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 내린 5월 동네 풍경 (2)
송홧가루, 붉은병꽃나무, 불두화, 배롱나무, 인동덩굴
● 배롱나무 꽃 / 정진규
어머니 무덤을 천묘하였다 살 들어낸 어머니의 뼈를 처음 보았다 송구스러워 무덤 곁에 심었던 배롱나무 한 그루 지금 꽃들이 한창이다 붉은 떼울음, 꽃을 빼고나면 배롱나무는 골격(骨格)만 남는다 촉루라고 금방 쓸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다 너무 단단하게 말랐다 흰 뼈들 힘에 부쳐 툭툭 불거졌다 꽃으로 저승을 한껏 내보인다 한창 울고 있다 어머니, 몇 만리(萬里)를 그렇게 맨발로 걸어오셨을까
● 불두화 질 무렵 / 복효근
비 갠 뒤
확독에 물이 고이고
아기의 눈빛 속에 송이눈이 오듯이
불두화 흩어져 그 속에 고였다
쌀도 보리도
죽도 밥도 아닌 그것을
눈으로만 눈으로만 한 열흘 먹다가
내 사십 년 표정들을 그것들과 바꾸고 싶다
시방 마을엔 왼갖 웃음과 꽃들이 피었을 거다
꽃 진 불두화 곁에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저승도 이쯤이면 꽃빛으로 환할 것 같으다
● 윤사월(閏四月) /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낙화(落花)/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애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낙화(落花)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2020.05.0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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