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예보관은 ‘가을장마’라고 하더라. 이러다 여물지 못한 밤송이가 달릴까 염려돼. 다람쥐는 어찌 살라고. 설멍설멍 힘없는 국화가 귀웅젖이라도 동냥질할까 햇볕이 잠깐 나면 얼굴을 불쑥 내민다. 국화향기를 곧 맡을 수 있겠지?
줄창 내려쌌는 먹비에 나뭇잎들은 진녹색을 덜어내고 있다. 성질머리 급한 더러는 한장 두장 잎사귀를 떨구기도 해. 마치 이승의 숙박비를 지폐 현찰로 치르는 것 같더군. 추석이 오고, 열매를 거두고, 언젠가 첫눈도 내리겠지. 차 한잔 마시자며 찾던 손님들 발길이 추위와 함께 뚝 끊길 거야.
모차르트에게 배움을 청하러 오면 교습비가 천차만별이었다고 해. 초급반은 적게 받고 고급반은 많이 받았는데, 이유를 캐묻자 “어디서 이상한 걸 잔뜩 배워 온 분들을 교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차라리 맹탕 모를 때가 가르치기 쉽죠.” 맛만 보다가 빈손으로 되돌아간 학생도 있었다. “인생도 예술도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죠. 저분은 많은 걸 배워서 돌아가는 길일 겁니다.” 인생에 남는 건 오로지 꽃처럼 활짝 핀 미소, 웃음, 사랑했던 날들의 기억들. 살벌한 금연 광고처럼 죽음으로 겁박한들 비행기가 추락하면 몽땅 하늘나라.
한 항공사에선 이런 방송을 했대. “승객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항공기는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흡연석을 준비했습니다. 흡연석은 날개 윗부분입니다. 담배와 함께 영화도 보실 수 있는데요. 제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예요.” 장거리 비행에서 웃을 수 있다면, 잠시나마 고통을 덜 수 있을 텐데. 함께 보는 영화는 해피엔딩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반칙을 해서 만든 성공담들이 널려 있다. 해피엔딩 같지만, 그건 그냥 ‘같지만’일 뿐. 모두의 마음에 흡족한, 진실한 해피엔딩이 있을까. 끝이라는 말은 ‘끊다’는 말에서 나왔다는데, 끊은 게 많을수록 진짜 해피엔딩.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08.26
/ 2022.05.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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