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기계 장날 박목월, 저녁길 김광규, 몸통만 남은 은행나무 오철수 (2820.08.03)

푸레택 2020. 8. 3. 09:45







● 기계 장날 / 박목월

아우 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쿵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문
오늘같이 기계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를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앙 그렁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쳐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 저녁길 / 김광규

날 생각을 버린 지는 오래다

요즘은 달리려 하지도 않는다
걷기조차 싫어 타려고 한다
(우리는 주로 버스나 전철에 실려 다니는데)
타면 모두들 앉으려 한다
앉아서 졸며 기대려 한다
피곤해서가 아니다
돈벌이가 끝날 때마다
머리는 퇴화하고
온 몸엔 비늘이 돋고
피는 식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을 반쯤 감은 채
익숙한 발걸음은 집으로 간다

우리는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간다
파충류처럼 늪으로 돌아간다

● 몸통만 남은 은행나무 / 오철수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길 건너편에 시커먼 쇠기둥 같은 것이 서 있는 것이다. 분명 그것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 공사를 시작하려고 그러는가,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럴 기미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보니 시커멓기는 한데 쇠기둥은 아니었다. 비록 가지도 하나 없고 상반신도 절반은 잘려나갔지만 군데군데 초록 이파리들이 들러붙어 있는 신기한 나무였다.

나는 길을 건너자마자 그 기둥을 자세히 보았다.

그것은 분명 살아 있는 나무였고,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둥치 좋은 은행나무였다. 그런데 잘려나간 모양이 하도 흉악스러워 나무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정도는 가로수 정비 차원이 아니다. 가지란 가지는 몸통과 붙은 그 자리에서부터 잘렸고 상반신도 절반쯤이 싹둑 잘린, 말 그대로 거대한 말뚝을 박아놓은 모습이다.

그냥 끔찍스러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시커먼 몸통을 뚫고 예쁜 초록 이파리들이 나온 것이다. 기억하기로 나는, 나무 가지가 아니라 그 몸통에 마치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핀 나뭇잎을 그 때까지 본 적이 없다.

"가지가 다 잘려나가자 몸통을 뚫고 핀 이파리들…"

그것만으로도 가슴에 묘한 통증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사연을 짐작할 만 하다. 그 은행나무 머리 위로 커다란 도로표지판이 있고, 그 밑이 키 낮은 보행자 신호등이다. 지난 여름을 생각하니 유난히 도로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나무가 표지판을 가리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하기로는, 나무를 파내자니 그 공사가 대단할 것 같고 밑동을 잘라내자니 위험물을 방치한 꼴인 데다가 미관 문제도 걸릴 것 같아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심했다. 아니, 잔인하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나는 보통 때 도시 미관을 핑계로 잘라낸 가로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잘려나간 내 욕망의 팔들을 생각했었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저들의 습성! 그것을 내면화하며 알아서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 그것은 때로 저들에 대한 분노로도, 나무에 대한 연민으로도 변해 내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 나무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해도 너무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시커먼 나무 껍질을 뚫고 피어난 초록 이파리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비유가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들에게 "강철 잎새"라는 명칭을 붙여주고 싶었다. "저 강인한 생명력!".

그러나 나는 그 나뭇잎들을 보며 거기에 한참 동안 서 있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남들이 보기에 괜한 동정심에 빠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 나는 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20m 정도 떨어진 정류장에서 서서 계속해 말뚝이 된 은행나무를 본다.

버스를 한 대 보내고 계속 그 쪽을 본다.

그런데 묘한 것은, 멀리서 오랫동안 보고있자니 진정 그 나무가 쇠말뚝처럼 강해 보였고, 내 마음속에서 어떤 유쾌한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 저것은 횡단보도 옆에 사는 은행나무야. 산 속에 사는 나무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당하고 있는 나무. 그래서 어떤 불평도 분노도 하지 않고 다만 목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피워내는, 그래, 저 나무는 횡단보도 옆에 사는 나무야. 어마어마한 생에 대한 긍정 하나로 버티고 선 나무!"

나는 혼자 'amorfati'(운명애)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때 마침 바람결엔 듯 나무 몸통에 붙어 있던 푸른 잎들이 번쩍 번쩍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초록 잎이 햇빛을 씹어먹는 모양이다.

/ 2020.08.03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