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사랑과 집착 사이 조동례, 기억 김봉규, 벚나무 강미정 (2020.08.02)

푸레택 2020. 8. 2. 18:00







● 사랑과 집착 사이 / 조동례

이가 나기 시작하면 젖을 떼야한다고
남들은 당부하는데
마땅히 줄 게 없던 나는 차마
아이가 돌이 지나도록 젖을 물렸다
왼젖을 빨릴 땐 오른젖을 손에 쥐어주고
오른젖을 빨릴 땐 왼젖을 손에 쥐어주었다
세상을 거머쥔 듯 어미를 독차지한 아이의 눈빛
그윽히 바라보던 나도
세상을 품안에 안아보던 순간이어서
젖통이 쪼글쪼글 비워지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다 비웠구나 안심하던 찰나 자즈러질 듯 비명이 터지고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아이는
제법 자란 앞니로 젖꼭지를 덥썩 깨물어 놓고
도리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어이없는 능청에 나도 온통 웃고 말았는데

그렇다
필요할 때 무조건 주는 게 사랑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주는 건 집착이다
나는 세상에게
너무 오래 젖을 물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드러운 혀 속 어딘가에
부질없는 날선 이빨이 숨어있는 줄도 모르고
 ‘진즉 뗄 걸’

● 기억 / 김봉규

그러니까
코 흘리던 어린 시절
동네 새댁 베 짜는 방에서
도란도란 수수께끼 놀이하는데
땅꼬마 영수가
끄먼 솔밭에 몽둥이 하나 있는디
그거시 무엇이것냐에
모두가 생각에 잠겨
그거시 무어시까잉 그거시 무어시까잉 하는디
그 녀석이 큰 소리로
아 그거시 으런 자지 아니냐고 하니까
아 갑재기
베 짜던 새댁이 큰 소리로 웃는디
그 웃음소리 그렇게 맑아
서로 얼굴 바라보며
그러니까 눈만 멀뚱멀뚱

아 그 휘황한 러브호텔 같은
희고 둥근 세계여

● 벚나무 / 강미정

한 번은 옆 침대에 입원한
환자의 오줌을 받아 주어야 했다
환자는 소변기를 갖다대기도 전에 얼굴이 뻘개졌다
덮은 이불 속에서 바지를 내리자
빳빳하게 솟구쳐 있는 그것,
나도 얼굴이 빨개졌다
이불 속에서 소변기를 걸쳐놓고
그것을 잡고 오줌을 눌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안한 눈은
창 밖 벚나무 가지 위로 오르는데
벚나무도 뜨겁게 솟구치는 제 속을 받아내는지
펑펑 눈부신 소리로 꽃을 뿜어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조용하게
벌어진 꽃나무의 상처를 핥아주고 있던 햇빛이
후딱 일어나 수천 개의 혀를 내밀더니
내 눈을 휘감아 가버렸다
놀란 나는 캄캄해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벚나무 아래에서 와와, 숨 멎는 소리만
내 눈에 고였다가 넘쳐흘렀다
그날 옆 침대에 입원한 환자는 내내 돌아누워
밥도 먹지 않았다

/ 2020.08.02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