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산책] 봄비 내린 날 산책길 풍경.. 윤사월 박목월, 낙화 조지훈, 낙화 이형기, 배롱나무 꽃 정진규, 불두화 질 무렵 복효근 (2020.05.09)

푸레택 2020. 5. 9. 22:24

 

 

 

 

 

 

 

 

 

 

 

 

 

 

 

 

 

 

 

 

♤ 봄비 내린 5월, 산책길에서 만난 풍경

 

산철쭉, 송홧가루, 인동덩굴, 불두화, 배롱나무, 붉은병꽃나무

 

● 윤사월(閏四月) /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낙화(落花)/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애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낙화(落花)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배롱나무 꽃 / 정진규

 

어머니 무덤을 천묘하였다 살 들어낸 어머니의 뼈를 처음 보았다 송구스러워 무덤 곁에 심었던 배롱나무 한 그루 지금 꽃들이 한창이다 붉은 떼울음, 꽃을 빼고나면 배롱나무는 골격(骨格)만 남는다 촉루라고 금방 쓸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다 너무 단단하게 말랐다 흰 뼈들 힘에 부쳐 툭툭 불거졌다 꽃으로 저승을 한껏 내보인다 한창 울고 있다 어머니, 몇 만리(萬里)를 그렇게 맨발로 걸어오셨을까

 

● 불두화 질 무렵 / 복효근

 

비 갠 뒤

확독에 물이 고이고

아기의 눈빛 속에 송이눈이 오듯이

불두화 흩어져 그 속에 고였다

 

쌀도 보리도

죽도 밥도 아닌 그것을

눈으로만 눈으로만 한 열흘 먹다가

내 사십 년 표정들을 그것들과 바꾸고 싶다

 

시방 마을엔 왼갖 웃음과 꽃들이 피었을 거다

꽃 진 불두화 곁에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저승도 이쯤이면 꽃빛으로 환할 것 같으다

 

/ 2020.05.0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