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읽기] 《풀들의 전략》 민들레, 마침내 벌어진 전쟁 (2020.05.10)

푸레택 2020. 5. 10. 16:56

 

 

 

 

 

 

 

 

 

 

 

 

 

 

 

 

 

 

 

 

 

 

 

 

■ 민들레, 마침내 벌어진 전쟁 / 이나가키 히데히로

 

민들레에는 크게 나뉘 두 가지 그룹이 있다. 하나는 동양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재래종 민들레고, 다른 하나는 서양에서 들어온 서양 민들레다. 이 두 가지 민들레는 꽃 아래에 있는 포편으로 간단히 구분이 가능하다. 서양 민들레는 총포편이 뒤로 뒤집어져 있는데 반해 재래 민들레는 그렇지 않다. 이 차이로부터 재래 민들레와 서양 민들레 분포를 조사하는 연구가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꽃이 피는 시기는 어떨까? 재래 민들레는 봄밖에 꽃을 피울 수 없지만 서양 민들레는 일년 내내 언제라도 꽃을 피울 수 있다. 몇 번이라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씨앗 생산 수는 어떨까? 재래 민들레는 꽃도 작고 씨앗의 수도 적은 데 견주어 서양 민들레는 꽃이 크고 생산되는 씨앗의 수도 많다. 더욱이 서양 민들레는 씨앗이 작고 가볍기 때문에 재래민들레보다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

 

거기다 서양 민들레는 보통 씨앗이 아니라 클론(clone) 유전자에 의해 씨앗을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클론으로 늘어난다고 하는 것은 가루받이 상대가 없이도, 예컨대 민들레가 한 그루만 있어도 자꾸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낯선 땅에서 세력을 확대해 갈 때 이런 능력이 얼마나 유용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리라.

 

전력은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서양 민들레 쪽이 앞선다.

조사를 해 보면 일반적으로 서양 민들레는 도시 쪽에 주로 많다. 한편 재래 민들레는 교외나 시골에 많은데, 그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서양 민들레가 시가지를 제압함에 따라 재래 민들레는 교외로 밀려난 듯한 인상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재래 민들레와 서양 민들레가 싸운다는 표현 자체가 처음부터 옮지 않다. 재래 민들레를 교외로 밀어내고 있는 요인, 그것은 인간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환경 파괴가 주된 이유이다.

 

씨앗이 작은 서양 민들레는 다른 식물과의 생존 경쟁에서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 외래 식물은 옛날부터 그 땅에서 살아온 재래 식물과 맞겨루기가 애초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쉽게 자리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란 공간은 원래 있었던 자연이 파괴된 곳이다. 그렇게 라이벌이 없는 공터가 생기며 서양 민들레는 비로소 생존이 가능한 장소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외래 민들레가 강하다. 한 그루라도 뿌리를 내리면 서양 민들레는 바로 씨앗을 맺으면서 어느 사이 재래 민들레가 사라진 땅 가득 퍼져간다.

 

서양 민들레가 널리 퍼져간다고 하는 것은 관점을 바꿔서 보면 인간에 따른 환경 파괴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양 민들레가 재래 민들레를 구축한다는 것은 서양 민들레의 입장에서 보자면 완전한 누명이다. 서양 민들레는 '인간 여러분. 부디 당신 가까이 언제까지라도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것이 제 소원이랍니다' 라는 기도를 하면서 자연이 파괴된 도시에서 열심히 재래 민들레 대리 역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서양 민들레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 주변 풍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삭막할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들어도 모자랄 정도인데 억울하게도 악당 취급을 받아온 서양 민들레가 얼마 전부터 그동안과 다른 자세로 자기 부족의 세력 확대에 나섰다. 본래는 재래 민들레의 세력권이 틀림없는 장소에서 바깥 모습만으로는 서양 민들레가 분명한 민들레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포 영화인 '파라사이트 이브(Parasite eve)' 에서는 인간의 세포 안에 공생하는 미트콘드리아가 인간을 숙주로 써서 자신의 유전자를 증식해 가며 인간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양 민들레도 미트콘드리아와 같은 방식으로 유전자 레벨에서 재래 민들레에 침입하는 작전을 쓰고 있다. 서양 민들레의 꽃가루가 재래 민들레의 암술에 붙어 가루받이가 되면 잡종이 되는데, 그 잡종이 가진 유전자 가운데 2분의 1은 서양 민들레의 유전자다. 그 잡종에 다시 서양 민들레의 꽃가루를 가루받이시키면 4분의 3. 이렇게 해서 조금씩 피를 진하게 해 가며 재래 민들레의 몸을 오염시켜 가는 것이다.

 

잡종은 클론의 씨앗을 만들어 증식해 가는 한편 이렇게 재래 민들레와 교잡해 간다. 불공평하게도 서양 민들레는 클론 방식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다른 피가 섞이지 않은 순종 개체를 이어갈 수 있다. 한편 재래 민들레는 그것이 어렵다. 씨앗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개체와 교잡하지 않을 수 없는 가루받이 방식 때문이다. 잡종화할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서양 민들레는 이렇게 재래 민들레를 잡종화하며 순혈의 재래 민들레를 감소시켜 간다. 교외에서 서양 민들레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서양 민들레가 잡종이 돼서 재래 민들레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갔기 때문인 것이다. '주위의 수많은 동료들이 어느새 모두 에이리언으로 바뀌어 있었다.' 재래 민들레는 지금 이런 SF소설과 같은 공포 속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서문> 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모자

 

어려운 때다.

"잡초처럼 강하게 살자."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밝히고 뽑히고 베이면서도 다시 일어나 자라는 잡초! 우리는 그런 잡초를 보고 '강하다' 고 느낀다. 그것이 사실일까? 뜻밖에도 본래 잡초는 결코 억센 식물이 아니다. 억세기는커녕 오히려 연약한 식물이라 불러 마땅하다.

 

약한 그들이 굳세게 살고 있는 비결, 그 키워드는 놀랍게도 '역경, 곧 견디기 힘든 환경이다. 잡초들의 삶의 환경은 그저 열심히 일만 하면 될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밝힌다거나 차인다거나 뿜힌다거나 베인다거나 하는 온갖 곤란한 일이 뒤를 이어 그들을 덮쳐 온다. 그래도 잡초는 그곳에서 도망을 칠 수가 없다. 그곳이 아무리 좋지 않은 환경이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마쳐야 한다.

 

그런 숙명을 안고 잡초는 살아간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도인처럼 잡초는 살아간다. 어떤 환경에 놓이든 도망치지 않는다.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는 역경 속에서 아름답게 자신을 꽃피우는 방법을 몸에 익한힌다.

 

'이름 없는 풀' 이라며 사람들은 잡초를 멸시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풀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잡초는 모두 자기만의 이름과 아름다움과 특징을 갖고 있다. 다양하고 또 생기에 차 있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사는 잡초 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50가지를 골라 그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정색을 하고 살펴보고자 한 것이 이 책이다.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큰 야망을 품은 잡초가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작은 크기로 살기를 꿈꾸는 잡초가 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하고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자기만의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크게 성공을 하기도 하고, 밑바닥을 기면서도 행복한 잡초도 있다. 경쟁이 싫어서 사람의 발에 밝히는 고생을 참아가면서 홀로 사는 잡초도 있다. 그래서 '이건 잡초가 아니라 마치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잖아!' 하는 느낌을 받는 독자도 많으리라.

 

잡초는 돌봐 주는 사람 없이 살아가야 한다. 돌보는 사람은커녕 핍박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그러므로 잡초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역경에 끊임없이 마주 서는 강인함이다. 잡초는 말하자면 식물 세계의 하층민이다. 인도식으로 말하자면 불가촉천민쯤 되리라. 버려져 있는 풀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잡초의 삶 앞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 역경에서 오히려 강해지는 것은 결코 잡초만이 아닌 것이다.

 

옛날이야기 가운데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모자' 라는 게 있다. 그 모자를 쓰면 새나 짐승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 내용인데, 여러분 또한 이 책을 통해 잡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 '모자' 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나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50가지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하기로 한다.

 

☆ 주변의 가장 흔한 야생초 입문서!

 

대학의 잡초학 연구와 시인의 감성으로 버무려 쓴 주변의 가장 흔한 야생초 50가지 입문서!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쑥은 수분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가는 털을 촘촘히 얽어서 통기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제비꽃은 꿀벌이 오지 않는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자가수분을 한다. 벌레를 불러 모으기 위해 꽃잎은 물론 꿀을 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 꽃가루도 최소한만 준비하면 OK! 덩이뿌리를 가진 참나리는 만에 하나 멧돼지 같은 것에 먹혀 버릴지도 모르는 경우엔 자폭해 버린다. 오리새는 소에게 뜯기는 생활을 피해 아예 시골에서 도시로 도망을 택했다.

 

근검 절약, 도주, 저항... 잡초의 생존전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혹과 위장, 최첨단 무기 활용, 위기관리, 진화, 은혜 갚기, 대규모의 비용 삭감을 단행하면서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전략보다 우선하는 잡초의 생존전략이 있으니 이는 다른 생명과의 조화로운 삶이다. 수만 년 동안 생명을 이어오면서도 다른 생명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가장 평화로운 생존전략을 수립해온 잡초가 인간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풀들의 전략》은 지금이라도 당장 허리를 굽혀 지구 위의 가장 낮은 풍경을 살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출처] 《풀들의 전략》/ 글 이나가키 히데히로, 그림 미카미 오사무, 번역 최성현 (2006, 도솔오두막)

 

/ 2020.05.1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