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둘레길걷기] (1) 개화산 아늑한 수풀 속 풀꽃으로 피어난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며
◇ 일시: 2022.06.25(토) 11:00~14:30
◇ 장소: 개화산(開花山) 둘레길
◇ 오늘 산책 코스: 집 출발~마곡나루역(9호선)~개화역(종점)~신대마을~내촌마을~미타사~개화산 호국공원 ~호국충혼위령탑~신선바위~숲속쉼터~마을보호수~아라뱃길전망대~봉화산 봉수대~산악기상관측장비~탄소중립의 숲~봉화정~헬기장~개화산 전망대~약사사~개화근린공원~천문우주과학관(건립공사)~방화역(5호선)~마곡역~집 도착
오늘은 6.25전쟁인 일어난지 72년이 되는 해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기쁨은 잠시였고, 남북 분단에 이어 골육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났다. 그 때 태어난 아기는 백발 성성한 일흔 두살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직도 여전히 전쟁통에 헤어진 부모와 형제를 찾는 애끓는 가족들이 있다. 이 땅에 다시는 6.25전쟁과 같은 골육상잔의 비극은 없어야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가까운 개화산(開花山)을 찾아 둘레길을 걸었다. 마곡나루역에서 지하철 9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역을 지나 종점인 개화역에서 내렸다. 개화역에서 개화산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신대마을과 내촌마을이 나온다. 각양각색의 단독주택들, 어느 집엔 감나무에 감이 익어가고 어느 집엔 담쟁이덩굴이 담장을 기어오른다. 또 어느 집엔 능소화가 주황빛 아름다운 꽃을 피워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한적한 골목, 여름 풀꽃과 나무를 사진에 담으며 행복도 함께 마음에 담아 왔다.
내촌마을을 벗어나 언덕을 조금 오르면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개화산 미타사가 나타난다. 미타사는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고즈넉하고 단출하여 평온함과 한적함을 느끼게 하는 사찰이다. 미타사를 찾은 나이 지긋한 부부가 입상 석불에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곳은 6.25전쟁 때 육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격전지로, 김포공항을 사수하던 육군 천여 명이 전사한 아픔이 있는 곳이다. 미타사도 절의 크고 작은 모든 당우(堂宇)들이 전소되는 비운을 겪었고, 현재 건축물은 1970년대에 중창(重創)한 것이라고 한다.
미타사 바로 윗쪽에는 개화산 호국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호국공원은 개화산 전투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용사들이 잠든 곳이다. 70년 전 6.25전쟁 때 무명 용사 1,100명이 이곳 개화산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호국공원 중앙에는 꽃다운 나이에 조국을 위해 싸우다 숨져간 용사들을 추모하는 호국충혼위령탑(護國忠魂慰靈塔)이 우뚝 세워져 있다.
젊디 젊은 푸르른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와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용사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호국 영령들의 넋을 추모하는 묵념을 올렸다. 위령탑 뒷쪽에는 있는 전사자 명각비에는 김포 전투와 개화산 전투에서 산화한 1,100여 명의 전사자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강원도 삼척 김진철, 경기도 고양 신웅철, 인천 강의준 송석찬, 부여 조동각, 무주 임성봉, 군위 임말봉, 거제 김기곤, 제주 고지현 그리고 출신지 미상 김귀남 왕두철... 명각비에 새겨진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청춘들의 이름들을 불러본다. 더욱 내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곳을 찾은 한 어머니와 아들이 묵념을 올린다. 혹시 저 어머니의 할아버지 이름이 명각비에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무명 호국의 영혼 / 윤의섭
저 소나무의 푸른 기상이
그대를 닮았습니까?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초여름인데도
현충원 산소의 푸른 잔디는
이슬이 맺혔습니다
천둥소리 격전에 육신이 날아가고
비 궂은 하늘에
차마 날 수 없었던 영혼이여!
개마고원 구름에 가려
흙 속으로 떨어진 백골이여!
잡목에 덮였나요, 그대는 어디 계시고
이름은 어디에 두셨습니까?
어느 잡목 아래 뿌리를 의지하고
궂은 날이면 훌쩍훌쩍 운다는
무명의 호국 영령
누가 울어줘야 할지
어디를 쳐다보고 울어야 할지
60년이 넘도록 정부의 명부에만
매달려 있는 이름뿐인 영혼이여!
혼령은 어디 있고
백골은 어디 계시뇨?
개화산 호국충혼위령탑 옆에 호국충혼위령건립위원회가 세운 자그마한 비(碑)에는 호국의 영전에 바치는 가슴 아픈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호국의 영전(靈前)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던져 개화산의 나무가 되고 풀이 된 호국영령(護國英靈)이시여!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이 영령들의 몫이건만 무심한 세월 속에 호국충절(護國忠節)의 그 뜻을 제대로 기리지도 못하였나이다. 이제 개화산 아늑한 꽃수풀 속에 영령들을 위한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옵고 두 손 모아 머리를 숙이옵니다. 꽃다운 청춘, 뜨거운 육신이야 산화(散花)했을지언정 호국충절의 혼백이야 어이 흩어질 수 있으리오. 님이시여! 이제 영원의 세계, 자유롭고 평화로운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소서. 님들을 기리는 뜻, 여기 우뚝 세우니 안심입명(安心立命)하소서.” ㅡ 위령탑 건립 1994년 3월 호국충혼위령비 건립위원회
구전(口傳)에 따르면, 어느 날 미타사 주지였던 송강 스님의 꿈속에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군인들이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은 동네 원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곳에서 산화한 전진부대 장병들의 전몰 내력을 알게 되었고, 이를 군에 알려 육군 1사단의 현장 검증과 자료 조사 등을 통해 비로소 개화산 전투의 실체가 밝혀졌다고 한다. 뒤늦게 1994년 6월 28일 개화산 자락 미타사 인근에 호국충혼위령비가 세워졌고 이후 매년 6월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위령비 옆 비석에는 1,100여 명의 전사자 명단을 새겨놓았다.
해마다 유월이 오면 ‘6.25의 노래’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던가 4학년 때였던가. 담임 선생님은 첫 음악 시간에 ‘6.25의 노래’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를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웬일인지 선생님은 음악 시간 때마다 우리들에게 계속 ‘6.25의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그후 나도 모르게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려 땅을 치며 의분했던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그 시절 동네 아이들 모두 일년 열두달 ‘6.25의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다시는 이 땅에 꽃다운 청춘 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전쟁의 아픔과 고통, 슬픔을 잊지 말고 평화(平和)의 소중함을 늘 깨달아야겠다.
6.25전쟁 때 숨져간 영령들의 넋을 추모한 후 다시 산길을 오른다. 방원중학교 쪽에서 강서둘레길로 접어들었면 ‘하늘길전망대’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멀리 김포공항 쪽을 바라보면 착륙한 비행기들이 자그마한 장난감처럼 보인다. 지난 산행 땐 그길로 둘레길을 걸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의 삶도 우주의 수십억 년 긴 시간 속에서는 한 순간이듯, 우리의 고뇌와 번민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참으로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하늘길전망대를 들르지 않고 바로 신선바위 쪽으로 향했다. 옛날 옛적에 신선(神仙)들이 호랑이를 타고 와서 이곳 신선바위에 와서 쉬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선바위에서도 저멀리 김포비행장에 착륙해 있는 비행기가 점을 찍은 듯 보인다. 샛길로 접어들어 마을보호수(밤나무)를 잠시 둘러보았다. 다시 개화산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니 아라뱃길전망대가 나온다. 멀리 전호대교와 한강의 주변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개화산 곳곳에 생태연못을 조성하고 친수공원을 만드는 개화산 되살리기 공사가 끝나서 물이 흘러내려간다. 지하수를 활용하여 건천인 개화천을 사계절 실개천이 흐르는 산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이 졸졸 흘러 내려가니 개화산이 더욱 산 답고 정겨운 느낌이 든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개화산 봉수대와 봉화정을 찾았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원래 봉수대(烽燧臺)는 현재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인 개화산(128m) 정상에 있었다고 한다. 개화산 정상 조금 아래쪽에 봉수대 원형을 복원한 것이 아닌 모형물 두 개가 세워져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곳 개화산 봉수대에서 남산 봉수대 쪽으로 봉화로 적의 침입과 동태를 알렸다. 봉수대는 통신수단의 발달로 수명을 다해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폐지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산악기상관측장비가 세워져 있고, 개화산 군부대 훈련장 공원화 사업으로 만들어진 ‘탄소중립의 숲’이 있다. 봉화정에는 어느 집 대식구들이 둘러앉아 있다. 딸 셋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서 왁자지껄 웃음꽃 터뜨리며 담소화락(談笑和樂)하고 있다. 옆에 앉은 사위는 말없이 지켜보며 웃음 짓는다. 문득 이런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아들 셋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고,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하는 화목한 모습. 우주의 기원을 찾는 일이 더 쉬울 것이다.
오래된 유머가 생각났다. 바보 여자 이야기.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생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자기 아들로 생각하는 여자. 또 다른 유머.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딸은 그대는 아직도 내 사랑.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 가면 손님이 되고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네. 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이 아닐까도 싶다.
헬기장 옆에 위치한 개화산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한강과 고양시, 북한산과 노고산도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몇 달 전까지 붙어 있던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오래되고 낡아서 없애버린 모양이다. 예전 안내판엔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鄭敾)이 양천현령(1740~1744년)을 지낼 때 그의 붓끝으로 그린 양천현 개화사(현 약사사)가 담겨진 그림이 소개되어 있었다.
개화산 전망대에서 약사사로 내려가는 길은 운치가 있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나무에 이런 팻말이 붙어있다. “자연과 책의 주인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다.” 약사사(藥師寺)는 겸재 정선이 자주 찾아왔고 그림으로도 남긴 개화산의 유명 사찰이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로 이름을 떨친 겸재 정선은 개화사(開花寺)란 제목으로 개화산과 절 그리고 주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바로 그 개화사가 지금의 약사사라고 한다.
약사사 삼성각(三聖閣) 앞에 곱게 피어난 개양귀비꽃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데, 절에서 일하시는 분이 지나가시며 말을 건낸다. “꽃이 정말 예쁘네요.” 꽃 사진을 찍을 때 이런 말을 들으면 절로 힘이 난다. 나는 공감(共感)이야말로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이 곧 사랑이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워서다. 마음의 꽃이 아름다울 때 비로소 세상의 꽃이 아름답게 보인다.
약사사를 둘러본 후 방화근린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린 아이들이 잠자리채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볏짚 지붕 시골집과 민속놀이마당 장독대가 아련한 옛 추억을 소환한다. 공원 내에 수도권 서부 미세먼지 측정소가 자리잡고 있다. 공원 옆에는 올해 11월 준공 목표로 천문우주과학관을 짓고 있다. 우주천문과학관이 개관하면 천체투영관(플라네타리움)에서 밤하늘 별자리도 관측하고, 전시관에서 우주 개발 전시물도 두루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공원 입구엔 ‘숲해설가와 함께 하는 강서구 숲길 여행’ 안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집으로 향하는 길, 금낭화로 시화길에 붙여놓은 시 한 편이 마음을 끈다.
너에게서 꽃향기가 난다 / 김봉석
친구야,
너에게서 꽃향기가 난다
저 멀리서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걸어오면
아주 가녀린 바람에도
너의 향기가 실려 온다
흙먼지 일으키며 버스 지나간 뒤
흔들흔들 춤을 추는
시골길 코스모스처럼
너에게선 어여쁜 빛깔
눈부시게 흘러나온다
너에게선, 친구야
멀리 있어도 곁에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정말 사람다운 향기가 난다
오늘은 장마가 뜸한 사이 개화산 둘레길을 걸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개화산 둘레길 초입, 호국공원에서 본 6.25전쟁 개화산 전투 충혼비에 새겨진 무명용사들의 이름이 내 마음을 계속 두드린다. 출신지조차 알 수 없는 스물 다섯 병사들의 전사통지서는 제대로 집에 전달되었을까, 최전방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어린 병사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그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꽃다운 청춘들이 전쟁이란 이름으로 스러져 가지 않도록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정착하는 일일 것이다. 김종제 시인의 시 ‘감자꽃이 피었다’를 옮겨 본다.
감자꽃이 피었다 / 김종제
가칠봉 기슭의 펀치볼에
선혈 같은 감자꽃이 피었다
순교자의 흰피를 보았으니
며칠 있다 저 꽃 지면
기적으로 생겨난 굵은 살점 같은
감자를 캘 수 있겠다
격전의 여름이 가기 전에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이라
목이 메이도록
눈물의 감자밥을 먹을 수 있겠다
유월의 전쟁에서
뼈도 찾지 못한 목숨들이 많아
감자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땅밑에 부둥켜 안고
함께 드러누워 버린 생(生)이여
팔을 뻗어 가까스로 손 닿고
이름 부르고 간 명(命)이여
이 산하 곳곳이
폭탄 맞아 움푹 패인 감자를 닮았다
저 감자꽃이
순국의 종교가 아니라면 무엇이랴
성전의 경구가 아니라면 무엇이랴
주검 대신 얻은 저 핵의 알갱이
희생으로 일궈낸 저 골수
모난데 없이 둥글다
삶을 다 토해낸 인생이
감자꽃으로 피었다
흰 옷 수의로 갈아입고
관 열어 젖힌 세상을 보았다
글·사진=김영택 / 사진 촬영 202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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