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 김정한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끝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눈을 뜨면 인터넷으로 메일도 확인하고 아직 잉크냄새가
진하게 베어 있는 새벽 신문부터 세금고지서,
사랑하는 사람 미운 사람과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이 기쁨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기다림은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아마 그것은 신(神)이 내린 아름다운 선물일 수도 있고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일 수도 있다.
죽기 전까지 계속되는 기다림이다.
가진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똑같이 부여한 선물이다.
때론 짧은 기다림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고,
때론 긴 기다림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다림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 모두가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기다림은 계속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울고 웃는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쇼핑을 하며 기뻐하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으면 불편해서 짜증이 난다.
그 역시 기다림에서 오는 기다림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일 뿐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기다림을 만나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기다림과 여행을 하는 것이다.
●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 조병화
쓸쓸합니다.
쓸쓸하다 한들 당신은 너무나 먼
하늘 아래 있습니다.
인생이 기쁨보다는 쓸쓸한 것이 더 많고
즐거움보다는 외로운 것이 더 많고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많고
마음대로 되는 일 보다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행복한 일보다는 적적한 일이 더 많은 것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땐 한정없이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이러한 것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라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당신이 그립습니다.
참아야 하겠지요.
견디어야 하겠지요.
참고 견디는 것이 인생의 길이겠지요.
이렇게 칠십이 넘도록 내가 아직 해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고독'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는 그 순수한 고독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제일로 무서운 병은 고독입니다.
그 고독 때문에 생겨나는 '그리움'입니다.
'고독과 그리움'
그 강한 열병(熱病)으로 지금 나는 이렇게 당신을
앓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앓고 있는 '고독과 그리움'이
얼마나 많은 작품(作品)으로 치료되어 왔는지 당신은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 그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그리움'
그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고독과 그리운 사연'을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세월 모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당신에 대한
내 이 열병 치료는
오로지 '고독과 그리움'을 담아 보내는
이 나의 말들이옵니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생겨나는 이 쓸쓸함, 이 고통이
나의 이 가난한 말로써 먼 당신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만분지 일이라도.
어지럽게 했습니다.
난필(亂筆)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많이 늙었습니다.
미안합니다.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해도 다 허상(虛像)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