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 고향 학교 군대 교단

[전우] 군대 생활과 이명 이야기 (2019.02.15) - 양구 동면 원당리 833포병대대 1978년 전우들을 그리며

푸레택 2019. 2. 15. 11:52

 

 

 

 

 

 

 

 

 

 

 

@ 군대 생활과 이명(耳鳴) 이야기

 

 

 

군대에 입대하기 몇 년 전 입시 스트레스 때문인지 이명(耳鳴)이 찾아왔다. 오른 쪽 귀에서 하루종일 '윙윙'하는 매미 소리가 들린다. 학업과 일로 분주한 낮 시간이나 주위가 시끄러울 때에는 그런대로 잊고 지내지만 조용한 밤이 되면 윙윙거리는 소리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신경은 쇠약해져만 갔다. 귀를 틀어막아도 들려오는 윙윙거리는 소리에 잠이 오지 않고, 잠을 못 자니 몸은 계속 삐쩍삐쩍 말라 들어갔다. 이명(耳鳴)은 소음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고막이나 청소골, 달팽이관의 청신경이 손상되어 발병하는데 마땅한 치료 방법도 없고 평생 그러려니 하고 달고 살아가야 하고 그 소리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는 난치병이라고 한다.

 

 

 

군 입대를 앞두고 체중이 45kg이었다. 징병 신체검사에서 '2을종' 판정을 받았다. 이듬해 현역 입영 영장이 날아왔고 안동에 있는 36사단에 입대를 했다. 그곳 신병 교육대에서 제식훈련, 총검술, 각개전투, 사격, 행군 등 6주간 군사 훈련을 받을 때 체력이 따라가지 못해 비실비실 힘에 부쳐 고생고생했다.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용케도 그 힘든 훈련을 모두 견뎌냈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우리 중대 훈련병들은 내무반 건물 뒤쪽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이등병 계급장을 모자에 달았다. 계급도 없이 그저 '몇 번 훈련병'으로 불리던 우리들은 모처럼 활짝 웃으며 서로를 '김 이병', '박 이병'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러고는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5주간 탄약 관리병(440) 후반기 주특기 교육을 받았다. 주특기 교육을 무사히 마친 우리 29차 동기들은 부산역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춘천으로 향하는 군용 열차를 탔다. 춘천에 있는 102보충대에서 며칠 머물다가 따블백을 하나씩 맨 우리들은 소양호에서 군용 수송선을 탔고 양구 선착장에서 내렸다. 다시 군용 트럭으로 갈아탄 후 낯설고 물도 선 양구 땅 원당리 833포병대대로 향했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군복을 파고들었다.

 

 

 

자대 배치된 며칠 후 어리바리한 신병인 나는 본부포대 군수과 서무계 조수 보직을 받았다. 탄약관리 주특기 교육을 받았기에 탄약고가 있는 병기과로 배치되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군수과 일을 맡게 된 것이다. 군수과에는 서무계, 일종계, 부식계, 공병계, 이사종계 등의 직책이 있다. 서무계는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문서를 기안하고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고 그밖의 잡다한 행정적 군수과 일들을 처리하는 직책이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지만 신경 써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이 늘 산적해 있었다. 차트를 만들고 잡무를 처리하느라 때론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고 때론 아침도 굶었다.

 

 

 

사역을 나갈 때가 차라리 맘이 편했다. 대암산에 올라가서 싸리나무도 한아름 꺾어오고, 연병장 주변에 수북이 자란 쇠비름과 방동사니 잡초도 뽑아내고, 식당 사역에 동원되어 배추를 다듬어 커다란 탱크에 김장을 담그는 일도 했다. 양구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다. 밤새도록 내려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우고 또 치운다. 때때로 대암산에 올라 군사 교육도 받고 파로호로 동계 훈련도 나갔다. 21사단 유격장에서 유격 훈련도 받았다. 하루가 저물고 저녁 점호가 끝나면 초소로 보초를 서러 나간다. 졸음과 싸우며 2시간 동안 보초를 선다. 양구에는 겨울이 일찍 찾아온다. 한겨울 체감온도 영하 30도, 취사장 옆을 흐르는 계곡물도 얼고 병사들의 손도 발도 마음도 다 얼어붙는다.

 

 

 

낮에는 업무에 시달리고 밤에는 보초를 2시간씩 서다보니 늘 잠이 부족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것은 군대에 가기 전엔 이명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는데 춥고 배고프고 힘에 부치고 늘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섧디 서러운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은 내가 이명(耳鳴)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지냈다는 것이다. 보초를 서고 오면 골아떨어져 꿀잠을 잤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세 번 보내고 대암산에 여전히 잔설이 남아있던 3월 어느 날, 나는 그곳에 내 청춘을 남겨두고 홀연히 부대를 떠나왔다.

 

 

 

이명 증상이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지만 전역 후 이명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일은 없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현역병으로 군대에 다녀온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어떻게 군대 생활을 통해 이명 증상이 완화되었는지는 나 자신도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군대에서 세상 고뇌 잊고 단순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 덕분인지 아니면 적절한 긴장과 바쁜 생활 때문에 나의 뇌가 이명에 적응한 것인지. 그런데 내 경우와는 달리 오히려 군대 생활할 때 이명이 생겨 고통을 호소하는 전우들이 꽤 많다. 내가 근무했던 포병대대에서도 포사격할 때 그 엄청난 소음에 노출되어 이명(耳鳴)으로 고생하던 전우들이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외부로부터 청각적인 자극이 없는데도 귀와 머리 속에서 원인 모를 소리가 느껴지는 자각적 증상, 이명(耳鳴). 남들은 전혀 들리지도 느끼지도 못하는데 내게만 들려오는 괴로운 소리, 그 소리는 더이상 공기의 진동이 아니다. 그것은 뇌를 갉아먹는 벌레다. 지금도 조용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귀에서 윙윙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행히 이명이 청력 저하나 난청으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명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벗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의 왕 가운데 한평생 신권(臣權)의 도전을 받으며 왕위를 뺏길까 봐 노심초사했던 왕들인 선조, 인조, 효종, 영조가 유독 이명(耳鳴)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왕들도 이명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잤다니 예나 지금이나 이명은 난치의 병임에 틀림없다. 밤에 단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깨닫는다. 요즈음 나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밤엔 잠을 잘 잔다. 이것이 내게는 작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행복이다. 나의 소확행(小確幸)이다. 오늘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 이명의 고통으로 잠을 설칠 것이다. 암이나 희귀병 치료 연구와 더불어 이명 치료법도 하루빨리 개발되어 이명(耳鳴)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밤에 단잠을 잘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

 

/ 김영택(2019.02.15)

 

 

 

 

 

 

 

 

 

 

 

 

 

 

 

 

 

 

 

 

 

 

 

 

 

 

 

 

 

 

 

 

 

 

 

 

 

 

 

 

 

 

 

 

 

 

 

 

 

 

 

 

 

 

 

 

 

 

 

 

 

 

 

 

 

 

△ 2018년 5월 12일 833포병대대 부대 방문. 카페지기 전우, 박수천 전우, 신현탁 군수과장님, 나(김영택)

 

 

 

추록(追錄)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다시 다듬어 보았다.
글은 늘 쓰기도 힘들지만 써 놓고
블로그에 올리기가 더 부담스럽다.
부족한 글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읽고 희망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내 글은 소임(所任)을 다한 것이리라.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눈다운 눈이 내렸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나이들수록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가 힘들다.
호흡기가 좋지 않은 내게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그래도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雪景)은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