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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과학 프로젝트와 사회의 컬래버레이션

푸레택 2022. 5. 27. 18:58

과학 프로젝트와 사회의 컬래버레이션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daum.net)

 

과학 프로젝트와 사회의 컬래버레이션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경향신문] 뇌는 많은 사람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뇌에 대한 기초과학 연구 성과와 뇌과학 연구를 위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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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많은 사람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뇌에 대한 기초과학 연구 성과와 뇌과학 연구를 위해 필요한 기술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뿐만 아니라 산업, 제도, 철학, 윤리 등 여러 측면에서 미래 사회를 바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캐나다, 호주, 한국, 일본에서 뇌과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거나 운영하고 있다.

■ 과학 프로젝트 사례

대규모 뇌과학 프로젝트는 제도, 윤리, 철학, 과학 대중화, 기술,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사회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유럽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통해 이 상호작용을 살펴보자.


2013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2023년까지 10년간 총 12억달러가 투자될 예정이다. 뇌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위해 신경 정보를 분석하며, 신경계를 모방한 컴퓨팅과 로봇공학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빅데이터 기술과 제도, 인간 의식에 대한 이해의 진전, 슈퍼 컴퓨팅 기술, 로봇공학, 신경모방 기술 등에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원래부터 관련된 분야가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규모의 미국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목표는 뇌 속의 개별 세포와 신경 네트워크의 역동적인 활동을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촉진함으로써 뇌 연구를 진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계의 활동을 세포 수준, 회로 수준 등 여러 수준에서 정밀하게 관측하고 조절하는 기술, 사람의 뇌 활동을 비침습적으로 관측하는 기술, 마음의 생물학적 기반을 이해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 기술 등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술들은 향후 치료를 비롯한 다른 목적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와는 미묘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다.

■ 과학 프로젝트와 사회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초안 단계에서부터 이 프로젝트의 진행과 성과가 다양한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논제를 던져줄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전체 예산의 4%를 투자해서 잠재적인 기회와 위험, 윤리적인 문제들을 확인하고, 과학자, 시민, 사회학자, 철학자, 정책 관계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하며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흔히들 윤리와 규제는 기술 발전 속도를 저해하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의 사례를 보면, 연구·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융합학문을 창발시키고, 관련된 기술을 마련하며, 제도를 실험해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런지 살펴보자.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뇌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연구실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한 연구 데이터들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모은 방대한 데이터를 적절히 분류해 메타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야 했다. 특히 공유된 데이터가 개인의 뇌와 관련되는 만큼, 개인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했다. 이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의 생산에서 분류, 폐기에 이르는 빅데이터 기술과 데이터를 공유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개발되고, 이에 걸맞은 제도가 연구되고, 제도와 기술이 실험되었다. 이렇게 마련된 기술과 제도는 나중에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도와 다른 기술들이 협력해 길을 내고, 실험하면서, 사회의 다른 영역도 준비시키는 효과를 낸 셈이다.


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고, 신경계를 모방해서 만든 하드웨어로 구현하는 과정은 뇌를 연구하는 데 유용한 가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된 뇌나, 뇌를 모방해서 만든 하드웨어에서 의식이 생겨나면 어떻게 할까’와 같은 염려도 생겨났다. 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의식을 측정할 수 있을까?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다른 존재를 구별하는 특징은 무엇인가?’와 같은 학술 연구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연구 주제들은 철학과 뇌과학 등 여러 학문들을 융합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로봇 윤리 등 기술 변화가 초래할 혼란에 시민사회를 준비시키는 효과를 낸다. 만일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 경기를 하기 전에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시민들이 받았던 충격이 훨씬 더 적지 않았을까?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한 풍부한 과학픽션(SF) 작품들이 생겨나는 한편, 변화에 대비하여 준비하기에도 유리하지 않았을까?

■ 국제 협력

과학은 예술과 스포츠처럼 국경이 없는 분야이다. 다른 연구자들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내야 하는 과학과 기술 연구의 특성상 국경을 넘는 협력과 공유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과 기술 지식의 악용은 한 국경 안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규모 뇌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여러 국가들이 뇌과학 연구 성과의 윤리적인 활용을 도모하는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작년 대구에서 이 학술회의가 열려,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할 만한 신경윤리적인 문제가 논의됐다. 현대 과학은 연구 단계에서부터 경제만이 아닌 사회 제도와 철학, 문화, 시민사회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1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