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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기분 좋은 터치의 비밀

푸레택 2022. 7. 28. 13:53

[강석기의 과학카페] 기분 좋은 터치의 비밀 (daum.net)

 

[강석기의 과학카페] 기분 좋은 터치의 비밀

3년 전 이맘때 마음고생을 엄청나게 한 적이 있다. 몸이 좀 이상해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종양 같으니 큰 병원에 가서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보라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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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원숭이 애착 실험’은 신체 접촉의 정서적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줬지만 훗날 동물 학대의 악명 높은 사례로 남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분리된 새끼 원숭이는 젖병이 있는 철사 대리모보다 젖병이 없는 천 대리모 쪽에 머물렀다. 위키피디아 제공

3년 전 이맘때 마음고생을 엄청나게 한 적이 있다. 몸이 좀 이상해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종양 같으니 큰 병원에 가서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보라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종류라 인터넷 검색으로 전문가가 있는 병원을 찾아 예약하다 보니 2주 뒤에나 찍을 수 있었다. 그 사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살이 쭉쭉 빠져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뼈만 남은 지경에 이르렀다.

검사일에 순서가 돼 CT 베드 위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간호사가 와서 조영제를 투여했다. 바로 몸이 후끈해질 거라는 설명대로 금방 신호가 와서 혈액순환 속도에 새삼 놀랐다. 만에 하나 있을 급성 알레르기 반응을 염려해서인지 간호사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 머물렀는데, 뜻밖에도 필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촬영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환자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조영제가 충분히 퍼져 사진을 찍을 때까지 필자의 손을 꼭 잡아준 간호사의 따뜻한 손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신체 접촉의 힘

신체 접촉의 정서적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슬픔이나 통증으로 괴로워할 때 누군가 옆에서 껴안아 주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고 실제 슬픔과 통증을 꽤 덜 수 있다. 코로나19로 2년 넘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특히 고통을 겪은 데도 신체 접촉 스킨십의 부재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신체 접촉의 심리적 효과는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 신호가 어떻게 뇌로 전달되는지는 잘 모른다. 

지난해 촉각(체감각) 연구자들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지만, 각각 온도·통증 지각과 압력 변화 촉각에 관여하는 수용체를 밝힌 업적이었다. 체감각 수용체가 피부에 오는 자극에 반응해 내보내는 신호는 일차구심성축삭이라는 신경섬유를 통해 척수에 이르고 이곳에 있는 신경세포(뉴런)가 정보를 받아 뇌의 감각피질로 전달한다. 

촉각은 정보를 처리하는 성격에 따라 분별 촉각과 정서 촉각으로 나뉜다. 접촉 자극의 실체를 파악하는 게 주목적인 분별 촉각은 Aβ섬유를 통해 빠르게 전달된다. 반면 정서 촉각은 C섬유를 통해 천천히 전달된다. 그런데 C섬유와 척수의 뉴런 사이에서 어떻게 정서 촉각 정보를 주고받는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생쥐가 신체 접촉을 좋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계한 행동실험이다. 일주일 동안 혼자 둔 뒤 다음 일주일 동안 매일 붓으로 쓰다듬어준다. 그 뒤 두 방을 제공하면 머무는 시간이 비슷하다. 한쪽에 있을 때만 붓으로 쓰다듬어준 뒤(8회 반복 학습) 머무는 시간을 비교하면 신체 접촉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사이언스 제공

○ 동물 행동 실험으로 증명

학술지 ‘사이언스’ 4월 29일자에는 ‘기분 좋은 촉감의 분자 및 신경 기초’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자들은 생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 기분 좋은 감정을 유발하는 촉각을 매개하는 물질과 여기에 반응하는 척수 뉴런의 수용체의 실체를 마침내 밝혀냈다.

정서 촉각 정보를 전달하는 C섬유는 피부 아래에서 시작해 척수의 층판Ⅱ에 있는 뉴런과 시냅스를 이룬다. 연구자들은 층판Ⅱ 뉴런 표면에 있는 수용체를 조사했고 이 가운데 기능을 모르는 PROKR2가 있는 뉴런에 주목했다. PROKR2는 프로키네티신2(PROK2)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인식하는 수용체(R)다. 실제 이 뉴런에 연결된 C섬유가 자극을 받으면 시냅스 말단에서 프로키네티신2를 내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정작 프로키네티신2의 기능도 모르는 상태였다.

연구자들은 정서 촉각을 전달하는데 프로키네티신2와 그 수용체가 관여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척수에서 PROKR2 뉴런을 없앤 생쥐와 프로키네티신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를 만들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한 행동 실험을 고안했다. 먼저 생쥐를 일주일 동안 혼자 놔둬 신체 접촉 부재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했다. 그 뒤 부드러운 털이 달린 붓으로 등을 쓰다듬어줬다. 이렇게 훈련을 시킨 뒤 행동 실험에 들어간다.

방을 둘로 나눈 뒤 한쪽에 머무르면 방치하고 다른 쪽에 있을 때는 붓으로 쓰다듬어준다. 이 경험을 8차례 반복한 뒤 일정 시간 동안 생쥐가 각각의 방에 머문 시간을 비교하면 신체 접촉을 좋아하는가 여부를 알 수 있다. 실제 신체 접촉이 부족했던 정상 생쥐는 이 조건에서 사람이 붓으로 문질러줬던 방에 더 오래 머물렀다. 신체 접촉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붓으로 쓰다듬은 뒤에는 심박수도 떨어졌다.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PROKR2 뉴런을 없앴거나 프로키네티신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는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1주일의 독거생활과 붓으로 쓰다듬을 받는 경험을 했음에도 실험에서는 두 방에 대해 선호도의 차이가 없었고 돌봄을 받을 때도 심박수에 변화가 없었다. 붓으로 쓰다듬을 때 분별 촉각은 제대로 작동해도(다른 실험으로 입증했다) 정서 촉각 정보는 뇌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PROKR2 뉴런을 없앤 생쥐(파란색 네모)는 정상 생쥐(회색 네모)에게 털 손질을 해주지 않고 자신도 정상 쥐 사이의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한편 프로키네티신2를 못 만드는 생쥐(주황색 네모)는 털 손질을 해주지 않을뿐 아니라 자신도 전혀 받지 못했다. 사이언스 제공

한편 PROKR2 뉴런을 없애거나 프로키네티신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를 정상 생쥐와 함께 두자 뜻밖의 행동이 나타났다. 보통 생쥐들은 틈틈이 서로 털 손질을 해주기 마련인데 이들은 전혀 그런 의사가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정상 생쥐 역시 이들에게 털 손질하는 것을 꺼려 그나마 PROKR2 뉴런을 없앤 생쥐에게는 절반의 시간을 들이지만 프로키네티신2를 못만드는 생쥐에게는 아예 해주지 않았다. 뭔가 불편함 또는 불쾌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몇몇 신경정신질환의 징조 가운데 하나가 신체 접촉 회피와 결핍이다. 실제 프로키네티신2를 못 만드는 생쥐는 스트레스와 불안 행동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무리에 낯선 생쥐를 집어넣어도 무관심했다. 녀석에게는 기존에 같이 지내던 생쥐들이나 새로 들어온 생쥐나 정서적으로 거리가 멀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오너 아들 또는 손자에 미남인 회사 고위 간부가 신체 접촉을 극도로 꺼릴 정도로 까다로운 성미로 혼자 지내다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마음이 따뜻한 신입 사원과 티격태격하다 눈이 맞아 둘이 연인이 되는 스토리인 한 드라마가 떠오른다. 어쩌면 이 남성은 프로키네티신2나 그 수용체 유전자가 변이형이라 정서 촉각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이 경우 애정이 식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물론 드라마를 재미없게 보는 방식이다.

논문을 읽다 보니 수년 전 화제가 됐던 ‘프리허그 운동’이 떠오른다. 극도의 개인주의로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삶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취지에서 시작돼 우리나라까지 퍼졌지만 당시에는 ‘참 유난스럽다’고 혀를 찼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무척 힘들 때 낯선 사람의 스킨십에서 큰 위로를 받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도 있듯이 앞으로 프리허그 운동이 재개되지는 않을 것 같다.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프리허그 운동은 2004년 호주 시드니에서 처음 시작됐다. ‘free hugs’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가 포옹을 원하는 사람(아무나)이 다가오면 안아주는 행위로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최근 과학은 고독한 현대인들이 신체 접촉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찾았다. 위키피디아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ㅣ동아사이언스 20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