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을 줍는 동심, 가을을 닮은 동심(童心)
가을 햇살 따사로운 오후, 다섯살 손주와 함께 마을 나들이에 나섰다. 아직 단풍은 많이 들지 않았지만 소슬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해 준다. 손주 녀석은 요즈음 코로나 2단계로 유치원도 못 가고 또래들과 만나 놀지도 못 한다. 심심해 하던 차에 집밖으로 나오니 물고기 물 만난 듯 신나게 뛰어다닌다.
손주 녀석이 갑자기 소리친다.
"여기 밤 있다!"
칠엽수 나무 열매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밤톨 같이 생긴 씨앗이 흩어져 있다. 손주 녀석은 부지런히 칠엽수 열매와 '밤'을 주워 모으며 마냥 즐거워한다. 혼자서 숲체험 학습을 한다. 아이들은 역시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라야 한다.
칠엽수는 긴 잎자루 끝에 손바닥을 펼쳐 놓은 것처럼 일곱 개의 잎이 달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높게 자라는 칠엽수는 잎도 큼지막하고 수형도 아름답다. 칠엽수 나무의 씨앗은 마치 밤처럼 생겼다. 독성이 있어 설사와 구토 등 위장장애를 일으켜 식용하면 안되고 약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엊그제 대학로 쪽에 일이 있어 간 김에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을 잠깐 둘러 보았다. 마로니에공원은 1975년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대학이 관악산 종합캠퍼스로 이전해 간 터에 조성된 공원이다. 일곱 그루의 마로니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마로니에(서양칠엽수)는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와 히말라아시다(개잎갈나무)와 더불어 세계 3대 가로수로 꼽힌다고 한다.
칠엽수(七葉樹)를 마로니에(marronnier)라고 불러도 될까?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약간 다르고 '한국의 나무' 도감에도 저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칠엽수는 일본이 원산지이고 '일본칠엽수' 또는 '일본마로니에'라고 부른다. 마로니에는 유럽이 원산지이고 '서양칠엽수' 또는 '가시칠엽수'라고도 부른다. 마로니에는 열매에 가시가 있고 칠엽수에 비해 잎의 크기가 작다.
보통 일본칠엽수도 마로니에라고 부른다. 가로수나 주변 공원에 많이 심어져 있는 나무는 대부분 일본칠엽수다. 많은 사람들은 '저 나무 이름이 칠엽수야' 하면 무심히 듣고 있다가 '마로니에라고도 하지' 하면 '아 마로니에, 나도 알지' 한다. 마로니에라는 이름은 노래 가사에도 나오고 공원 이름도 있으니까 쉽게 기억이 되는 듯 하다. 라일락이니 리라꽃이니 하고 부르는 나무도 우리 이름이 수수꽃다리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북대 박상진 교수는 '우리나라 나무의 세계'에서 칠엽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한 뼘 정도 되는 커다란 원뿔모양의 꽃차례가 나오며, 꽃대 한 개에 100~300개의 작은 꽃이 모여 핀다. 질이 좋은 꿀이 많으므로 원산지에서는 꿀을 생산하는 밀원식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가을에는 크기가 탁구공만한 열매가 열리며, 세 개로 갈라져 한두 개의 흑갈색 둥근 씨가 나온다. 열매의 영어 이름은 ‘horse chestnut’, 즉 ‘말밤’이란 뜻이다. 원산지인 페르시아에서 말이 숨이 차서 헐떡일 때 치료약으로 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와 가지에 잎이 붙었던 자리[葉痕]가 말발굽 모양이라서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 마로니에가 들어온 것은 20세기 초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에게 선물한 것을 덕수궁 뒤편에 심은 것이 처음이며, 지금은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랐다. 서울 동숭동의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에도 마로니에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다. 1975년에 서울대가 관악구로 옮겨가면서 이 자리에 마로니에 공원을 만들고 동숭동의 대학로 일대는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시원시원한 잎과 마로니에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덧붙여져 서양인들은 그들의 노래에도 나올 만큼 좋아하는 나무다. 우리도 가로수, 공원 등에 널리 심고 있다.
1970년 대에 미성(美聲)의 가수 박건이 부른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대중가요가 한때 유행했었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또 잎은 지고 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없지만 노래는 젊은 모습 그대로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듯이
덧없이 사라진 다정한 그 목소리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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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2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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