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강석기의 과학카페] 우리 몸은 왜 향기 분자를 만들까

푸레택 2022. 7. 28. 14:05

[강석기의 과학카페]우리 몸은 왜 향기 분자를 만들까 (daum.net)

 

[강석기의 과학카페]우리 몸은 왜 향기 분자를 만들까

2년 넘게 끌던 코로나19 사태도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가을쯤 병원성이 만만치 않은 변이형이 등장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몇 달이라도 마스크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코로

news.v.daum.net

음식은 체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면 아스파라거스산이 대사되면서 만들어지는 휘발성 황화합물이 소변에 포함돼 특유의 냄새가 난다. ‘네이처 유전학’ 제공

2년 넘게 끌던 코로나19 사태도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가을쯤 병원성이 만만치 않은 변이형이 등장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몇 달이라도 마스크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코로나를 겪으며 관심이 가는 대상도 많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감각의 경우 촉각은 잊혔지만(이제 악수도 어색하다) 후각은 뜨고 있다. 코로나19의 대표적인 증상이 후각 상실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촉발된 관심은 마스크 착용으로 깨닫게 된 입 냄새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날숨으로 코로나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장비가 미 식품의약국의 긴급 승인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현상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나만의 향수’를 원하는 소비자를 위한 니치향수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초 냄새가 관련해 뜻밖의 연구 결과를 접했다. 인체 세포에서 향기 성분을 만든다는 내용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몸에서 나는 냄새는 십중팔구 악취일 것이고 나머지도 아세톤처럼 들쩍지근한 정도이지 향기까지는 아닐 텐데 말이다. 참고로 당뇨병 환자는 세포가 포도당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대신 지방을 연료로 쓰는 과정에서 분해 산물인 아세톤이 많이 만들어지고 휘발돼 날숨에서 느껴진다.

날숨 진단 장비가 승인을 받았다는 뉴스에 앞의 연구가 떠올라 우리 몸에서 나오는 휘발성 성분에 대해 궁금증이 켜졌다. 인터넷에서 관련 논문을 찾아 읽어보다 깜짝 놀랐다. 우리 몸에서 나오는 휘발성 분자가 무려 2000가지가 넘는다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 극미량이라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없을 뿐이다.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휘발성 분자는 20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극미량이라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휘발성 분자의 구조로 오른쪽 끝에 배치한 알데하이드류는 지방산이 과산화할 때 생긴다. 탄소원자 8개로 이뤄진 알데하이드가 옥타날(octanal)로 귤껍질 향이 연상된다. ‘세포·감염미생물학의 경계’ 제공

○ 2000가지 휘발 성분 나와

몸에 존재하는 휘발성 분자의 기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음식물의 성분이 대사되지 못하고 몸 밖으로 나오는 경우다. 대표적인 예가 술의 성분인 알코올(에탄올)로 음주 측정의 근거다.

다음으로 인체 거주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각종 휘발성 분자로, 우리가 걱정하는 체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입 냄새와 땀 냄새, 발 냄새는 구강이나 피부에 사는 미생물이 음식 찌꺼기나 피지(개기름)를 대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휘발성 분자가 주범이다. 똥 냄새 역시 대부분 장내미생물의 작품이다. 인체 거주 미생물의 조성이 달라지면 체취도 바뀐다.

끝으로 인체 세포가 대사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 휘발성 분자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오줌 냄새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에 따라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면 아스파라거스산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지는 휘발성 황화합물이 소변에 포함돼 특유의 냄새가 난다. 

그런데 몸에 이상이 생겨도 인체 세포가 특정 휘발성 분자를 많이 만들 수 있다. 대사 네트워크가 교란돼 정상적인 경로가 진행되지 못하거나 산화스트레스가 심해져 특정 화합물 농도가 높아져 관련 대사산물이 많아진 결과다. 앞서 날숨의 아세톤 냄새도 이런 경우다.

가장 유명한 예가 생선냄새증후군으로 생선을 먹거나 만지지도 않았는데 몸에서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증상이다. 이는 고약한 생선 비린내가 나는 분자인 트리메틸아민(TMA)이 몸에 쌓이면서 땀과 날숨, 오줌에 섞여 몸 밖으로 나온 결과다. TMA은 음식에 들어있는 콜린 같은 질소화합물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분자로, 평소에는 TMAO라는 냄새가 없는 분자로 바뀌어 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촉매하는 효소인 FMO3 유전자의 변이형을 지니고 있거나 어떤 이유에서 FMO3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으면 TMA 수치가 올라가 체취로 느껴지는 것이다.

○  향기의 향기롭지 못한 이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바이러스가 휘발성 분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감염된 세포의 대사 네트워크가 교란돼 특정 물질을 더 만들거나 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환자의 날숨 분석 논문이 꽤 많고 내세우는 성분이 저마다 다르지만 몇몇 분자는 겹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옥타날이다. 최근 승인을 받은 진단 장비는 날숨에서 이런 성분들의 절대량과 상대량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코로나19 환자의 날숨에서 농도가 올라가는 성분인 옥타날이 바로 내가 얼마 전 한 논문을 읽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향기 성분이다. 감귤류 껍질이 연상되는 향이 나는 옥타날은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의 향기 성분으로 널리 쓰이는 원료다. 코로나19 환자의 날숨에서 옥타날이 검출된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내가 읽은 논문에서는 옥타날이 동맥경화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내용이라 더 황당했다. 

뜻밖에도 우리 세포가 옥타날을 만든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포가 산화스트레스를 받으면 지방산 분자가 과산화되면서 쪼개져 옥타날이 만들어진다. 인체에 침투한 바이러스와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세포도 엄청난 산화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므로 날숨의 옥타날 농도가 높아진다는 게 말이 된다.

그런데 지난 1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혈액에서 소위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부르는 저밀도 지단백질(LDL)이 산화하면서 옥타날이 만들어진다. 놀랍게도 이렇게 만들어진 옥타날이 혈관에 상주하는 면역세포인 대식세포 표면에 달라붙어 염증반응을 촉발하고 그 결과 대식세포의 작용으로 혈관 내벽에 플라크가 쌓이고 혈관이 굳어지는 동맥경화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다. 

흥미롭게도 혈관 대식세포 표면에는 비강의 후각세포에 있어야 할 냄새수용체 단백질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OLFR2로 바로 옥타날이 달라붙는 수용체다. 물론 혈관 대식세포가 옥타날 ‘냄새’를 맡아도 뇌의 후각피질로 정보를 보낼 수 없으므로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왜 혈관 대식세포 표면에 냄새수용체 OLFR2가 있고 지방산 산화스트레스의 산물인 옥타날이 달라붙었을 때 염증반응을 일으켜 플라크를 만들어 화를 자초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다만 대식세포의 OLFR2에 작용해 옥타날이 접근하지 못하게 작용하는 약물을 만든다면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의 30년 전 한 화장품 회사 연구소 향료팀에서 일할 때가 문득 떠오른다. 조향 연습으로 가장 먼저 하는 게 향수 ‘샤넬 넘버5’를 모방하는 처방을 짜는 일이다. 당시 갖고 있던 원료로는 진짜 향에 근접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뜻밖에도 샤넬 넘버5 느낌이 나는 향은 만들기 쉽다. 장미와 자스민 같은 꽃향기 성분과 나무와 무스크 향 성분으로 얼개를 짠 뒤 몇몇 알데하이드 성분을 소량 더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때 쓰는 알데하이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옥타날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향기 분자 옥타날의 이름을 코로나19 날숨 진단과 동맥경화 플라크 형성 메커니즘에서 마주하니 차마 반갑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독특한 향기(다만 농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오히려 역겹게 느껴진다)가 새삼 그립다. 여전히 향료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옛 동료에 부탁해 옥타날 견본을 하나 얻어야겠다.

향기 분자인 옥타날이 동맥경화로 이어지는 플라크 형성을 매개한다는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지방산이 산화돼 생긴 옥타날이 혈관 대식세포(vascular macrophage) 표면의 냄새수용체 OLFR2에 달라붙으면 일련의 염증반응이 활성화돼 동맥경화가 진행된다. 사이언스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