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招待수필] '커피 레시피' 허재환.. 서천에서 보내온 전원일기 (2020.08.25)

푸레택 2020. 8. 25. 17:12

 

 

 

 

 

■ 커피 레시피 / 허재환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에 든다'이다. 이전엔 늦은 밤까지 TV를 켜놓고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었으나 요즘은 아침 해가 뜨면 바로 일어나 텃밭으로 나가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일상이다.

밭에 들어가려면 항상 준비해야 할 옷가지와 농기구가 있어야지만 생각이 부족한 아침이라 준비 없이 둘러보다가 일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 맨손으로 도전하게 된다. 그래 손톱 밑에는 언제나 까맣게 때가 껴서 '나 시골에서 농사 지어유'라고 인사를 전한다.

텃밭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으름, 다래와 사과나무가 반갑게 맞이하여 준다. 여러 나무들을 살펴보면 잘 익어가는 과일도 보이나, 잦은 비로 면역력이 약해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 땐 영양제를 물에 타서 옆면에 살포하여 주기도 한다. 특히 무화과와 사과는 긴 장마 동안에는 열매가 실하지 않더니 요즘은 햇살이 따가워서 그런지 탐스럽게 익어 아침 식탁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텃밭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아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식사하세요' 이렇게 몇 번을 불러야 한다. 내가 듣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텃밭이 넓기도 하고 때로는 뒤편 야산에서 일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네' 대답을 작고 크게 몇 번을 하여야 아내가 목소리 높이는 것을 멈추게 된다.

매일 아침 우리는 이렇게 부르고 대답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로 보통 텃밭에서 막 뜯어온 고추, 가지, 상추, 깻잎, 머우, 미나리, 부추와 취나물 등을 요리하여 상에 올린다. 식사를 하고 나면 밭에서 가져온 복숭아, 사과, 무화과 그리고 블랙베리 등을 디저트로 함께 하고 끝으로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달달한 작은 행복이 꼭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믹스 커피 커피를 준비한다.

아내가 이용하는 커피 잔과 티스푼은 한결같다. 매일 사용한 커피 잔은 씻은 후 언제나 그릇장의 같은 장소에 진열을 하였다가 다음 날 아침 식탁에 올려질 때까지 하루를 기다리게 한다. 비록 커피 잔은 따뜻한 커피를 담아놓을 수 있는 그릇에 불과하겠지만 우리 부부의 혀끝에 달달한 맛과 커피 향을 선물할 때까지 거실을 예쁘게 꾸며주며 기다리다가 필요한 때엔 가슴으로 맛과 향을 꼬옥 담았다가 전해준다.

도시에서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가끔 한적한 교외의 멋스러운 카페를 찾아 느껴볼 수 있는 여유와 호사로움을 우리는 거실에 앉아 소소하게 가져본다. 카페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아니지만 농촌에서 노후의 하루를 여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달달한 커피가 이렇게 만들어 준다.

커피 타임엔 식탁의 자리도 자유스러워진다. 아내는 찻잔을 들고 벤치로 나가 들녘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난 의자를 하나 더 꺼내 두 발을 올리고 길게 앉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작은 일들을 커피 향에 올리기도 하고, 때론 색 다른 양념을 올려 달달한 커피 맛을 씁쓸하게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오늘만 만들어 올릴 수 있는 레시피가 아닌가? ㅡ 서천에서 보내온 허 박사의 전원일기

♤ 서천에서 보내온 전원일기

서울에서 고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하고 멀리 충남 서천으로 내려가 농촌에서 작은 과수 농사와 밭 농사도 짓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40년 지기 교육 동료인 허(許) 박사가 오늘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전원일기 한 편을 보내왔다. 허 박사가 귀촌한 서천에는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는 춘장대해수욕장과 다양한 동식물을 만나볼 수 있는 국내 최대 생태원인 국립생태원이 있다.

전원생활의 향취가 듬뿍 느껴지는 정겨운 글과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혼자만 읽고 보기 아까워 내 블로그에 실어도 좋으냐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허 박사가 가끔씩 보내주는 전원일기와 농촌의 풍광은 한때 모든 것 내려놓고 귀촌을 꿈꾸었던 내게 다시금 큰 소망을 안겨준다. 자연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자 상처입은 마음의 치유 공간이며 영원한 모성(母性)이 깃든 곳이다. 늘 그리움 가득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다.


귀한 글과 사진을 나의 블로그에 싣도록 허락해 준 허 교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좋은 글과 아름다운 사진은 함께 나누면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힘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주리라 생각한다. / 김영택

/ 2020.08.25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