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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절울소리

푸레택 2022. 5. 28. 17:44

[임의진의 시골편지]절울소리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절울소리

[경향신문] 낯설고 물설고 박정한 타향살이. 선바람쐬고 돌아다니곤 있지만 마음은 고향 하늘과 고향 바다. 눈 감으면 절울소리 꿈에 쟁쟁해라. ‘절울’이란 바다가 우는 소리를 뜻하는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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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물설고 박정한 타향살이. 선바람쐬고 돌아다니곤 있지만 마음은 고향 하늘과 고향 바다. 눈 감으면 절울소리 꿈에 쟁쟁해라. ‘절울’이란 바다가 우는 소리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래. 바닷물에 뛰어들어 참방참방 헤엄칠 때 들리던 소리. 제주도에 가끔 찾아가면 친구의 어머니, 해녀 어멍을 뵙고는 했어. 알근달근한 김치를 무친 뒤 손으로 쭉 찢어 입에 물려주시곤 했지. “어멍은 정말 부자세요. 보세요. 입안에 금은방을 차리셨네요. 금이빨 은이빨~” 하하호호….

어멍은 병 얻어 돌아가시고, 친구도 서울에 눌러살게 되면서 섬길이 뚝 끊겼다. 어멍이 일러주시던 숨비소리와 절울소리, 바당(바다)에 파도 일듯 끝도 한도 없던 얘기들, 입속을 가시고기처럼 쏘는 맛난 자리물회, 갈점뱅이 입으신 아재들의 행차, 숨비기꽃을 따서 꽃잎사귀로 물안경을 쓱 닦고 다시금 물질하는 이야기. 어떤 시인은 옥돔으로 쑨 옥돔죽을 최고 맛으로 치더군. 어멍이 옥돔죽을 끓여 우리에게도 맛보게 해주셨지. “유산이라고 물려주고들 하더라만 나는 그런 돈도 없어. 내가 살았을 때 물질해서 자식들 안 굶긴 것으로 족해. 살았을 때 나누는 게 유산이지.” 바닷가 조그만 돌집 평상에 누워 수박을 먹으며 들었던 어멍 말씀을 어찌 잊으랴. 그래서 적바림(글에 적어두는 일)하여 어멍 마음을 고이 새겨두었지.

절울, 절울소리 들려오누나. 바다가 빠금거리는 소리. 정치를 하는 이들은 특히 ‘우는 소리’를 잘 들어야 해. 웃는 소리, 즐겁고 행복한 잔치 자리에만 찾아다니면 절울소리를 들을 수 없지. 귀가 멀어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 사정도 모르고서 세상 좋아졌다며 박수를 쳐댄다. 바다엔 박수소리가 없고 절울소리뿐이라네. 바다가 울면 갈매기도 따라 울지. 고단한 인생 눈을 감겨드리던 날, 입관하면서 알았네. 어멍 입에서 나오던 모든 말씀이 절울이었다는 걸.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