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병원 의학박물관, 대한의원, 제중원, 지석영 선생상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한의원 본관(사적 제248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원은 1907년 고종황제의 칙명으로 설립된 대한제국의 국립병원입니다. 1885년에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의 맥을 잇고 있으며, 오늘날 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의학박물관은 대한의원 개원 칙서 등 우리나라 근·현대의료와 서울대학교병원의 역사가 담겨있는 다양한 유물과 도서, 문서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전시·교육·조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주사기 이야기
주사기는 병원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의료 기구입니다. 누구나 주사기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리 친근한 기억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교실에서 예방 접종을 받으려고 줄 서서 기다릴 때의 긴장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감기로 집 근처 병원에 갔을 때, 주사 한대 맞고 가라는 의사선생님이 순간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꼭 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꼭 필요한 주사기입니다. 주사로 몸 안에 약물을 직접 투입하는 방법은 약을 피부에 바르거나 입으로 먹는 방법보다 몸에 흡수되어 작용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9세기에 속이 빈 바늘이 개발되면서 주사기가 등장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사의 발명과 발전의 역사를 다룹니다. 다양한 주사기와 주사방법을 소개하고, 우리사회에서 주사기에 관하여 얽힌 이야기들도 살펴보겠습니다.
● 주사의 종류
* 근육주사: 팔이나 엉덩이 등 근육조직 내에 주사한다. 흡수가 빠르나 한번에 주입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다. 피하조직을 자극하는 약제나 현탁액 등을 근육 내에 주사한다.
* 피하 주사: 피부 안쪽의 피하 조직에 주사한다. 흡수가 빠르다. 윗팔 또는 허벅지에 주사한다. 반응 검사, 인슐린, 항응고제, 강심제 등의 주사 방식이다.
* 정맥주사: 정맥 내에 직접 약을 투여하는 주사이다. 보통 팔꿈치 안쪽의 정맥에 놓는다. 약의 작용이 신속하다. 보통 수액을 공급할 때의 주사 방식이다.
* 피내주사: 피부 표면 바로 아래, 진피층에 주사한다. 주로 팔 쪽에 주사한다. 흡수는 느린 편이며, 주사 후 반응
을 눈으로 볼 수 있다.투베르쿨린 반응 검사, 알러지 반응 검사를 예로 들 수 있다.
수혈은 외상이나 수술로 많은 피를 잃었거나 백혈병, 혈우병 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의 혈액을 받는 치료입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동물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는 등 여러 실험이 시도되었습니다. 일부 성공한 사례가 있기도 했지만, 수혈받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일이 연속되어서 수혈은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실험실에서 수혈 연구는 계속 이루어졌으며, 1901년 미국의 의학자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가 혈액을 A, B, 0형으로 분류하면서 안전한 수혈이 가능하게 됩니다.
● 통증과 마취
통증은 아프지만 우리 몸에 필요한 반응입니다. 통증이 없다면 위험한 상황에 이르러서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게 되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신경은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여 뇌로 신호를 보내어 몸이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바늘에 찔리거나, 넘어지는 등 위험 상황이 오면, 상처를 입은 부위의 손상된 세포는 화학 물질을 분비하여 면역 반응과 통증 반응을 유도합니다.
마취(Anesthesia)란 1세기 경 그리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감각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수술처럼 통증이 있는 시술을 하기 전에 약물 등을 사용하여 환자가 감각을 느끼지 못하거나 의식이 소실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진통, 마비, 기억 상실, 의식 소실 등을 마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취의 범위에 따라서 전신마취, 부위마취, 단순 진정, 국소마취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19세기 서양 의학에서의 마취
마취 가스는 화학자와 치과 의사들이 발견하였습니다. 1799년 영국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ey Davy. 1778~1829)가 아산화질소(N,O)를 발견하였는데, 이 가스를 흡입하면 몽롱한 상태가 되고 얼굴이 웃는 표정이 된다고 하여 웃음가스(laughing gas)라는 별칭이 붙여졌습니다. 이후 아산화질소의 통증 완화 효과를 관찰한 미국의 치과 의사 호레스 웰스(Horace Wells, 1815~1848)가 이를 치과 치료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산화질소 마취를 대중에게 시연하였으나 적절한 마취량을 얻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이후 웰스의 친구인 미국의 치과 의사 윌리엄 모튼(William Morton, 1819~1868)은 웰스의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1846년 10월 보스턴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여러 의사들 앞에서 마취 시연을 했습니다.
모튼은 에테르(Ether)를 이용한 마취를, 외과 의사 존 워런(John Warren, 1753~1815)은 환자의 목 종양 제거 수술을 맡았으며, 성공했습니다. 마취가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1847년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James Simpson, 1811~1870)은 출산의 고통을 덜고자 산모들에게도 마취를 시행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많은 반대에 부딪쳐야 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출산의 고통은 자연적으로 감내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무통 분만을 둘러싼 논쟁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1853년 클로로포름(Chioroform) 마취 후 성공적으로 8번째 아이를 분만하자 수그러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