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군대단상] 김 하사와 이 하사, 40년 전 양구 833포병대대 이 하사의 편지 (2020.08.26)

푸레택 2020. 8. 26. 16:57

△ 함박눈 내린 날, 사무실 앞에서
△ 지금은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우리 포병대대의 8인치 견인곡사포
△ 군수과장님 자리에서 찍은 나의 말년 병장 때 모습
△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당시 우리 포대의 8인치 견인 곡사포
△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제29차 탄약관리병 교육을 마치고 (1975.12.06)
△ 부대 정문 근처에 세워진 조형물 앞에서 (이 하사)
△ 말년 병장 때 내 모습
△ 김 일병(나), 정 병장, 김 하사.. 코스모스 피어난 사무실 앞 꽃밭에서

■ 군대시절의 단상 김하사와 이하사

1.
코스모스 꽃이 필 무렵이면 이십대 청춘의 시절 군대에서 만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두 전우가 생각난다. 김 하사와 이 하사다. 김 하사는 나보다 먼저 전입 온 단기복무 하사이고, 이 하사는 나보다 조금 늦게 전입 온 장기복무 하사였다.


계원들 모두 집합 시키시오.
군수과장님의 집합 명령이 떨어지면 선임하사님은 부리나케 과원들에게 연락을 하고, 우리 과원들은 비좁은 군수과 사무실에 열중쉬어 자세로 정렬한다. 과장님은 일종계와 이사종계, 부식계, 공병계 모두에게 한마디씩 업무를 지적하신다. 사무실은 냉기가 돌고 과장님의 훈계를 듣고 있는 고참들 속에서 이제 막 일등병 계급장을 단 나는 몸둘 바를 모른다. 모든 일들이 서무계인 내가 잘못하여 일어난 일인양 한없이 주눅이 든다.

과장님이 자리를 떠나시고 모두 제각기 흩어질 무렵,
군대 생활 이제 몇 개월 안 남았네. ○○계 고참 병장이 한 마디 한다. 과장님에 대한 불평도 한 마디 곁들이면서. 사실 그는 애교가 많아 과장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병사다. 이때 김 하사는 주눅든 내게 다가와 위로의 말을 전한다. 김 일병, 너무 괴로워하지 마.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김 하사는 이사종계 업무를 맡고 있었다. 김하사가 아무리 깔끔하게 업무를 처리한다고 해도 피복이니 군화니 이런 군장비들은 늘 착오가 나게 마련이다. 이사종계인 김 하사가 하는 일은 상급 부대에서 이사종 물품을 수령해 와서 포대 이사종계한테 나누어 주고 창고를 관리하는 것이 주된 일인데 재물조사를 하면 늘 장부와 재고가 제대로 맞지 않아 서무계인 나와 함께 자주 손망실처리를 하곤 했다.

이렇듯 복잡한 이사종계 보직를 맡다보니 김 하사는 과원들 집합 때마다 과장님으로부터 가장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가 과장님을 욕하거나 군대생활을 불평하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후임들을 혼내거나 구타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졸병이던 시절, 우리과의 고참들은 다들 점잖았지만 부대 내 타과의 경우 욕설과 구타를 일상으로 삼는 고참 병사들이 꽤 많았다. 그런 부대 분위기에 김 하사 같이 멋진 분이 있다니.. 앞에서든 뒤돌아서서든 상관이든 아랫사람이든 남탓 하지 않고,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인내하고 불평 한마디 없었던 김 하사, 그것이 내가 그를 존경하게 된 까닭이다.

1970년대 중후반 당시 그 거칠고 삭막하던 군대에서 멋진 신사와도 같았던 김 하사. 어리바리하기만 했던 졸병시절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마음 따뜻했던 김 하사. 김 하사의 인품은 그가 전역한 이후에도 내게 큰 잔영(殘影)으로 남아, 나도 그가 남긴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코스모스가 필 무렵이면 김 하사가 그립다. 나의 멘토이자 롤모델이었던 멋진 모습의 김 하사는 전역 후 연락이 끊겼다. 경북 고령이 고향인 그도 이제 이순(耳順)을 넘어 칠십 고개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스모스가 피어난 사무실 앞 작은 꽃밭에서 함께 찍은 사진 속 그와 나는 영원히 꽃다운 스무살 남짓 청춘으로 남아 있다.

2.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던가. 어느덧 세월은 흘러 나는 부대 최고참 병장이 되었다. 군수과장님은 춘천 미군부대로 전출가셨고, 선임하사님은 군수교육을 받으러 부대를 떠나셨다. 군수과장과 선임하사님이 새로 오셨다. 또한 본부포대장님이 옆 사무실 인사과장으로 오셨고, 알파포대 악명 높은 전포대장이 본부포대장으로 오셨다.

강원도 양구 동면 대암산 산골짜기에서 세 번의 겨울을 보냈다. 봄이 오면 진달래꽃이 대암산을 온통 뒤덮으며 울긋불긋 피어났고, 여름엔 부대 옆 계곡을 찾아 몸과 마음을 씻곤 했던 날들. 가을엔 월동 준비를 하느라 싸리나무를 꺾어왔고 김장 준비 사역병이 되어 배추를 날라고 겨울엔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우느라 하루가 갔었다.  


겨우내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던 2월 어느 날, 군대생활 마지막 말년 휴가를 받았다. 3월 전역 특명을 한 달쯤 앞둔 날이었다. 대대장실에서 휴가 신고를 마치고 내려와서 군수과 사무실을 막 나서려는데 이 하사가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러고는 휴가 잘 다녀오라면서 오백원을 손에 꼭 쥐어준다. 얼떨결에 돈을 받아쥐었다. 당시 오백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군대 입대 후 이병 때 처음 받은 월급이 1,040원이었고 30개월 군복무한 후 병장 때 받은 월급이 3,460원이었다.

(2020년 이병 월급이 408,000원이고 병장 월급은 540,800원이다. 2020년 현재 군복무 기간은 18개월이고, 1978년 내가 군대를 전역할 때 군복무 기간은 33개월이었다. 나는 대학교 때 교련을 이수하여 3개월 단축 혜택을 받아 30개월 군복무를 했다. 나보다 몇 년 선임들의 군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다.)

이 하사는 장기복무 하사였는데 나보다 조금 늦게 부대로 전입을 와 군수과로 배치되었다. 모난 부분이 하나도 없는 성격에 마음씨가 따뜻하고 정이 많았던 그는 군수과 내의 어떤 힘든 일도, 본부포대의 어떤 잡다한 일들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솔선수범했으니 어찌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지 않으리요.

내가 전역을 한 후 그와 몇 번 서신도 주고 받았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세월의 흔적으로 누렇게 빛바랜 편지에는 그래도 여전히 옛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세상살이 힘들고 지칠 때면 그때 그 추억들을 꺼내 읽어보며 젊은 날을 반추해 보며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전하지 못할 답장을 쓴다. 젊은 날의 추억은 그리움이 되어 허전한 가슴을 저며오고 울컥 치솟는 주체 못할 그리움이 아련하게 시려오는 날입니다. 아득한 기억의 저편 켜켜이 쌓인 세월의 두께를 벗겨내고 35년전 나누었던 님의 편지를 읽어 봅니다.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의 세월이 흘러갔네요. 기억이 가물가물 하고 하나둘 뇌리에서 사라져가도, 그 스무 살 남짓 젊은 시절 우리들의 추억은 영영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언젠가 읽은 좋은 글이 있어 몇 구절을 읊어본다.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인생 속에서 우리가 기다림을
갖고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행복이고 설렘입니다
누군가를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알고 산다는 것,
사랑하는 누군가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삶의 희망입니다


■ 양구 포병 전우, 이 하사에게서 온 편지

내가 전역한 후 이 하사와 주고 받은 몇 통의 편지를 공개한다. 아득히 먼 옛날, 40년 전의 일이다.

(1)

김 선생님!

늦은 가을과 함께 오는 초겨울, 쌀쌀하기만 한 이곳은 때 아닌 굉장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선생님의 사연 정말 반갑게 받아 보았습니다. 어찌나 고맙고 반가운지 김 선생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자랑을 하였답니다. 이처럼 반가운 글을 받고서도 이제야 회답하게 됨을 사과드립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시리라 믿기에 부담 없이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김 선생님의 염려 덕분으로 오늘도 어제와 변함 없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김 선생님이 아는 사람이 없는 과요원과 예전과 같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요원 모두가 열심히 뜀으로써 옛날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오늘은 시간이 좀 있기에 김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어 내려가며 그때 그 일들을 회상하여 봅니다. 모두 즐겁고 행복한 추억들이기에 오늘도 그때 그 일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 많은 사진을 방바닥에 나열하고 하나하나 바라보며 그때 그 시간까지 생각을 해 본답니다. 이는 모두 김 선생님의 따스했던 정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원○찬 씨와 김○술 씨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모두 무고하리라 믿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안부나 전해 주십시오. 못난 이는 여러분들 덕분에 무사히 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럼 계절의 갈림길 건강에 유의하시길 빌겠습니다.

ㅡ 옛 전우 ○○

(2)

김 선생님 전

8월의 무더운 날씨,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날아온 선생님의 글 정말 잘 받아 보았습니다. 그동안도 별일 없으시다니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이곳의 저는 과요원들과 함께 선생님의 염려 덕분으로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 있답니다. 제가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진급을 하게 됨은 선생님 이하 모든 분들의 따뜻한 정 덕분이 아닌가 생각하며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얼마 전 이곳을 다녀가셨다고요? 사진을 통해서 선생님의 전우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옛 전우들을 위해서 정을 아끼지 않고 돌봐 주시는 김 선생님을 생각할 때 저의 모든 피로는 깨끗이 사라져 간답니다.

김 선생님!

정말 뭐라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군요. 전역을 하고 두 해가 지나도록 못난 저를 잊지 않고 글을 주시는 김 선생님을 생각할 때 마음 한 구석 어디엔가 허전하고 쓸쓸하고 무엇인가 잃어버린 느낌이 들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인사하고픈 마음이지만 군에 몸담고 있는 몸이기에 이렇게 글로써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 한답니다. 저는 그간 몇 번 서울을 다녀왔답니다. 요번엔 꼭 한 번 만나 뵈어야지 하면서도 한 번 떳떳이 찾아뵙지 못한 점 저의 못난 행동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김 선생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19○○. 8. 10

■ 35년만에 뒤늦게 다시 써보는 답서

그리운 전우, 이○교 하사님!

젊은 날의 추억은 그리움이 되어 허전한 가슴을 저며오고 울컥 치솟는 주체 못할 그리움이 아련하게 시려오는데... 아득한 기억의 저편 켜켜이 쌓인 세월의 두께를 벗겨내고 35년전 나누었던 님의 편지를 읽어 봅니다.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강산이 한 번, 두 번, 세 번 변하고 그리고 또 다섯 해가 흘렀네요.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살아가고 계시기에 이토록 만날 길이 없는지요? 보고 싶은 마음에 여기 저기 글을 올려 보았는데 바람결에도 그대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군요. 어디에선가 잘 살아가고 계시겠지요? 그래도 문득문득 그 스무 살 남짓 시절, 그 젊은 날의 추억이 그리워 님을 그려봅니다.

이○교 하사님!

당신은 참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셨어요. 군수과 그 힘든 일에도 불평 한 마디 안 하시고 묵묵히 맡은 일 잘 해 내셨지요. 제가 제대한 후 중사로 진급하셨다고요. 사회에 나오면 한 번쯤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무심한 세월만 삼십여 년 흘러갔습니다. 제가 마지막 휴가를 떠나오던 날, 사무실 앞에서 제 손에 용돈을 꼭 쥐어 주시며 잘 다녀오라 말하시던 그 때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은혜 갚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생물교사 연구회에 참가하여 양구생태탐사를 갔었습니다. 양구선사박물관과 박수근미술관, 전생기념관, 을지전망대, 제4땅굴도 둘러보고 군 생활 삼 년 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지뢰, 노란 테두리에 빨간 색의 지뢰 삼각 표지판이 달린 길을 따라 장교의 인솔로 두타연에도 가보았습니다. 도솔산에도 올랐습니다. 펀치볼을 지날 땐 옛추억의 그리움이 치솟아 오르던군요. 양구에서 3년간 군대 생활을 했지만 처음 가보는 곳들이었습니다. 더욱이나 포병부대에 근무하며 사무실에서 늘 전화 통화를 하면서 대암산
통신보안 ○번 ○○○입니다 하고 외쳐댔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대암산 정상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정상에 올라 용늪을 생전 처음 탐사할 때의 그 감회는 정말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본 금강초롱꽃은 또 어찌 잊겠습니까? 아, 이곳이 내가 늘 외쳤던 대암산, 그 산의 정상에 있는 용늪이구나...

다음날, 양구군에서 막 조성한 야생화 생태공원을 견학하러 갔는데, 아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동면 원당리 21사단 ○○연대를 지나 우리 포병부대로 향해 가지 않겠어요? 양구식물원이 바로 우리 부대 옆에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잠시 이십여 년 전, 그때 그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 부대 연병장을 내무반을 사무실을 서성거렸습니다. 버스 차창 너머 본부포대 내무반이 얼핏 보이고, 군수과 사무실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던 옛 시인의 말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 버스는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운 여름날 가끔씩 벌거벗고 목욕을 하던 브라보포대 아래 개울을 스쳐지나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전역 직후 부대를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도 힘들고 고달팠던 그 시절이 왜 이토록 그리운 것인지... 왜 이토록 그 때 그 전우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인지... 세월이 흐르면 잊혀질 법도 한데 왜 이렇게 더 뚜렷이 그 때 그 순간이, 그 때 그 전우들 얼굴들이 떠오르는 것일까요? 정말 때로는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가끔씩 그 옛날 함께 했던 전우들이 그리워 회억에 잠겨봅니다. 그런데 문득, 어쩌면 그때 그 전우들에 대한 그리움은 다시는 올 수 없는 나의 젊은 시절, 지나가버린 청춘 시절의 나 자신을 만나고 싶은, 젊은 시절의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나갑니다.

 하사님,

언제 한 번 만날 수 있으리라는 실날같은 희망의 끈 놓지 않고 기다려보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우리 꼭 한 번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한 번 쯤 밤을 지새며 그 옛날, 그 젊은 날의 추억을 반추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억으로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세월 아니겠습니까? 양구 우리 포병부대 연병장에 쏟아지던 함박눈을 생각하며 무더위를 잊어봅니다. 본부포대 취사장 앞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개울물에 식기를 닦던 영하 20도, 그 차디찬 시절을 떠올리며 더위를 잊어봅니다. 이 하사님, 그 어느 곳에서 살아가고 계실지라도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만나 추억담 나눌 날을 기다려봅니다.

언젠가 읽은 좋은 글이 있어 몇 구절을 읊어봅니다.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인생 속에서 우리가 기다림을
갖고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행복이고 설렘입니다
누군가를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알고 산다는 것, 사랑하는 누군가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삶의 희망입니다

이 하사님께 뒤늦은 답장을 써 봅니다.

20○○년 8월 어느 무더운 여름 날에...

ㅡ 옛 군수과 서무계, 예비역 병장 김영택 올림

그리고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 편지 한 장 전할 길 없는 이 하사님!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 살아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흘러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몇몇 전우들과 연락이 되어 소식 나누고 또 만나고 있습니다. 재작년과 재재작년 두 차례 부대개방행사 때 우리 부대를 다녀왔습니다.

신○탁 군수과장님과 박○종 선임하사님과의 만남도 기적처럼 찾아왔습니다. 병기과 박○천 전우와 함께 몇 차례 두분 모시고 식사도 하였습니다. 최○호 본부포대장(인사과장)과도 통화를 나누었습니다. 본부 박○희 취사반장, 인사과 최○경 전우, 작전과 류○형 전우, 의무대 김○흡 전우, 임○빈 전우, ○○전우, 수송부 김○○ 전우와도 소식 나누었습니다.

이 하사님, 만날 날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년 휴가 떠나오던 날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꼭 만나야만 합니다. 그날이 오면 스무살 남짓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감사의 눈물을,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그 힘든 군대시절,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이 하사님! 이 말을 꼭 만나서 직접 전하고 싶습니다.

/ 2020.08.26 전우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김영택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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