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四月 上旬 / 박목월
누구나
인간(人間)은
반쯤 다른 세계에
귀를 모으고 산다
멸(滅)한 것의
아른한 음성(音聲)
그 발자국 소리
그리고
세상은 환한 사월 상순(四月 上旬)
누구나
인간(人間)은
반쯤 다른 세계의
물결 소리를 들으며 산다
돌아오는 파도
집결(集結)하는 소리와
모래를 핥는
돌아가는 소리
누구나
인간(人間)은
두개의 음성(音聲)을 들으며 산다
허무한 동굴의
바람 소리와
그리고
세상은 환한 사월 상순(四月 上旬)
● 자세를 바꾸다 / 정형일
독거실 12호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몇 개월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일 년 삼 개월을 더 살고 있다
아니 살아 있다
먹은 것은 없어도 똥은 싸야 하므로
한 박스의 관장약을 항문으로 넣고
똥 한 번 싸는데 하루의 반을 소요한다
제도 속에 감금되었다는 이유로
호스피스 치료 대상이 되지 않는 그에게
통증을 견디는 방법은 소량의 트리돌과
10분여 마다 자세를 바꾸는 것뿐
반듯하게 누웠다가 벽에 다리를 기댔다가
가슴을 쥐고 엎드렸다가 모로 누웠다가
쥐며느리처럼 구부러졌다가
일어나 앉았다가 수그러지다가
숨이 멈출 때까지 자세를 바꾸는 것뿐이다
어쩌면 삶이란
● 生의 反語法 / 김연이
결단코,
큰소리 지를 일도 아닌 사소한 일로
두 아이에게 꽥꽥 소리지르다가
핑계 김에 저녁밥도 내팽개치고
식구들, 사택 식당으로 내몰았겠다
이불 뒤집어 쓴 채 씩씩 황소 분 끓이다가
기분이나 풀어볼까
컴퓨터 방에 쑥 들어섰더니
내 앞에 툭 던져진 편지 한 통,
…이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분은 언니의 넉넉한 품인 것 같아요-
웃음이 나왔다
생각할수록
쥐구멍에 숨어들어도 낯뜨거운
좁아터진 나의 밴댕이 속!
우리는 어쩌면 저 만큼
마주보기엔 부끄러운
또 다른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 2020.08.02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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