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산책] 일산 호수공원 봄꽃, 진달래 제비꽃 서양민들레 양지꽃 복수초 나팔수선화 (2020.04.03)

푸레택 2020. 4. 3. 20:18

 

 

 

 

 

 

 

 

 

 

 

 

 

 

 

 

 

 

 

 

♤ 일산 호수공원 봄꽃

진달래, 제비꽃, 서양민들레, 양지꽃, 복수초, 나팔수선화, 능수버들, 백목련, 왕벚나무

 

● [인문학의 뜰] 어린 마음에도 나무를 심어주고 싶어요

 

수목원 찾은 학생들의 발랄함 보면 행복감 느껴

아이들이 최소한 한해에 한가지 식물이라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 필요

사람과는 또 다른 친구 생겨나

 

봄 햇살이 참으로 부드럽고 따사롭다. 나무 아래 복수초(福壽草)가 반질반질 윤기 나는 샛노란 햇빛을 받으며 활짝 폈다. 이름 그대로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복 받으며 살라고 말하는 듯 느껴져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보고 있는 마음이 참 행복하다. 이쯤 되면 몸이 들썩들썩한다. 양지바른 숲가에 올망졸망 피는 현호색, 땀 흘리며 오른 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얼레지와 꿩의바람꽃 무리, 물이 올라 생기가 돌기 시작한 나무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지금도 가장 많은 풀과 나무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봄 햇살을 따라 내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부쩍 많아졌다. 병아리떼처럼 아장아장 꽃에 다가서는 사랑스러운 아이들부터 천천히 숲을 거닐며 맑은 기운을 즐기는 어르신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족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수목원을 찾는다. 그중 대부분 사람들의 얼굴이 활짝 핀 것을 보면 숲이, 숲의 나무와 풀들이, 이들을 둘러싼 대기의 청량함이 분명 모든 이에게 넉넉함이고 행복이리라.

 

그런데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 가장 궁금한 이들이 있는데 바로 학생들이다. 평일에 자연학습의 일환으로 수목원을 찾은 학생들은 무척 동적이다. 목소리가 높고 움직임은 부산하다. 그래도 친구들과 자연으로 나와 비교적 자유롭게 보내는 그 자체가 의미 있기도 하고 때론 그 발랄함이 부럽기도 하다. 요즘엔 찾고 기록할 것이 있는지 열심히 돌아다니고, 살펴보고, 노트에 적기도 한다. 그들에게 이 나무와 풀들은 어떤 존재일까? 그냥 학습의 대상일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도 좋은 존재일까?

 

모든 식물학자들은 그 연구대상인 풀과 나무들이 매우 소중하겠지만, 모든 식물학자가 이들을 보며 설레고, 그리운 첫사랑처럼 애틋한 존재이지는 않은 듯하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산을 올라도 별도로 찾아야 하는 식물이 있었고, 실험과 조사를 해서 결과보고서를 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으니까.

 

식물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킨 것은 오래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가지’>란 책을 쓰면서다. 100가지 나무에 대해 하나씩 써 내려가면서 때론 하루, 때론 한달을 온전하게 그 나무들과 사유의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의 끝에 다다르니 숲에 가든, 가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든 나무들은 계절마다 온 마음을 차지하고 때론 위로로, 영감으로, 지혜로, 지식으로 살아 움직이며 인생의 가장 큰 친구로 다가왔다.

 

아이들에게도 나무친구를 만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이 도감을 만들면서, 학교 정원을 생각하며 교과서에 나오는 식물들을 분석해본 일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식물들이 등장했고 귀한 지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글자로 익힌 식물들을, 아이들은 숲에서도 알아볼까? 혹시 이름을 맞히더라도 그것이 마음을 움직이는 살아 있는 생명으로 작동할까? 예상되는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 일일까?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최소한 한 해에 한가지의 식물이라도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 만나고 탐구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충분한 사유의 시간 말이다. 꼭 식물이 아니고 곤충이나 버섯이어도 좋겠다. 그 생명들은 일단 마음속에 담기면 변심하는 사람이나 세상과 다른, 언제나 손 내밀면 그 자리에서 평생의 친구가 돼줄 것이다.

 

교육과정 바꾸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한참 걸릴텐데 우선 어떤 일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멈추고 서서 바라보기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다채로운 빛깔로 찾아드는 봄의 숲을 바라보거나 산길에 멈춰 서서 또는 쪼그리고 앉아 은방울꽃·남산제비꽃의 맑은 향기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손톱만 한 새잎 사이에서 이상한 은행나무의 꽃들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그 초록 세상이 마음속에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국립수목원장(산림청 개청 47년 이래 첫 여성 고위공무원) ▲저서 <우리 나무 백가지> <한국의 야생화>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내 마음의 나무 여행> 등 다수

 

☆ 2020.04.03 편집..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