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성공하는 법보다 중요한 시행착오 요령 (daum.net)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불안하고 답답해진다. “이럴 때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라고 누가 딱 정해주면 안심이 될 텐데, 딱 정해주기가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성공하기 위한 ××가지 방법’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자녀 교육’류의 글들이 많지만 글마다 뭘 하라고 하는지가 조금씩 다르고, 행동 지침들끼리 상충하기도 한다. 나에게 적용하기엔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아서 시도하다 포기할 때도 많다.
■ 시킨 대로 했던 과거의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발전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수십년 전에 인공지능을 개발하던 사람들은 컴퓨터에 어떨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면 사람의 지능을 흉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 저럴 때는 저렇게 해라’라고 세세하게 지시했다. 그런데 그 ‘이럴 때’가 애매한 경우가 현실에서는 너무 많았다. 이럴 때 이렇게 하면 안되는 예외들도 일일이 지시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채로웠다. 결국, 그 시절의 인공지능은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것처럼 쉬운 일도 좀처럼 해내지 못했다.
‘이럴 때’는 개발자가 자신의 경험을 간략하게 뭉뚱그리고 추상화한 것일 뿐, 다채롭고 구체적인 현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이럴 때 이렇게 한다’는 개략적인 지식을 얻어낸 개발자 본인은 자신의 지식을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자가 입력한 지식을 따르기만 하는 인공지능은 그럴 수 없었다. ‘성공하기 위한 ××가지 방법’을 그대로 따르려는 우리의 노력이 종종 실패하는 것처럼, 그 시절의 인공지능도 실패를 거듭했다. 하기야 시킨 걸 시킨 대로밖에 못해서야 어떻게 ‘지능’이라고 하겠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배우는 다독가인 경우가 많지만 습득한 지식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연구하며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이럴 때 이렇게 한다’는 지식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경험으로부터 지식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바꾼 뒤부터였다.
■ 경험이 중요한 최신 인공지능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나, 사진 속의 물체를 사람보다 정확하게 인식하는 최신 인공지능은 뇌 속의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 신경망을 사용한다. 인공 신경망이 어떤 작업을 수행하게 하려면 풍부한 데이터를 주면서 학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공 신경망은 방대한 데이터를 경험하는 동안 ‘이럴 때’에 해당하는 특징들을 스스로 알아낸다.
이렇게 학습한 특징들에는 ‘어떤 특징이 다른 특징과 함께 나타나는지, 어떤 특징이 다른 특징과 함께 나타나지 않는지’ 등 입력된 데이터의 통계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인공 신경망을 학습시키려면 작업 현장을 잘 반영하는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열대 과일 사진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한 인공 신경망은 모든 종류의 과일을 종류별로 구분하는 작업에는 서툴 것이다. 열대 지방의 과일은 사과나 배 등 온대 지방에서 나는 과일을 포함하지 않으며 두리안 등 특정한 종류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인공 신경망은 어떤 사진도 학습한 적이 없는 인공 신경망보다는 빠르게 작업에 능숙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과일이라는 새로운 데이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렇게 적절한 데이터를 충분히 경험하며 ‘이럴 때’를 스스로 습득한 인공 신경망은, 개발자가 입력한 ‘이럴 때’를 그대로 따랐던 과거의 인공지능보다 훨씬 더 유연하며, 훨씬 더 정확하게 동작한다.
■ 경험으로 다지는 뇌 신경망
인공 신경망의 원조 격인 뇌 신경망도 충분한 경험을 한 뒤에야 뭔가를 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기본적인 능력조차 적절한 시각 경험이 없으면 발달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아기 고양이를 가로줄만 있는 원통 안에서 오래 기르다가 꺼내면, 이 고양이는 세로 방향의 시각 자극을 한동안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가로 방향의 시각 자극에만 편향된 경험은 가로세로가 모두 포함된 세상을 볼 수 있는 뇌 회로를 발달시키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더 극적인 사례도 있다. 사업가인 마이크 메이(Mike May)는 3살 때 사고로 각막이 손상되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40여년이 지난 뒤에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세상을 볼 수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시각 경험이 박탈되었던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술을 받은 지 10년이나 지난 뒤에도 안내견 없이는 산책을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신경망이 뭔가를 할 수 있게 되려면 적절한 경험이 꼭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성공적이었던 방법은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선택지가 된다. 유용한 경험을 선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유용했던 방법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일을 하는 다른 사람인 나에게는 꼭 들어맞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 시행착오를 통해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열대 과일 사진을 가지고 학습했던 인공 신경망이 과일 전체를 분류할 수 있으려면 온대 과일 사진도 학습해야 하는 것처럼.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능이란 시킨 대로 잘하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줄 아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경영자도 훌륭한 경영자를 똑같이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적인 사례를 참고하되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체득한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공하기 위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배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행착오의 요령과 실패를 허락하는 환경이 아닐까.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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