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쟁이 / 오지연
준이네가 떠난
빈 집
담벼락 위로
초록 도롱뇽 한 마리가
푸른 혀를
낼름거리며
꿈틀꿈틀 올라갑니다
앞다리를
쑥쑥 뻗으며
뒷다리를
쭉쭉 뻗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초록빛 비늘이
출렁대며
반짝입니다
슬금슬금
천천히
천천히
하루하루 커지던
푸른 몸이
어느새
흰 벽 하나를 다 차지했습니다
● 담쟁이덩굴 / 손광세
눈발이 날리는
교실 창 밖
바위벽을
감싸고 있는
푸른 실핏줄
팔딱팔딱
맥박이 뛰고 있었구나!
바위벽이
살아 있었구나!
● 담쟁이 / 홍수희
담쟁이 벽을 오르고 있다
다홍빛 불도장
다섯 손가락
싸늘한 담벼락 위에
겨울판화처럼
얼음화석처럼
눈물로 아로새겨지도록
한 손바닥 두 손바닥
천천히 몹시 천천히
붉게 뜨겁게 벽을 오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험한
제 안의 벽을 오르고 있다
제 안의 한계를 오르고 있다
담쟁이는 알고 있는 거다
희망은 항상
벽 너머에 있다는 것을
● 봄날은 간다 / 손로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작사 손로원, 작곡 박시춘, 1954년]
/ 2020.04.2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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