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김도훈칼럼] 가을에는 왜 단풍이 들까? (2020.12.05)

푸레택 2020. 12. 5. 13:35



■ 가을에는 왜 단풍이 들까? / 김도훈

나무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도 이맘때가 되면 나뭇잎 물들어가는 단풍 현상에는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요. 단풍구경 가는 여행객으로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기도 하니까요. 올해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맑고 그러면서 일교차도 뚜렷이 나타나면서 단풍이 매우 아름답게 든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덕분에 미세먼지가 많이 줄어든 것도 기여했다고 보시는 전문가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에 대한 사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매우 깊다고 자부하는 필자로서는 가을이 되어 아름답게 물드는 단풍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약간 못마땅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실 겨우내 생명활동을 멈추다시피 하고 있다가 막 따뜻해지는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나무에게도 축복이겠습니다만, 가을에 드는 단풍은 나무에게는 그동안 왕성했던 하절기의 생명활동을 멈추기 시작하는 신호탄이기에 다소 슬퍼지는 순간의 상징이니까요. ​ 

필자가 쓸데없는 푸념을 해 보았습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예술작품들에서도 사람들의 감성을 가장 강하고 깊게 때려주는 주제는 역시 이별의 순간을 그려내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별의 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정이 나무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하며 자위하려 합니다.

기껏 감성적인 접근을 하다가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는 것 같아 이상하지만, 이번에는 나뭇잎이 단풍이 드는 현상에 대해 약간의 과학 공부를 해 볼까 합니다. 나뭇잎은 초록색을 띄는 것이 정상입니다. 햇빛을 받아 클로로필이라 불리는  엽록소가 광합성을 하는 것이 나뭇잎의 역할이니까요. 기실 이렇게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영양분이야말로 전 지구의 생명의 원천이 되지요. 필자가 즐겨보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 나무와 풀의 초록색 잎들이 머금은 영양분을 초식동물들이 섭취하고 그 초식동물들을 잡아먹는 육식동물들도 살아갈 수 있게 되지요.​

가을이 깊어져 날씨가 추워지면 나무도 잎을 통해 수분이 날아가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잎과 줄기가 이어지는 이음새 부분에 막(떨켜층이라고 합니다.)을 형성해서 닫아 버립니다. 수분과 영양분의 나무 내의 이동이 막혀 버리게 되는 거지요. 그래도 잎에 그대로 남아 있는 초록색 엽록소 클로로필은 부지런히 광합성을 계속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영양소 특히 당분은 나뭇잎에 남게 되면서 서서히 산화되게 됩니다. 이런 영양분의 산화 과정은 거꾸로 엽록소를 분해하는 작용을 하게 되고 나뭇잎 안에 함께 들어 있던 다른 색소들이 그 색깔을 드러나게 만드는 셈입니다.

엽록소와 함께 있던 색소들은 대부분 카로티네이드 계열의 카로틴과 크산토필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카로틴은 나뭇잎을 노란색으로, 크산토필은 주황색으로 바꾸게 됩니다. 은행나무뿐만 아니라 요즈음 산을 오르면 대부분의 나무들이 이런 계통으로 물이 드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를 짐작해 볼만 합니다. 참나무를 소개할 때 영국의 시인 테니슨 경이 시 속에서 이 나무들이 가을에도 ‘golden’으로 바뀐다고 노래한 사실을 언급했는데, 우리나라 상수리나무도 그런 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丹楓(단풍)이라 하면 한자 의미 그대로 붉은 색으로 물든 것이 제격입니다. 오죽했으면 가을이 되어 붉은 색으로 물드는 대표적인 나무의 이름을 단풍나무라고 붙였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붉게 물드는 단풍 색깔은 조금 다른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이 붉은 색깔을 발현시키는 색소는 안토시아닌인데 이 녀석 힘만으로 선명한 붉은 색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에 남게 된 당분과 이 색소가 결합되면서 선명한 붉은 색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특히 나뭇잎에 남게 된 당분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붉은 색이 더 선명해져서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고 하네요. 흔히들 단풍이 곱게 물들려면 날씨가 맑아서 일교차가 심해져야 한다고들 하는데, 바로 그런 조건이 단풍나무 잎에 당분의 양을 많게 만드는 필수조건이지요. 한편으로는 일조량이 많아지면 잎에서 광합성이 활발해져서 당분이 많이 만들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분을 나뭇잎이 소비하는 밤의 기온이 떨어지면 그 소비량이 줄게 된다고 하네요. 상당히 어려운 과학 공부를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여하튼 모두에 언급한 대로 금년에는 (코로나 19 덕분에) 맑은 날씨와 큰 일교차 덕분에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게 물든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결론입니다. 

이상의 과학 공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나무에 따라 클로로필이라는 엽록소 외에 다른 색소들을 함께 함유하고 있는데 하절기 동안은 클로로필의 초록색이 우세해서 그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던 색소들의 함유량에 따라 나뭇잎이 색깔을 바꾸게 되는 셈이지요. 카로틴이 많은 은행나무는 노란색, 크산토필이 많은 상수리나무는 주황색, 그리고 안토시아닌이 우세한 단풍나무는 붉은색으로 물들게 되는 것이지요. 한 가지만 추가한다면 대부분의 나무들이 마지막 순간에 색깔을 바꾸는 갈색은 나뭇잎에 함유되어 있던 타닌이라는 색소가 당분과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상수리나무 외의 많은 참나무들의 이름에 ‘갈’이 들어가는데 (갈참, 신갈, 떡갈 등) 이 나무들의 잎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타닌이 산화된 갈색으로 물드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무들을 산과 공원 등의 현장에서 관찰해 보면 위와 같은 과학적인 설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상을 다반사로 발견하게 만듭니다. 필자는 나무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변이를 보이는 현상을 ‘나무도 개성이 있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먼저 ‘단풍나무는 붉은색으로 물든다.’라고 하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뜨리는 현상을 종종 발견합니다. 오히려 수도권 주변 야산들을 등산하다 보면 노란색으로 물드는 단풍나무들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위의 과학적 설명을 적용해 보면 이 나무들에 카로틴 색소가 많았거나 아니면 당분 형성이 부족해서 안토시아닌 색소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거나 했던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그늘 속의 단풍나무들이 더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필자에게 봄부터 붉은 색 잎을 내미는 단풍, 즉, 홍단풍은 왜 그러냐고 묻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홍단풍은 안토시아닌의 색소 작용을 이른 시기부터 발현하는 종자들을 사람들이 일부러 개량(?)해서 만든 품종인 셈입니다. 필자는 이 홍단풍에 대한 반대말로 개발한 청단풍이라는 용어가 남발되는 현상에 불만이 있습니다. 그냥 단풍나무를 그렇게 부르는 거니까요. 참고로 단풍나무만 붉은색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은데 붉은 색이 제법 선명한 나무들로는 붉나무, 화살나무, 벚나무, 대왕참나무 등의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노란색으로 물드는 은행나무가 다른 색깔을 드러내는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느티나무는 노란색 계열로 물드는 것이 보통인데, 때로는 이 나무들도 제법 붉은색으로 물드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우리 주변에서 특히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느티나무들이 (도로변, 공원에서 서로 이웃하고 있는 느티나무들이) 서로 다른 색깔로 물드는 현상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역시 나무들도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2013)

/ 2020.12.0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