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바닷가 읍내엔 길에서 보이는 주민들 절반이 농산업자이거나 수산업자. 농협 수협 축협, 국대 축협 말고 송아지 키우는 축협 말야. 네거리엔 협회들이 조르라니 자리하고 그랬지. 잘살면 배 아프고 못살면 가슴 아픈 첫사랑, 같이 살자 하면 머리 아프다는 첫사랑도 수산업자 따님.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 테지.
옛 시절 그립고 머리가 지끈거리면 가까운 바다를 찾아가. 꿈을 꾸면 고향 앞바다가 불쑥 보이지. 여행하면서 만났던 북극이나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 기억으로 무더위를 견뎌내. 그리고 물고기 요리는 ‘슷슷’ 군침을 돌게 만든다.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 그의 이름을 딴 베드로 물고기를 먹어본 일도 있는데, 우리나라 민물매운탕, 후루룩 쩝 시래기 맛에 견줄 바도 못 되더군.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삼면이 바다와 항구인 내 나라의 진기하고 맛난 해산물들.
가끔 보는 후배는 목포에서 수산물 유통 사업을 한다. 싱싱한 홍어와 낙지를 맛보여주곤 해. “언제 올라오냐?” 물으면 냉큼 올라와. ‘용이 승천한다’를 순우리말로 바꾸면? 정답 “올라가용”. 그가 올라오면 해산물이 뒤따른다. “성님! 많이 드시쇼잉.” “고마웡. 요새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기꾼 수산업자는 아니지?” 놀리는 맛도 재밌어. 푸른 물결소리가 들리는 선착장, 폐선이 묻힌 갯벌과 옆으로 달리기 올림픽 챔피언 게들, 꼴뚜기가 뛰니 같이 뛰는 망둥이 협찬 쇼쇼쇼. 바다 위를 달리는 양떼구름과 가두리 양식장에 가두어진 인생들의 굵은 소금 땀. 아직도 세상에는 놀고먹는 사람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배나 많아. “신은 아마도 인간이 야자나무 숲을 보고 기뻐하게 할 요량으로 사막을 만드셨으리라.” 《연금술사》에서 코엘료의 말. “신은 아마도 인간이 육지를 보고 기뻐하게 할 요량으로 바다를 만드셨으리라.” 이건 내 말. 육지에 도착한 고깃배와 검게 탄 어부의 얼굴. 그 앞에 배송트럭을 댄 수산업자 모두 환히 웃는 날들 되길.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07.22
/ 2022.05.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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