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담쟁이 오지연, 담쟁이덩굴 손광세, 담쟁이 홍수희, 봄날은 간다 손로원 (2020.04.28)

푸레택 2020. 4. 28. 23:18

 

 

 

 

 

 

 

 

 

● 담쟁이 / 오지연

 

준이네가 떠난

빈 집

담벼락 위로

 

초록 도롱뇽 한 마리가

푸른 혀를

낼름거리며

꿈틀꿈틀 올라갑니다

 

앞다리를

쑥쑥 뻗으며

뒷다리를

쭉쭉 뻗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초록빛 비늘이

출렁대며

반짝입니다

 

슬금슬금

천천히

천천히

 

하루하루 커지던

푸른 몸이

어느새

흰 벽 하나를 다 차지했습니다

 

● 담쟁이덩굴 / 손광세

 

눈발이 날리는

교실 창 밖

바위벽을

감싸고 있는

푸른 실핏줄

팔딱팔딱

맥박이 뛰고 있었구나!

바위벽이

살아 있었구나!

 

● 담쟁이 / 홍수희

 

담쟁이 벽을 오르고 있다

다홍빛 불도장

다섯 손가락

싸늘한 담벼락 위에

겨울판화처럼

얼음화석처럼

눈물로 아로새겨지도록

한 손바닥 두 손바닥

천천히 몹시 천천히

붉게 뜨겁게 벽을 오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험한

제 안의 벽을 오르고 있다

제 안의 한계를 오르고 있다

담쟁이는 알고 있는 거다

희망은 항상

벽 너머에 있다는 것을

 

● 봄날은 간다 / 손로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작사 손로원, 작곡 박시춘, 1954년]

 

/ 2020.04.28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