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추억앨범] 유튜브가 찾아준 40년 전 옛 전우,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나, 김 하사야' (2020.09.16)

푸레택 2020. 9. 16. 10:39

 

 

 

 

 

 

 

 

 

 

 

 

 

 

■ 40년 만에 그리운 전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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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전역하고 삶에 바빠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 옛날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들 모습이 아련하게 보였다. 40년 전 전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추억록을 뒤적여 보았다. 흐르는 세월 속에 빛이 바래버린 사진 속 그리운 전우들은 여전히 그때 그 시절 젊은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추억이 스며있는 사진들을 스캔한 후 알씨를 사용하여 간단한 동영상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Tom Roush의 'Carry me back to old virginny'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를 배경 음악으로 넣어 유튜브에 업로드하였다. 업로드한 지 3년 만인 지난 9월 초 조회수가 10만 뷰를 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니 나흘만에 20만 뷰, 다시 닷새만인 지난 13일에는 조회수가 30만 뷰를 넘어섰고 주고 받은 댓글수가 천이백 개가 되었다. 유튜브 조회수가 10만을 넘어섰을 때 며칠 간 추천 동영상에 올라간 때문인 듯 하다.

강원도 양구 대암산 기슭 작은 독립포대에서 대대 본부포대 군수과 행정서기병인 서무계 보직을 맡아 근무한 시간들. 내무반에서 연병장에서 사무실에서 사병식당에서 훈련 나간 파로호에서 유격장에서 찍은 사진들. 평범한 한 병사와 전우들의 일상을 담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사진들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보아주었고 또 많은 전우들이 댓글을 달아 주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라져버린 8인치 견인곡사포 부대의 40년 전 역사 속 사진들이 오늘 유튜브에서 다시 부활하여 회람되는 것이 오히려 낯선 느낌이 든다.

나의 유튜브 사진 영상에 달린 전우들의 댓글에는 눈물로 읽어야 할 가슴 아린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느 전우는 고참 선임들로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구타 당하여 안경테가 깨지고, 야전삽으로 엉덩이를 맞아 몇 주가 지나도 피멍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신병 시절 장갑도 없이 첫 야간근무 나갔다가 혹독한 추위로 손이 얼어 내무반에 들어와 전투화 끈을 푸는데 10분 이상 걸렸다는 전우의 댓글도 보였다.

어느 전우는 자대배치 첫 주에 할머니가 시루떡 한 박스를 머리에 이고 지고 전방 부대로 찾아 오셨다고 한다. 눈물을 쏟으며 떡을 먹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할무이 할배랑 그곳에서 안 싸우고 오손도손 잘 계시죠 라는 댓글을 달았다. 멀리 이국땅으로 이민을 간 한 전우는 소식 한 장 전할 길 없는 옛 훈련소와 자대 시절 전우를 그리워하는 글을 올렸다. 또 어느 전우는 GOP에서 근무하고 전역하는 날, 후임들이 눈 쌓인 먼 길을 따라 내려와 눈물로 배웅해 주었는데 그 후임들이 보고 싶다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감동적인 댓글을 썼다.

춥고 힘들고 하늘 같은 고참들의 서슬 퍼런 기합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시절이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으로 인해 사람이 살아감을 느끼게 해 준 좋은 사진과 글을 잘 보고 간다는 격려의 댓글도 달렸다. 사진 영상을 만든 작은 보람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댓글이다.

군대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한 구석에 서럽고 가슴 저린 사연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즐거웠던 순간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나의 사진 영상을 통해 군대 시절 옛 추억을 나누고, 숨겨두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을 털어놓고, 그 아픈 사연들에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전우님들이 있어 이 힘들고 고달픈 인생길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살아갈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 고맙기 그지 없다.

△ 40년 전 군대생활 사진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한 동영상은 강원도 양구군 유튜브 홈페이지 '감성양구' 코너에도 공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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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여느 날과 같이 유튜브를 열었다. 알림이 떴다.
"○씨, 반갑다. 김 하사다. 알지? 그때가 몇 년 전인가? 영상 잘 봤다."
군대에서 찍은 사진들을 편집하여 만든 내 유튜브 동영상에 꿈에서도 보고 싶었던 김 하사가 댓글을 달았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40년 동안 기다렸던 말 한 마디 '나 김 하사다'가 남겨져 있었다.

김 하사는 40년 전 강원도 양구 대암산 기슭 포병대대에서 군복무할 때 군수과 이사종계로 나의 바로 위 선임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답글을 썼다.
"1977년 양구 833포병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하사님 맞습니까?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답글도 전화도 없다. 바쁘신 건가, 혹 누가 장난으로 보냈나? 그러고는 잠시 잊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유튜브 알림을 열어보니
" 씨, 연락처 알려 주라. 내 전화는 010 ㅡ"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즉시 김 하사한테 전화를 했다.
"김 하사님!"
그토록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 40년 만에 아니 정확하게는 43년 만에 불러보는 이름, 김 하사님!
"김 하사님!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 씨, 목소리 그대로네."
김 하사도 옛날 목소리 그대로다.

40년 전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고 서럽던 졸병 시절, 김 하사는 어리바리하던 나를 늘 아껴주고 감싸준 고마운 선임이었다. 당시 부대 내 고참 선임들은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김 하사는 정말 드물게도 말과 행동이 반듯한 멋진 신사였다. 그는 내가 기댈 언덕이었고 인자하고 자상한 형이었다. 그가 전역한 후에도 그는 나의 마음 속에 닮고 싶은 롤모델로 남아 있었다.

김 하사와 나는 그 옛날 그때 그 시절 양구 포병부대 대암산과 오늘의 삶을 왔다 갔다 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화를 이어갔다. 40년 동안 마음 속에만 머물던 말들을 털어놓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전했다. 김 하사는 대구에 살고 있었다. 나의 이종사촌이 살고있는 동네에서 일하고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도 좁은 것일까.

김 하사를 보고 싶어하는 군수과장님과 선임하사님을 모시고 40년 전 추억담을 나눌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이제 가슴에 쌓인 응어리도 풀고 그리움도 떨쳐버릴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코로나가 잠잠해져야 만날 텐데. 코로나 이후 세상은 이렇게 평범한 삶마저 바꿔 놓는다. 만나는 자유마저 빼앗아간 코로나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유튜브가 찾아준 40년 전 옛 전우 김 하사, 그를 기다리는 기쁜 마음을 빼앗아 가지는 못 하리라.

△ 어느 해 가을, 코스모스 꽃밭 속에서 김 하사와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옛 그리움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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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전우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김영택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