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산책] 온화한 애정 어린 개아그배나무, 씩씩한 기상 꿋꿋한 절개 구상나무, 귀여운 병아리꽃나무, 홍릉수목원 (2020.04.12)

푸레택 2020. 4. 14. 19:31

 

 

 

 

 

 

 

 

 

 

 

 

 

 

 

 

 

 

 

 

● 병아리꽃나무 (장미과)

 

장미과의 작은 나무로 높이 1~2m 정도로 자란다. 우리나라에는 황해도 이남의 해안가 낮은 산지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원산지는 한국, 중국, 일본이다. 학명은 Rhodotypos scandens (Thunb.) Makino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발산리에 있는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 군락이 천연기념물 제37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줄기는 여러 개의 가는 줄기가 올라와 다발을 이룬다. 꽃은 4~5월에 새 가지 끝에 하얀색의 양성화가 한 개씩 달린다. 까맣게 광택이 나는 열매는 4개씩 모여 달리며, 9~10월이면 익어 이듬해 봄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반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병아리꽃나무는 하얀 꽃을 병아리에 비유해서 붙인 이름이다. 꽃잎 넉 장이 넉넉하게 벌어지면서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연약한 병아리가 봄에 마을을 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죽도화, 자마꽃, 이리화, 개함박꽃나무, 대대추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황해도에서는 '계마(鷄麻)'라 하여 혈이 허해서 신장이 약해졌을 때 원기를 회복하기 위한 약재로 사용하였다.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 공원이나 정원에 흔하게 식재되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자생지는 비교적 드문 편이다.

 

● 구상나무 (Korean Fir , 濟州白檀)

 

분류: 소나무과

학명: Abies koreana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작은 나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이렇게 좁은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좁은 곳에서만 자라다가는 살아남기가 어려우니 당연한 일일 터다. 그래도 드물게 우리 땅에서만 자라는 식물이 있다. 구상나무와 미선나무, 개느삼이 대표적이지만, 큰 나무로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구상나무다.

 

현재 구상나무의 자람 터가 모두 높은 산꼭대기라는 사실은 구상나무의 미래가 험난할 것임을 암시해준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남부 고산들의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구상나무는 원래부터 따뜻한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득한 옛날 지구가 빙하기일 때 구상나무는 산 아래에서도 널리 자랐다. 그러나 빙하가 북으로 밀려나고 기온이 높아지자 구상나무는 차츰차츰 온도가 낮은 산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맨 꼭대기까지 올라와 버린 것이다. 더 물러날 곳이 없으니 구상나무는 멸종위기 식물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죽어가는 구상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한라산이나 지리산 꼭대기에서 처량하게 형해(形骸)만 남은 고사목들은 대부분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를 처음 찾아내 학명을 붙이고 학회에 보고한 사람은 윌슨(Ernest Henry Wilson, 1876~1930)이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아놀드 수목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1915년경 제주도에서 구상나무를 처음 채집하여 1920년에 신종으로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우리나라 식물의 대부분을 조사하여 현대적인 분류를 한 일본인 나카이(Nakai)는 그때까지도 구상나무가 분비나무와 같은 나무로 알고 있었다. 사실 전나무, 분비나무, 구상나무는 같은 전나무속(屬)으로서 형태가 비슷하다. 특히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매우 닮았다. 분비나무는 솔방울을 이루는 비늘의 뾰족한 돌기가 곧바르고, 구상나무는 뒤로 젖혀지는 것이 차이점이다. 식물 관찰로 날을 지새운 나카이지만 이 간단한 특징을 놓치는 바람에 윌슨에게 새로운 종을 찾아내는 영광을 빼앗겨 두고두고 억울해했다고 한다.

 

구상나무는 분비나무를 선조로 하여 생긴 파생종이라고 한다. 당연히 분비나무와 비슷한 점이 많고, 구상나무 씨를 심으면 분비나무가 다수 나온다. 유전 다양성이 낮고 유전자 소실 위험성도 높아 구상나무의 보존에 보다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구상나무는 열매의 색깔에 따라 푸른구상, 붉은구상, 검은구상나무 이렇게 3품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구상나무는 키 20미터, 줄기둘레가 한 아름이 넘게 자랄 수 있으며 줄기도 곧바르다. 전나무와 마찬가지로 좋은 재질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쓰임이 있으나 벨 수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다. 한때 남한의 높은 산에는 구상나무가 숲을 이루어 자라고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지리산이었는데, 1960년대 말 지리산에 제재소까지 차려 놓고 굵은 구상나무를 도벌한 사건은 우리나라 산림 파괴의 잊지 못할 사례로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구상나무는 어릴 때부터 원뿔형의 아름다운 수관을 갖고 있으며, 잎이 부드럽고 향기까지 갖고 있어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다. 우리나라 구상나무는 프랑스 신부인 타케(Emile Joseph Taquet, 1873~1952)와 포리(Urbain Faurie, 1847~1915) 등이 1900년대 초에 전국에 걸쳐 수많은 식물을 채집하여 유럽과 미국에 보낼 때 함께 시집갔다. 이들이 보낸 식물들은 오늘날 종자 전쟁이라고 할 만큼 각국이 자기 나라 식물의 종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에서 본다면, 곱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 건너간 구상나무는 계속 품종개발이 되어 ‘명품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하고 있다.

 

[출처] 박상진 교수의 우리나무의 세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