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읽기] 《풀들의 전략》 가장 흔한 야생초 50가지 입문서, 제비꽃 야생초의 도시 생활 (2020.05.10)

푸레택 2020. 5. 10. 10:39

 

 

 

 

 

 

 

 

 

 

 

 

 

 

 

 

♤《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서문> 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모자

 

어려운 때다.

"잡초처럼 강하게 살자."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밝히고 뽑히고 베이면서도 다시 일어나 자라는 잡초! 우리는 그런 잡초를 보고 '강하다' 고 느낀다. 그것이 사실일까? 뜻밖에도 본래 잡초는 결코 억센 식물이 아니다. 억세기는커녕 오히려 연약한 식물이라 불러 마땅하다.

 

약한 그들이 굳세게 살고 있는 비결, 그 키워드는 놀랍게도 '역경, 곧 견디기 힘든 환경이다. 잡초들의 삶의 환경은 그저 열심히 일만 하면 될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밝힌다거나 차인다거나 뿜힌다거나 베인다거나 하는 온갖 곤란한 일이 뒤를 이어 그들을 덮쳐 온다. 그래도 잡초는 그곳에서 도망을 칠 수가 없다. 그곳이 아무리 좋지 않은 환경이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마쳐야 한다.

 

그런 숙명을 안고 잡초는 살아간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도인처럼 잡초는 살아간다. 어떤 환경에 놓이든 도망치지 않는다.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는 역경 속에서 아름답게 자신을 꽃피우는 방법을 몸에 익한힌다.

 

'이름 없는 풀' 이라며 사람들은 잡초를 멸시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풀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잡초는 모두 자기만의 이름과 아름다움과 특징을 갖고 있다. 다양하고 또 생기에 차 있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사는 잡초 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50가지를 골라 그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정색을 하고 살펴보고자 한 것이 이 책이다.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큰 야망을 품은 잡초가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작은 크기로 살기를 꿈꾸는 잡초가 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하고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자기만의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크게 성공을 하기도 하고, 밑바닥을 기면서도 행복한 잡초도 있다. 경쟁이 싫어서 사람의 발에 밝히는 고생을 참아가면서 홀로 사는 잡초도 있다. 그래서 '이건 잡초가 아니라 마치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잖아!' 하는 느낌을 받는 독자도 많으리라.

 

잡초는 돌봐 주는 사람 없이 살아가야 한다. 돌보는 사람은커녕 핍박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그러므로 잡초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역경에 끊임없이 마주 서는 강인함이다. 잡초는 말하자면 식물 세계의 하층민이다. 인도식으로 말하자면 불가촉천민쯤 되리라. 버려져 있는 풀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잡초의 삶 앞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 역경에서 오히려 강해지는 것은 결코 잡초만이 아닌 것이다.

 

옛날이야기 가운데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모자' 라는 게 있다. 그 모자를 쓰면 새나 짐승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 내용인데, 여러분 또한 이 책을 통해 잡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 '모자' 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나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50가지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하기로 한다.

 

☆ 주변의 가장 흔한 야생초 입문서!

 

대학의 잡초학 연구와 시인의 감성으로 버무려 쓴 주변의 가장 흔한 야생초 50가지 입문서!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쑥은 수분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가는 털을 촘촘히 얽어서 통기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제비꽃은 꿀벌이 오지 않는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자가수분을 한다. 벌레를 불러 모으기 위해 꽃잎은 물론 꿀을 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 꽃가루도 최소한만 준비하면 OK! 덩이뿌리를 가진 참나리는 만에 하나 멧돼지 같은 것에 먹혀 버릴지도 모르는 경우엔 자폭해 버린다. 오리새는 소에게 뜯기는 생활을 피해 아예 시골에서 도시로 도망을 택했다.

 

근검 절약, 도주, 저항... 잡초의 생존전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혹과 위장, 최첨단 무기 활용, 위기관리, 진화, 은혜 갚기, 대규모의 비용 삭감을 단행하면서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전략보다 우선하는 잡초의 생존전략이 있으니 이는 다른 생명과의 조화로운 삶이다. 수만 년 동안 생명을 이어오면서도 다른 생명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가장 평화로운 생존전략을 수립해온 잡초가 인간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풀들의 전략》은 지금이라도 당장 허리를 굽혀 지구 위의 가장 낮은 풍경을 살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출처] 《풀들의 전략》/ 글 이나가키 히데히로, 그림 미카미 오사무, 번역 최성현 (2006, 도솔오두막)

 

● 제비꽃, 야생초의 도시 생활 / 이나가키 히데히로

 

제비꽃은 산 오솔길의 햇살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 그러나 산야에 피는 이미지가 강한 제비꽃도 잘 살펴보면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이나 돌담 틈과 같은 도시 속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제비꽃의 씨앗에는 '엘라이오솜' 이라는 물질이 붙어 있다. 꼭 젤리 같은 것인데, 이것을 개미가 좋아한다. 아이들이 '덤'으로 주는 예쁜 그림 카드에 눈이 팔려 꼭 먹고 싶지도 않은 과자를 사듯 개미 또한 엘라이오솜을 먹기 위해 제비꽃 씨앗을 통째로 제 집으로 물어간다. 그 덕분에 발이 없이도 제비꽃 씨앗은 멀리까지 갈 수 있다.

 

개미는 땅속 깊이 지은 자신의 집으로 제비꽃 씨앗을 물고 들어가는데, 그렇게 되면 씨앗은 거기서 싹을 틔우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것 또한 제비꽃은 계산에 넣고 있다. 개미에게 필요한 것은 씨앗에 붙어 있는 엘라이오솜이지 씨앗이 아니다. 엘라이오솜이 없는 제비꽃 씨앗은 개미에게 쓰레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집 바깥에 내다 버린다. 이렇게 해서 제비꽃의 전략은 성공한다.

 

개미집은 반드시 흙이 있는 곳에 있다. 도시 속에 있는 개미집 출입구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의 틈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고 있다. 들꽃 이미지가 강한 제비꽃이 도시 한구석의 갈라진 콘크리트 틈이나 돌담 따위에 돋아나 있는 것은 그곳의 얼마 안 되는 땅으로 개미가 씨앗을 물어다 주기 때문이다. 거기다 개미가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는 먹고 남은 식물 찌꺼기도 있기 때문에 수분이나 영양분도 풍부하다는 특전이 붙어 있다.

 

제비꽃의 전략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꽃에도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제비꽃을 잘 살펴보면 꽃송이 뒤에 튀어나온 돌기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꿀주머니라고 하는 것이다. 꿀주머니란 꿀을 담는 통이다. 줄기는 앞쪽의 꽃 부분과 뒤쪽의 꿀주머니 중간에 붙어 우산처럼 균형을 잡고 있다. 긴 꽃 모양을 갖추기 위해 줄기가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며 긴 꽃 모양을 고집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꽃에는 온갖 벌레가 찾아온다. 가루받이에 필요한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레가 있는가 하면 꿀만 훔쳐가는 벌레도 있다. 제비꽃은 그와 같은 두 종류의 벌레 가운데 꽃가루를 옮겨 가루받이를 시켜주는 파트너를 골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긴 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솝 우화 에는 서로 음식을 먹을 때 쓰는 그릇이 다른 학과 여우 이야기가 나온다. 학은 목이 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데, 여우는 그런 그릇에 담긴 음식은 먹을 수 없다. 한편 여우가즐기는 납작한 그릇으로는 학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제비꽃의 꽃가루를 옮겨주는 꿀벌 무리는 혀를 길게 늘일 수 있다. 그래서 제비꽃은 학처럼 자루가 긴 그릇을 준비한 것이고, 이것이 제비꽃의 꽃이 길어진 까닭이다.

 

꽃 속을 들여다보면 암술 주변에는 한 손으로 물을 뜰 때와 꼭 같은 모양의 막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손 모양 중 가운뎃손가락 부분이 암술인데, 제비꽃은 암술과 막을 이용하여 꽃가루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있고, 수술은 꽃가루를 이 그릇 속에 모두 떨어뜨려 넣어 주는 것이다.

 

이것으로 준비는 다 갖췄다. 꿀벌이 찾아와 꿀을 마시기 위해 꽃 속에 머리를 들이밀면 다섯 손가락 중 가운뎃손가락이 떨어지듯이 암술 부분이 벌어지며 그릇에 틈이 생긴다. 그리고 꽃가루가 꿀벌 머리에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준비를 하고 기다려도 봄이 지나면 꿀벌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제비꽃은 꽃망울만 맺은 채로 있을 뿐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다. 어기대는 게 아니다. 꽃잎을 피우지 않고 수술이 암술에 직접 닿게 하는 자립적인 방법으로 가루받이를 해 버리는 것이다. 꽃잎을 열지 않고 씨앗을 맺는 이런 꽃을 식물학에서는 '페쇄화' 라고 부르는데, 폐쇄화는 처음부터 필 생각이 없는 꽃이다.

 

물론 제 꽃가루를 받는 것보다는 다른 것을 받는 쪽이 좋다. 그쪽이 온갖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꿀벌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비꽃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목표나 이상이 아무리 좋아도 씨앗을 남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럴 때 제비꽃은 제 꽃가루를 써서 하는 차선의 방법으로 가루받이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폐쇄화에도 장점은 있다. 장점 가운데 하나는 벌레에 의존하는 방법에 견주어 씨앗을 남길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거기다 계절에도 좌우되지 않기 때문에 꿀벌이 잘 찾아주지 않는 늦여름에서 가을까지도 씨앗을 만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비용 삭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폐쇄화는 벌레를 불러 모으기 위한 꽃잎은 물론 꿀 또한 준비할 필요가 없다. 꽃가루도 가루받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준비하면 된다.

 

연약해 보이는 제비꽃에 이런 억센 면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출처] 《풀들의 전략》/ 글 이나가키 히데히로, 그림 미카미 오사무, 번역 최성현 (2006, 도솔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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