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광야에 찬 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너머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 했던가, 사람의 일생 덧없이 흘러감이라.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우리네 인생 만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있음이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던가,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감이라. 고달픈 인생길 정처없이 떠돌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곳 하늘나라로 돌아감이라.
어느 시인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이 세상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망백(望百)을 넘어 백수(白壽)를 앞둔 아흔여덟의 연세, 8년 간 치매를 앓아 요양원에서 지내시던 부친이 지난 6월 27일(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다. 향년 98세.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조문객을 받기 힘든 시기여서 직계가족들만 입관을 지켜보았고 다음날 발인하였다. 고양 벽제화장터 서울승화원에서 한줌 재가 되신 아버지는 이천 큰딸의 집 양지바른 언덕 어느 소나무 아래에 묻히셨다.
경북 군위군 대가족 농군(農軍)의 집 차남으로 태어나셔서 장남 역할하시며 삼촌들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시고 자수성가(自手成家)하신 아버지. 한 많은 이 세상 하직(下直)하시고 하늘나라 먼길 떠나가신 아버지, 이제 이 세상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가난 속에서 육남매 키우시느라 맘 고생하시며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셨을 아버지. 삼십 삼년 전 먼저 가신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두번 상처(喪妻)의 아픔으로 정처없는 방랑의 길 떠돌아 다니셨던 별관 어른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고향 그리움도 이제 다 잊으시고 그곳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
선창가 고동 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땅 밟아서 돈지 십년 넘어 반 평생
사나이 가슴 속에 눈물 고였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즐겨 부르셨던 ‘나그네 설움’ 유행가 가사처럼 지나온 자욱마다 서러움과 회한의 눈물 가득 고였을 아버지의 아흔여덟 해의 삶. 고향 땅 몇 마지기를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셨던 아버지. 빈손으로 자수성가하여 자린고비(玼吝考妣)의 삶을 살아가셨던 아버지. 고난의 삶 견뎌내시고 모진 목숨 다 하시어, 환하고 평안하신 얼굴로 누워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셨음이라.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아흔 여덟 해를 살아오신 한 인생이 한 줌 재가 되었다.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인가. 서울승화원 벽제화장터에는 어리디 어린 한 생명이 싹도 피워보지 못한 채 한 줌 재가 되고 있었고, 꽃다운 나이의 한 청춘이 어린 핏줄을 남기고 또 한 줌의 재가 되고 있었다. 검정 예복을 입은 어린 소년, 군복을 입은 수십 명의 청년들이 한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듯 누구도 알 수 없는 각자 타고난 운명의 제 몫만큼의 인생을 살다가 홀로 먼길 떠나는 것일까, 덧없는 인생이어라. 뜬 구른 인생이어라.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신 이후 모든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였고 또한 모든 장례 일정을 도맡아 처리한 동생 영준과 영일, 지연 동생, 계수씨, 남편의 뇌졸중까지 감당해 가며 눈물의 기도로 주님께만 의지하는 이천 누나, 모두들 고생 많았습니다.
먼길 장지까지 찾아와 준 은우 내외, 정아 내외, 정심 내외 그리고 멀리서 기도로 함께 한 정인 내외도 고맙고, 영정 사진 앞세우고 예(禮)를 다 한 이 서방, 할아버지의 관(棺)을 옮기며 손주 노릇 다 한 승열, 성찬, 웅찬, 지찬, 학균이 수고 많았습니다.
하늘나라 먼길 떠나시는 고인의 명복(冥福)을 빌어주신 판조 고모님, 수자 고모님, 수화 고모, 종대 아재, 종열 아재, 승희 동생 고맙습니다.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딸들의 지인들과 친구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감사의 인사 글을 씁니다. “금번 저희 부친상에 따뜻한 마음의 위로와 격려 보내주시고,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나라 먼길 떠나시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풀어주신 따뜻한 위로와 은혜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나 가정에 평안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06.29(월) ‘메멘토 모리!’
부고 알림 “저희 아버지 김종호 씨께서 향년 98세의 연세로 소천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가족들과 함께 고인을 잘 보내드리려 합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절이기에 조문은 사양하기로 하였습니다. 위로의 마음으로 먼길 떠나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발인 2020.06.29(월), 장지 서울시립승화원, 상주 김영택 드림 / 2020.06.27(토)
●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제망매가(祭亡妹歌) / 월명사
생사로난
예 이샤매 저히고
나난 가나다 말도
몯다 닏고 가나닛고 어
느 가잘 이른 바라매
이에 저에 떠딜 닙다이
하단 가재 나고
가논 곧 모다온뎌
아으 미타찰애 맛보올 내
도 닷가 기드리고다
(삶과 죽음의 길은
이에 있음에 두려워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 세계에서 만나볼 나는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
● 하관(下棺) / 박목월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다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질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 2020.07.04(토) 아버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김영택 씀
[追錄]
■ 비군인 노무자로 6.25전쟁에 참전하신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6.25전쟁에 비군인 노무자로 참전하여 군번 없이 군복무를 하셨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전쟁터에서 군수물자 보급과 지원 활동을 하셨던 그때 일을 가끔씩 들려주셨다. 수십 년을 잊고 지냈는데 현역 군인이 아니라 비군인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였어도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으면 국가유공자로 선정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2년 전인 2019년, 보훈처 홈페이지에서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 신청 양식을 다운받아 군번 없는 비군인 노무자 활동 내용을 적고 그때 아버지께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을 동봉하여 서류를 제출했다. 이때 아버지는 수년간 치매로 요양원에 계셨기에 평소 아버지로부터 들은 내용을 적어보냈다.
2주쯤 후에 국가보훈처에서 회답이 왔다. 국가유공자 보훈심사 결과 사진 한 장으로는 참전 확인이 부족하고, 군번이 없으면 인우증명 서류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우증명서(인우보증서)란 특정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이웃이 객관적 사실을 보증하고 증명하는 서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연세가 97세로 백세를 바라보는데 그리고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데 그때 일을 말해 줄 이웃을 어찌 찾아 인우증명(보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78년 전 아버지가 6.25정쟁에 비군인 노무자로 참전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웃)들은 다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셔도 찾을 길이 없는데 말이다. 인우증명(보증)하라는 말은 국가유공가 신청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
그래서 그냥 국가유공자 추가 서류 제출을 포기했다. 비록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지만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께 “아버지! 6.25전쟁 때 참전하셔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으셨어요.”라는 말씀을, 큰 선물을 드리려는 작은 효심을 버려야 했다. 자식을 둘이나 둔 서른 살 나이에 비록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군번 없는 노무자로 6.25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봉사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어 유공자로 인정을 못받는 것이 자식으로서 못내 섭섭했다. 정작 아버지 본인은 치매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6.25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호국영령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 생사 고비를 넘나들며 헌신하신 분들 분들도 감사를 드린다. 비록 국가에서는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식들은 안다. 아버지께서 비록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비록 군번은 없지만 비군인 노무자로 6.25전쟁에 참전하셨다는 사실을. 국가유공자 대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좋아하시고 즐겨 부르셨던 노래를 선물로 드립니다. 이 노랫소리를 들으시며 근심도 걱정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2021.06.28)
/ 2020.07.04(토) 아버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김영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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