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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나의 뇌가 보는 세상과 너의 뇌가 보는 세상

푸레택 2022. 6. 4. 15:30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나의 뇌가 보는 세상과 너의 뇌가 보는 세상 (daum.net)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나의 뇌가 보는 세상과 너의 뇌가 보는 세상

[경향신문] 이 는 무슨 색으로 보이는가? 파란색과 검은색? 흰색과 금색? 파란색과 갈색? 놀랍게도 사람에 따라 원피스가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가 다르다고 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파란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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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피스 는 무슨 색으로 보이는가? 파란색과 검은색? 흰색과 금색? 파란색과 갈색? 놀랍게도 사람에 따라 원피스가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가 다르다고 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파란색과 검은색이라고 인식하고, 흰색과 금색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그다음으로 많으며, 갈색과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파란색과 검은색 원피스였다. 색깔은 가장 기본적인 인식의 하나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색깔조차 사람마다 다르게 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과거 경험을 투영해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뇌는 경험을 통해 같은 색도 조명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경험을 투영해서 색채를 인식한다. 예컨대 오른쪽 그림의 A와 B는 같은 색이지만 A가 더 밝게 보인다. A는 그림자 속에 있고, B는 밝은 빛 아래 있다는 정보에 맞추어 뇌가 색깔을 다르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현상이 원피스 사진을 볼 때도 일어난다. 다만 이 경우에는 사람에 따라 원피스가 어떤 빛깔의 조명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지가 다를 수 있다. 밝은 태양빛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원피스가 흰색과 금색으로 보인다. 백열등처럼 노란 조명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원피스가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보인다.

사람마다 조명빛을 다르게 추정하는 것은 각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면서 경험한 일들 때문에, 혹은 덕분에, 나는 세상을 지금 인식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 나의 경험이 내일 나의 인식을 바꿀 것이다. 실제로 이 사진을 처음 보는지, 본 적이 있는지에 따라 색깔 인식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 사진을 몇 번 보았던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에 비해서 흰색과 금색이라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 또, 나이가 많을수록 흰색과 금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사진이 경험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실제의 세계가 아닌, 경험을 투영해서 인식한 세계를 살아간다. 각자의 경험이 고유하기에, 온 인생에 걸쳐 빚어지는 뇌도, 그 뇌가 비춰주는 세계도 고유하다. 75억의 인구가 지구에 있지만, 각자가 75억개의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

가장 기본적인 인식인 색깔조차 사람마다 다르다면 도덕, 상식, 정치처럼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인식이야 오죽할까. 네가 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은 다름에도 우리는 같은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너의 인식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나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너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상황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정당의 주장에 설득되는 일이 거의 없듯이, 내가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우리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면 대화가 ‘통해야 한다’고 믿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는 논리의 대전제인 세상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논리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는 수학을 생각해 볼까? 우리는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180도라고 배웠다.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유도할 수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이 결론은 평면을 전제로 하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나 통용된다. 곡면을 전제로 하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180도가 아니다. 지구본에 정삼각형을 그리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180도를 초과한다. 반대로 말 안장처럼 움푹 파인 면에 삼각형을 그리면 세 각의 합은 180도에 못 미친다.

이래서 나의 세상에서 논리적인 결론은 상대의 세상에서는 논리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신랄한 논리로 상대를 이기더라도, 상대는 언변이 부족해서 밀린다고 여길 뿐, 의견을 바꾸고 싶어하지는 않을 때가 많다. 기껏 이기고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설득의 기술

너의 세상을 이해한 뒤에야, 비로소 너에게 논리적인 이야기로 설득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경청과 공감이 최고의 설득 기술이라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 공감하게 해주는 예술이 정연한 논리보다 설득력 있을 때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

원론적이고 식상하지만 경청과 공감이야말로 설득의 정석이다. 이 정석을 따르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힘으로 누르고, 누군가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만한 사실이 공개되지 않도록 은폐했으며, 또 누군가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타인들의 인식에 공감한다는 것이 어떤 인식이든 옳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믿을 때도,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돌았다. 기후 변화를 믿고 싶지 않아도 기상 이변은 더 심해지고 더 잦아지고 있다.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러니 내 인식이 정말로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공감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통렬하게 고민해야 한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이름도 달달한 장미 대선이건만, 곳곳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장면은 그리 달달하지만은 않다. 나와 정치적으로 비슷해 보이던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른 지점이 드러나고, 그 차이가 크면 감정싸움으로 격화되기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색깔도 사람마다 다르게 보인다지 않나.

치열하게 노력해서 얻어낸 장미 대선인 만큼, 더 좋은 대통령을 뽑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논쟁을 격화시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간절할수록, 적보다는 내 편을 늘려야 한다. 네가 보는 색을 나도 볼 수 있을 때, 적을 늘리던 논쟁도 내 편을 늘리는 설득이 될 수 있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17.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