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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기] 「원형의 전설」 장용학 (2019.11.08)

푸레택 2019. 11. 8. 21:58

 

 

 

● 원형의 전설 / 장용학

 

제 1장

이것은 세계가 자유와 평등, 이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던 시절, 조선이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에 있은 한 사생아(私生兒)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동양에 있는 나라였고 '자유'와 '평등'은 서양에서 생긴 물결이었습니다. 이 자유와 평등이 핵전쟁(核戰爭)을 일으켜 결국 인류전사(人類前史)에 종언(終焉)을 고하게 하는데, 6· 25동란이라고 하는 그 전초전과 같은 전쟁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 조선이라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족보를 따지면 르네상스를 어머니로 하는 프랑스 혁명이 낳은 남매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이 어찌하여 생면부지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이라는 엉뚱한 나라에 가서 충돌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세계사라고 할 수 있는 서양사의 흐름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중략)

 

핵전쟁이 분비해 낸 방사능이 빙하시대처럼 세계를 휩쓴 다음, 동굴이 꺼진 자리에서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솟아났습니다. 꽃이 피었다 지니 그 가지에는 몇 알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오랜 옛날의 일이어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전설에 의하면 우리가 즐기는 복숭아는 그 가지에 맺혔던 열매의 씨가 사방에 흩어져서 번식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벼락으로 태어났다가 벼락으로 죽은 이 사생아의 이야기는 '원형의 전설'이라기보다 '복숭아의 유래기(由來記)'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보는 사람의 취미 나름일 것입니다.

/ 『원형의 전설』, 사상계사, 1962

 

☆ 장용학(1921~1999) 소설가, 함북 부령에서 출생, 경성공립중학 졸업, 와세다대학 상과 중퇴

대표작: 사화산|무영탑|기상도|부활미수|비인탄생|원형의 전설

민족수난, 인간의 비인간화 과정등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극복을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요한 시집>이 있다.

 

● 알레고리적 상상력의 의미 / 방민호(문학평론가)

 

1 1950년대와 장용학

 

장용학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그 시대 문학사 속에서 매우 문제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말이 된다. 그의 소설이 갖는 문제적 성격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하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는 1921년생이며 함북 회령 출생이다. 이 시기와 장소는 각각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1921년에 주목해 보자. 이 시기에 태어났다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과 함께 세계관 형성이 이루어지는 청소년기를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냈으며, 동시에 이 땅에 일제에 대한 저항적 흐름이 일시 정지되다시피한 시기, 즉 암흑기에 학교를 다녔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은 1950년대의 세대론적 논의들이 보여 주듯이 재앙으로서의 현실인식 및 조국과 민족에 대한 관념의 부재를 낳을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장용학은 1940년에 경성공립중학을 졸업하고 1942년에 와세다 대학 상과에 입학하며 1944년에 학병으로 대한다. 그의 성장과정은 1920년을 전후하여 태어나 주체성이 거세된 1930년대 말 이후의 식민지 속에서 지식인 유형의 작가가 형성되는 중요한 예를 보여 준다. 이러한 작가가 앞서 지적한 두 가지 정신적 심연, 즉 종말론적 세계인식과 보편으로서의 세계사관에 빠질 수 있음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전쟁이 장용학의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였을 것임은 물론이다. 한국전쟁은 제3차대전적인 것이자 한국을 서방세계에 전면적으로 노출시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가 함북 회령 출신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는 그가 월남작가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전후작가 중 상당수가 월남작가군을 구성하고 있음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작가들의 월남은 대체로 이념 및 체제 선택의 결과인 경우와 그 밖의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장용학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는 문학을 하기 위해 해방 다음해 서울에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월남 동기는 그의 문학이 갖는 형이상학적이고 철학 편향적인 경향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이후 그가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사이에 두고 기성 문단과 거세게 대립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문학을 위해 고향을 등졌으며 이후 분단 때문에 뜻하지 않은 유랑민이 되어 문학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은 자에게 문단 발표의 기회가 제약된다는 것은 커다란 위기감과 반발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용학을 이해함에 있어 통상적인 세대론적 관점 외에도 개인사적인 관점에서의 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한편 장용학이 문제적인 작가라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작품이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 그는 손창섭과 자주 대조되곤 한다. 즉 손창섭이 당대 현실에 대한 일정한 천착을 보여주고 있다면 장용학은 추상적인 역사인식의 제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타당한 지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가 장용학 소설에 대한 생산적인 결론을 제시혜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는 그의 작품의 본질에 대한 천착을 결여한 채 리얼리즘적인 관점이나 소설학 개론적인 관점을 무리하게 적용하려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장용학 소설을 극히 난해하면서도 주제를 전달하는 데는 실패한 작품들로 보는 데서 벗어나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원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작품이 갖는 문학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용학 소설의 독특한 구성원리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알레고리적 창작방법이라 규정할 수 있는 이 원리는 장용학의 세계관과 그의 구체적 작품들을 연결하는 매개물이다.이 점에서 보면 그의 작품은 그 미학적 파편화현상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 구성원리 속에는 장용학 소설이 1950년대라는 특수한 시기와 본질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기도 한 때문이다. 알레고리적 창작방법은 왜 그가 문제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접근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글쓰기의 기원들

 

무엇이 장용학의 특이한 알레고리적 소설들을 가능케 했던 것인가를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접근방법은 그의 글쓰기의 기원을 추적해 보는 일이다. 즉 그가 무엇을 읽었으며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선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독서 경험은 크게 일본 작가들의 소설과 서구 작가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와 사르트르의 작품들로 입축할 수 있다. 여기서 일본 작가란 자연주의적 이고 사소설적인 계열에 속하는 작가들을 말한다.

 

(중략)

 

작가의 주제의식이 집대성되어 나타난 「원형의 전설」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더욱 심각화되어 나타난다. 이 작품은 주인공 이장의 이념적 편력에 뒤얽힌 근친상간들, 그리고 종말의식적인 기독교적 상상력이 결합된, 매우 다층적인 의미의 알레고리 소설이다. 이들 세 주요 모티프의 의미는 상보적으로 기능하면서 장용학의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매개역할을 한다. 오택부와 오기미의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사

생아인 주인공 이장은 이러한 비도덕적 행위를 단죄하기 위해 스스로 오택부의 배다른 딸인 지야와 근친상간을 시도한다. 이 근친상간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근대 세계의 쌍생아인 자유와 평등,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적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유이자 그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띤다. 이장의 이념적 편력의 줄거리를 따라 두 근친상간 모티프가 얽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다시 세계의 종말과 원죄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적 상상력에 의해 감싸여 있다. 현대 세계가 끝났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있는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작품이 전달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든가, 작품 곳곳에서 안지야가 호산나 및 이브의 이미지와 병치되는 형국을 빚고 있다든가, 작품의 처음에서 끝까지가 신의 의지에 의해 창조되고 다시 종국을 맞는, 따라서 역사순환론적인 세계의 형상을 닮아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결말은 앞에서 지적했듯 비극적이다. 이장과 안지야는 오택부와 오기미로 상징되는 메커니즘화된 이념적 현실을 초월해 버리는 순간 더 이상 현실 세계속에 존재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비록 알레고리적인 방식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현실 세계의 논리를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으로 초월하는 행위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형의 전설」은 장용학의 일관된 주제의식인 현대세계의 초극과 구원의식이 가장 복합적인 알레고리로 제시된 것이자 그 한계가 작품의 구조 속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작품인 것이다.

 

4 그 소설사적 의미

 

장용학 소설은 근대문학사적 전통과 단절된 채 1950년대 들어 새롭게 출발하게 되는 모더니즘 소설의 한 전형적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50년대의 모더니스트들에게 알려진 과거의 작가들로는 거의 이상 밖에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비평가 이어령조차 이상만을 평가하고 있었던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 신세대 모더니스트는

과거와는 단절된 채 한국전쟁을 계기로 몰려 들어오는 서구사상, 특히 실존주의와 아방가르드적 문학사상의 세례를 받으며 현실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비판을 시도했던 것이다.

 

장용학은 이러한 시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특히 그가 알레고리를 주요한 장식방법으로 채택했다는 점은 그것이 의식적인 것이었던가에 대한 판단과는 관계 없이 그가 얼마나 1950년대적인 혹은 전후적인 사유구조에 가까웠던가를 확인해 주는 사실이 될 것이다. 알레고리적 창작방법은 1950년대를 풍미했던 실존주의의 인식론인 현상학적 사유와 필연적인 상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학적 사유의, 궁극적으로는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세계인식방법은 알레고리가 전제로 하는 보편화한 관념을 주조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다. 이러한 상관성은 카프카나 사르트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자들의 작품이 알레고리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입증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장용학의 소설은 1950년대를 풍미했던 실존주의적이고 현상학적인 사유의 필연적인 문학적 대응물인 것이다.

 

그러나 장용학이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동시에 그가 전후 모더니즘 소설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손창섭이나 김성한과 같은 소설가들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장용학 또한 1960년대를 지나면서 소설 창의 원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물론 이후에도 의미 있는 작품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의미는 그의 소설의 변모를 보여 준다는 것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보다 장용학 소설의 전망이, 실은 1950년대의 모더니즘적 세계관과 사유방식에 거의 철저히 갇혀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종말론적 세계인식과 그에 바탕한 구원의식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자신의 발길을 멈추지 않았고 현대세계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히 영웅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장용학의 세계관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폐허와 죽음으로 점철된 세계에 대한 견딜 수 없음, 과거와 구세대에 대한 극도의 불신, 이러한 세계로부터 철저히 초월해 버리고 싶은 열망은 극히 알레고리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그의 작품들을 낳았지만 그 실효성은 1950년대적 전망에 갇혀 버린 것이었으며, 그조차도 이장의 죽음에서 엿볼 수 있듯 현실과 대적하기에는 힘겨운 것이었다. 「원형의 전설」에서의 이장의 비극은 전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장용학적 전망의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