 발과 마찬가지 원리로 추위를 이긴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런 원리는 북극여우, 늑대 같은 개과 동물은 물론이고 고래, 물개 등 추운 곳에 사는 동물, 그리고 새와 사람 등에게도 널리 채용되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역방향 열 교환의 원리’이다. 한 실험실에서 기온을 영하 35도로 낮춘 뒤 털북숭이 북극여우를 풀어놓았다. 한참 지난 뒤 발의 온도를 재니 영하 1도로, 발의 조직이 손상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역방향 열 교환의 핵심은 이처럼 찬 곳과 접하는 부위의 온도를 최대한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조직이 유지되려면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심장에서 나온 더운 피를 곧바로 발로 보내면 마치 구멍 난 주머니에서 물이 새어나가듯이 몸의 열은 혈액을 타고 땅바닥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심장에서 온 따뜻한 피를 담은 동맥은, 차갑게 식은 피에 열을 전달해주고 어느 정도 식은 상태에서 발바닥으로 향한다. 반대로 발바닥에서 온 차가운 정맥은 동맥에서 열을 얻은 뒤 심장으로 향한다. 추운 곳에 가까운 발바닥 등은 조직이 손상되지 않을 정도의 낮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기발한 발명을 다른 동물이 내버려둘 리가 없다. 얼음판 위에서 느긋하게 잠을 자는 오리나 기러기도 그 수혜자이다. 비록 발은 좀 차겠지만 체온은 사람보다 높게 유지한다. 한 발로 얼음을 딛는 것은 열 손실을 절반으로 줄이는 추가 요령이고, 열이 새어나가는 통로인 부리를 깃털 속에 파묻는 것도 팁이다. 이 원리를 꼭 추운 곳에 쓰란 법도 없다. 포유류의 고환은 열에 약한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체온이 고환에 전달되지 않도록 한다.

개와 펭귄에게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산업계에서도 이런 역방향 열 교환 원리를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아주 간단한 예가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등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 주택에서 쓰이는 기계식 열 회수장치이다. 이 장치는 방 안의 덥고 더러운 공기를 내보낼 때 바깥의 차고 신선한 공기와 내용물은 섞이지 않게 하면서 열만 전달해, 밖으로 나가는 공기의 열을 받아 따뜻해진 신선한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도록 한다. 원리는 개 발바닥과 마찬가지로 바깥의 찬 공기가 곧 나갈 방 안의 더운 공기로부터 열을 전달받도록 배관을 하는 것이다.

자연은 창의력이 풍부하다. 진화의 역사가 이루어진 30억 년은 이런저런 구상을 해보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그래서 요즘 공학자들은 기를 쓰고 생물을 흉내 내려 한다. 생물모방학(biomimetics)이라는 학문 분야도 있다. 전자공학뿐 아니라 로봇, 신소재, 항공 등 첨단 분야에서도 자연의 형태나 움직임을 모방해 효율을 높이려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출처] 조홍섭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김영사, 2013)

/ 2020.12.0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