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래 고약(膏藥) 이야기
엉덩이 부위가 가려워 만져보니 콩알만한 종기가 생겼다. 종기는 여드름처럼 모낭염이 심해지고 그 크기가 커지면서 결절이 생긴 것을 말한다. 종기는 얼굴과 목, 겨드랑이, 엉덩이에 주로 생긴다고 한다. 병원에 가기도 그렇고 항생제를 사 먹기도 그렇고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이명래 고약이 생각났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종기가 나면 언감생심(焉敢生心) 동네 의원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민간전통의약인 '이명래 고약'을 사다 종기난 부위에 고약을 불에 녹여 붙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이명래 고약을 파는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이명래 고약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약국으로 달려가 이명래 고약을 한 통 샀다. 고약과 발근고가 3개씩 들어있고 자세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었다. 종기 부위가 고름이 터지지 않은 상태라 발근고(拔根膏)는 빼고 고약만 붙였다. 두 개째 붙이니 이틀만에 감쪽같이 종기가 사라졌다. 과연 이명래 고약은 명약(名藥)이다. 전통민간요법으로 만들어져 항생제와 달리 부작용도 없고 병원에 가서 째고 어쩌고 할 까닭도 없었다. 이명래 고약의 유래가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 보니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에 이명래 고약에 관한 글이 자세히 실려 있었다.
종기는 사람이 살면서 겪는 병치레 중 매우 흔한 피부질환으로 모낭염이 심해져서 생긴 결절이다. 요즈음에는 위생 상태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로 쉽게 치유할 수 있지만 환경이 지금같지 않았던 과거에는 치료도 쉽지 않고 재발률도 높았으며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문종, 성종, 중종, 효종, 현종, 숙종, 정조 등 많은 왕이 종기로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종기 치료를 전담하는 ‘치종청(治腫廳)’이라는 관청을 두었다고 한다.
'이명래 고약'은 본디 프랑스인 신부 에밀 피에르 드비즈(Emile Pierre Devise, 1871~1933)가 고안한 것으로 중국에서 접한 한의학 지식과 라틴어로 된 약용식물학 책의 지식을 응용해 만들었다. 1894년 조선에 도착한 그는 성일론(成一論)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였는데, 1895년 충남 아산 공세리(貢稅里) 성당에 부임한 후 천주교 대전교구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로 유명한 공세리 성당 본당을 직접 설계하고 건설을 지휘했다. 당시 공세리 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주민들 중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성일론 신부가 고약을 제조하여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사람들은 이 약을 '성일론 고약'이라 이름 붙였다. 이것이 훗날 '이명래 고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명래(李明來, 1890~1952)는 원래 서울에 거주하는 천주교도였다. 당시 점점 심해지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아산으로 내려간 그는 그 곳에서 성일론 신부를 만나게 된다. 이후 성당의 여러 잡무를 도우며 성일론 신부와 가까워졌고, 그의 고약 제조법도 전수받게 되었다. 그는 '성일론 고약'에 민간요법을 더한 끝에 1906년 '이명래 고약'을 개발하였다. 1920년에는 서울 중림동에 고약가게를 차렸는데,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효과로 금세 유명세를 얻어 매일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명래 타계 후 '이명래 고약'의 맥은 병원과 제약 두 갈래로 이어지다가 그 명맥이 끊어졌고 현재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고약은 다른 제약업체에서 제조·판매권을 인수하여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이명래 고약은 고약과 발근고로 구성되어 있어 종기의 상태에 따라 사용하며, 항생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내성(tolerance , 耐性)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비교적 안전한 치료 방법과 낮은 약값으로 민간의 보건 향상에 크게 기여한 덕에 근·현대의 ‘전통의약 1호’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60년대는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유독 종기 피부질환이 많았다. 병원에 갈 형편이 되지 않으니 종기가 나면 그저 만병 통치약인양 '이명래 고약'을 붙였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는 유일한 상비약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아까징끼'라 불렀던 빨간약이었다. '아까징끼'는 상처가 난 피부 부위에 발라주는 살균 소독약인데, 일본어로 ‘붉다‘는 뜻의 형용사 ‘아까이(赤い, あかい)'와 팅크(tincture)의 일본식 발음인 ‘징끼(丁幾)’의 합성어다. 일본식 한자 표기로는 옥도정기(沃度丁幾)다. 우리말로는 '요오드 팅크'인데 팅크(tincture)는 알코올에 녹인 약물을 뜻한다. 영어 표기는 'Iodine tincture'로 흔히 상품명인 머큐로크롬(Mercurochrome)이라고 부른다. 요오드 팅크는 1918년 소독약으로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었지만 수은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퇴출된 의약품이라고 한다. 현재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살균 소독약은 수은이 들어있지 않은 '포비돈 요오드(Povidone Iodine)'이라는 물질로 '요오드 팅크'보다 피부흡착력이 적고 살균력도 좋다고 한다.
오늘은 이명래 고약 덕분에 엉덩이 종기가 감쪽같이 치료되어 옛 추억이 서려있는 약인 이명래 고약과 아까징끼에 관한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어린 시절 약이라고는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소화제도 감기약도 그런 약이 있는지도 모르고 자랐다. 체하면 어머니는 엄지손가락을 바늘로 따 주셨고 넘어져 상처가 나면 빨간약을 발라 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제약 산업의 발달로 약이 넘쳐나고 손쉽게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옛날 약 없이 지내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민간요법 덕이 아니었나 싶다. 이명래 고약과 같은 약용식물을 이용한 민간전통의약들이 계속 연구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실 엉치 종기 치료 이야기라 쓸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혹여 종기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글벗들의 넓은 해량(海諒)이 있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이명래 고약'
/ 2020.09.26(토) 풀벌레 소리 들려오는 가을에.. 김영택 씀
▶ 산골짝의 등불 합창곡
youtu.be/wafZjHxzLz8
▷ 산골짝의 등불
아득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련히 등잔불 흐를 때
그리운 내 아들 돌아올 날
늙으신 어머니 기도해
그 산골짝에 황혼이 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치네
그 산골짝에 등불 켜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치네
youtu.be/KIrhLPSJIko
▶ When its Lamplighting Time in the Valley
(산골짝에 등불 켜질 때)
There's a lamp shining bright in a cabin
In the window it's shining for me
And I know that my mother is praying
For the boy she is longing to see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Still in dreams I go back to my home
I can see that old lamp in the window
It will guide me wherever I roam
In the lamplight tonight I can see her
As she rocks in her chair to and fro
Though she prays that I'll come back to see her
Still I know that I never can go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Still in dreams I go back to my home
But I've sinned 'gainst my home and my loved ones
And now I must ever more roam
So she lights up the lamp and sits waiting
For she knows not the crime I have done
So I've changed all my ways and I'll meet her
Up in heaven when life's race is run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Still in dreams I go back to my home
Oh I can see that old lamp in the window
It will guide me wherever I ro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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