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미니픽션] 도로교통법 제154조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도로교통법 제154조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정용은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맥주와 음료는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홀에는 정용 이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프랜차이즈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 한 명이 테이블을 닦고 있었고, 커튼으로 반쯤 가려진 주방에선 연신 그릇 닦는 소리와 무언가 튀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환기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천장 쪽으로 마치 한지 위에 엎질러진 먹물처럼 계속 연기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사장이 있었다.
사장은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체격이 크고 검은색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카운터 뒤에 서서 연신 포스기를 바라보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오후 4시30분이 막 지난 시간. 이 한가로운 평일 오후에도 치킨을 배달시키는 사람들은 많았다.
정용은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다. 그가 사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죽은 진만에겐 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직접 들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매장에 들어선 순간, 정용의 마음은 바뀌고 말았다. 매장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불과 얼마 전 그곳에서 일하던 알바생이 죽었는데, 면허증도 없이 오토바이 배달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매장은 여전히 바빴고, 사람들은 제 할 일을 했고, 닭은 계속 튀겨지고 있었다. 정용은 그 모습이 당황스러웠고, 그래서 마치 우연히 들른 손님처럼 치킨을 주문하고 말았다.
정용은 사장도 당연히 처벌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빤히 무면허인 것을 아는 알바생에게 배달을 시켰으니, 그냥 헬멧만 잘 쓰고 나가라고 재촉했으니, 그러다가 결국 교통사고로 한 사람의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으니,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에겐 벌금 30만원이 전부였다.
“자자, 이것 보세요. 우리가 그런 게 아니고, 법이 이렇다니까요, 법이.”
정용은 사고 담당 경찰이 내민 법 조항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도로교통법 제154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3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한다.
-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면허를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하도록 시킨 고용주 등.
“아니, 그래도… 사람이 죽었잖아요. 사장이 시킨 일을 하다가….”
정용이 간신히 그렇게 말하자, 경찰은 서류를 치우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요. 그러니까 그럴 땐 아무리 사장이 시켜도 하지 못한다고 해야 하는데….”
걘, 거기에서 가불도 받은 몸이었어요… 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요… 정용은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사장이 직접 정용의 테이블에 치킨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힐끔 정용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뭐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물었다. 배달이 아닌 홀 주문이어서 특별히 구운 감자 서비스를 드렸다는 말도 했다. 그는 웃으면서 그 말을 했다. 정용은 말없이 치킨을 내려다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치킨 한 마리, 김이 다 사라지기 전까지 배달을 끝내라고 말했다는 사장의 목소리. 사장은, 진만이 사고 난 날에도 다른 알바생에게 전화를 걸어 ‘진만이가 오토바이를 훔쳐서 달아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것은 궁금해하지 않고 오토바이 걱정을 한 사장.
정용은 포크가 아닌 손으로 치킨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치킨은 뜨거웠고, 기름이 많이 배어 나왔다. 맛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정용은 입안 가득 치킨을 쑤셔 넣고 씹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계속 입안에 들어온 것들을 삼켜냈다.
“저기요.”
정용이 사장을 불렀다. 그는 정용이 앉은 테이블 앞에 섰다.
“치킨 30만원어치만 해 줘요.”
정용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 배달시킬 곳이 있으신가요?”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여기서 다 먹고 갈 거예요.”
정용이 그렇게 말하자 사장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주방에서도 누군가 나와 정용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배달시키는 게 싫거든요. 여기서… 씨발… 다 먹고 갈게요.”
정용은 또 다른 치킨 조각 하나를 입에 쑤셔 넣었다. 그는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21.10.29
/ 2022.05.14(토)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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